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고, 일정은 준비되었으며, 기대는 형성되었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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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창작지원금을 받았지만 창작을 할 수 없다 — 지급보증보험 요구는 예술가 배제 장치다
강원문화재단 2026년도 전문예술지원 문학 분야(개인) 창작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급보증보험증권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 예술지원 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심각한 사례다.
창작지원금은 경제적 취약 상태에 있는 예술가에게 창작의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지급보증보험 가입을 필수 조건으로 요구하는 순간, 지원 제도는 ‘창작 능력’이 아니라 ‘금융 신용’을 기준으로 작동하게 된다. 신용이 낮은 예술가는 선정되고도 배제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다. 이는 지원이 아니라 선별이며, 창작 진흥이 아니라 창작 제한이다.
문학 창작자의 현실은 불안정하다. 고정 수입이 없고, 사회보험 이력도 취약하다. 장기간 창작 활동을 지속해온 이일수록 금융 신용에서 불리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채 보증보험을 요구하는 것은 창작 현장을 모르는 행정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공공 지원 제도가 시장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적용하는 순간, 가장 지원이 필요한 예술가가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더 큰 문제는 선정 이후 배제라는 점이다. 심사를 통해 창작 가능성을 인정하고도, 금융 신용이라는 또 다른 장벽을 세워 지원을 무력화하는 것은 행정의 책임 회피다. 이는 예술가에게 심각한 시간적·정신적 피해를 준다. 창작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고, 일정은 준비되었으며, 기대는 형성되었다. 그 모든 것이 보증보험이라는 문턱에서 중단된다.
공공 예술지원은 위험을 감수하는 제도여야 한다. 창작은 담보로 증명되는 활동이 아니다. 결과는 작품으로 증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 보증을 요구하는 것은 공공 지원의 취지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지급보증보험이 아닌 단계별 지급, 중간 점검, 정산 강화 등 대안적 관리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가장 배제적인 방식만을 고수하는 것은 제도 설계의 실패다.
우리는 묻는다.
창작지원금은 신용이 높은 사람에게 주는 혜택인가,
아니면 창작이 필요한 예술가를 위한 공공 지원인가.
신용이 낮다는 이유로 창작의 기회가 박탈된다면, 공공 예술지원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예술가에게 요구되어야 할 것은 담보가 아니라 창작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증이 아니라 신뢰다.
강원문화재단은 지급보증보험 의무 규정을 즉각 재검토하고, 신용 취약 예술가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선정하고도 배제하는 제도는 공정하지 않다. 창작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이 형식적 절차에 의해 무력화되어서는 안 된다.
창작지원금이 창작을 막는 현실을 즉각 개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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