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art-it.asia/en/top_e/admin_ed_feature_e/182581
2019년 4월 18일 목요일
감각이란 것
랑시에르가 왜 굳이 감각을 들고 나왔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일상 생활에서 흔히 겪는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 이게 문제다라고 지적할 수는 있으며 그 사람이 그것을 고칠 의지가 있다면 그 문제는 해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비슷한 문제가 그 사람에게서 여전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게 부분이든 구조이든 상관없이 그런 느낌이 그 사람과 공히 결연을 맺고 있는 것이다. 그런 느낌은 지성이나 지식과는 별개의 것 같다. 그냥 그런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지금까지 모든 문제를 이성적으로 고친다고 하더라도 미래에는 또 다시 비슷한 느낌이 반복될 거라는 느낌인 것이다.
2019년 4월 15일 월요일
김광석,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1994)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물 흘러 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어느 하루 바람젖은 어깨
스치어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람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단 말들도 묻어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물 흘러 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어느 하루 바람젖은 어깨
스치어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람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단 말들도 묻어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영화 <클래식>, 눈이 먼 조승우를 손예진이 만나는 장면에 삽입되었다. 그런 김에 오랫만에 1990년대 음악을 유튜브에서 쭉 들었다. 사실 나는 90년대 말에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온전히 90년대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한다. 당시에는 인터넷 같은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에 접근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그 당시 내가 돈이 있었을리가 만무하다. 알고 싶어도 완전히 접근할 수 없는, 흐릿하게만 느꼈던 90년대의 문화의 파편. 그럼에도 내가 공감하는 건 이쪽이다.
2019년 4월 11일 목요일
조던 피터슨을 향한 지젝의 한 수
2019년 4월 9일 화요일
세월호 5주기 전시
세 명의 기획자가 "기획"한 전시다. 이 전시가 공유되는 모습을 보면서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전시에 참여한다고 포스터와 장소를 공유하는 작가의 모습이 여타 전시 홍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일까. 좌파 행세하는 현대미술가와 인사가 '드디어' 나서기 시작하는 꼴이 못마땅해서일까. 이렇게 관대해진 victims의 누그러운 태도에 조금 심술이 난 것일까. 3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3년 전 나는 무엇을 위해서 누구와 싸웠을까. 세월호를 거대한 음모론적 장소로 만든 국가폭력과 싸워야 했을 터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도 부인하는 냉소적 이성과도 싸워야 했을 터다. 그리고 중간 지대에 놓인 사람에게 그것을 호소해야 했을 터다. 내가 한 일은 어땠을까. 그것을 위해 전시를 더 잘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당시에는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갈등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사람들이 갑자기 이해를 잘 하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세월호는 이미 화해가 끝난 사건이다. 그러니까 세월호는 더 이상 굳이 이해를 할 필요가 없는 대상이므로 갈등도 없는 것이다. 기획자와 당사자 사이, 즉 예술과 사회 사이를 이제 극렬하게 이어 놓는 작업을 할 필요성이 사라졌다. 관심 밖의 일이다. 그래서 전시로 매끄럽게 소화될 수 있다. 이는 내가 제일 경계했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