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워싱에 반대한다”···퐁피두센터 한화 개관 규탄하는 예술인들, 왜 - 경향신문
정용진 사태와 한화 퐁피두센터에 대한 비판을 겹쳐 놓고 보면서, 왜 하나는 공분을 사고 나머지 하나는 뭥미? 같은 감정이 드는지 잠깐 생각해 봄.
정용진 건은 직접적, 한화 건은 간접적.
어쨌든 한화 퐁피두 수입은 가해적 행동이 아니라 사회 공헌적 맥락을 가지며, 아트워싱의 직접적 인과관계로부터 탈락 되어 있다. 어떤 워싱이냐? 특정한 잘못을 했는가? 그것을 공헌활동을 통해 상쇄하려고 하나? 애매하다. 그냥 방위산업체 자체가 맘에 안 드는 것 같다. 아트워싱은 그런 방위산업체가 좋은일을 하는 것 같으니까 좋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악당으로 남아 있으란 것..?
또한 이런 식의 기업 비판은 <예스맨> 프로젝트든, 낸 골딘의 행동주의에서 익숙하다. 하지만 예스맨처럼 영악하거나 예술적이지도, 낸 골딘처럼 인물 자체가 간지나거나 카리스마적이지도 않다. 그보다 신경쓰이는 건 서양 행동주의의 시뮬라크르의 냄새랄까. 행동주의는 어떤 효과를 이루고자 한다. 하지만 이번 퐁피두 건은 도덕주의적 자세잡기에 훨씬 더 가깝다. 좌파의 게토화로 이어진다.
한편 방위산업체가 우리나라에서 왜 발전하게 됐는가? 휴전 상태인 국가에서 군비 증강에 대한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으며, 그것이 어쩌면 남한이란 국가에서 그래도 이정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일정 부분 구성한다. 우파적 시각에선 이런 면을 물론 강조할 것이다. 배은망덕한 년/놈들은 우리나라를 떠나라..!
한편 정용진의 탱크데이는 무언가 우파적 이데올로기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좌우 할 것 없이 '이것은 가해'라는 프레임이 작동한다는 것.
만약 한화를 정말 비판하고 싶었다면 그래서, 우파의 윤리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잠깐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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