한국은 미술을 작품제작의 영역에 국한해서 생각한다. 미술비평, 미술사와 이론, 큐레이팅, 토크, 교육 프로젝트 등등은 미술이라기보다 미술을 지원해주는 무엇이다. 한국에서 성공적인 미술 정책의 핵심은 제작된 작품을 관객에게 잇는 것에 있다. 이 말이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미술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1800년대 후반 일본의 식산흥업 정책. 공예품을 만국박람회에 가져나가서 파는 것을 어마어마한 국제 무역 활동이라고 생각했던 그 아이디어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미술은 산업이고 미술작품은 산업생산품이다. 왜 이렇게 한국에선 작품과 관람객이 중요할까? 사실 관람객은 소비자이고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한 상품/작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니까. 사토 도신이 말하길, 미술은 제작과 연구, 만들기와 말하기로 구성된다고 한다. 만들기와 말하기는 다르다. 제작과 연구는 그냥 다른 활동이다. 지원하고 말고의 그런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연구는 지원하는 활동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결론은 좋은 상품과 좋은 소비자를 만들자는 구호에서 주저 앉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