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3일 화요일
2019년 8월 12일 월요일
2019년 8월 9일 금요일
2019년 8월 6일 화요일
제국주의 대 민족주의
용비불패라는 만화를 보면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자와 인간이 되기 위해 싸우는 자의 싸움이 나온다. 한일관계에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격돌은 이런 구도가 아닌가 한다. 누가 민족주의를 두려워하랴?
2019년 7월 4일 목요일
2019년 7월 2일 화요일
Andrea Fraser, From the Critique of Institutions to an Institution of Critique, Artforum, (September 2005) 마지막 두 단락
우리가 "우리"보다 "제도에 관해서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의 조건이 창조되고 영속화하는 데 있어 우리의 역할을 부인한다. 우리는 일상의 공모, 타협, 검열--무엇보다 자기 검열--에 대해 책임을 거부하거나 그것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 필드에 있는 우리의 관심과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이끌어내는 이익에 의해 추동된다. 이것은 안이나 밖에 대한 질문이나, 예술의 생산과 프레젠테이션과 배포를 위해 다양하게 조직된 장소의 수와 스케일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이것은 제도에 맞서며 있기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우리는 제도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제도인지에 대한 질문이며 우리가 제도화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가치이냐는 질문이며, 우리가 얻는 보상이 어떤 실천의 형태인지에 관한 질문이며, 우리가 열망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보상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예술의 제도가 개인에 의해 내면화되고, 육화되고 , 수행되기 때문에, 이런 질문들은 곧 제도 비판이 우리에게,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물어볼 것을 요구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이런 자기-질문(self-questioning)--"제도" 같은 테마적인 것보다 훨씬 더, 이것이 얼마나 광의적으로 정의되든 간에--은 제도 비판을 실천으로 정의한다는 의미다. 뷔르거가 언급했듯이, 만약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자기비판이 "자율적 예술을 폐기"하고 "삶의 프락시스로" 그것을 통합하는 것을 의도했다면, 그것은 목표와 전략 모두에서 실패했다.[12] 그러나, 이 실패를 표식하는 그 제도화는 제도비판의 조건이 된다. 실패과 그것의 결과를 인지함으로써 제도비판은 예술의 제도를 분해하거나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는 네오아방가르드의 한층 나쁜 신념으로부터 돌아서서 바로 그 제도를 지키려고 했다. 아방가르드의 "자기비판"의 제도화가 그 제도에 가능성을 창조하며 말이다: 비판의 제도. 그리고 바로 이런 제도화는 제도비판으로 하여금 예술의 제도를 재판하게 한다. 제도의 합법화 담론의 비판적 요청에 맞서는, 저항과 논쟁의 장소로서 그것의 자기 재현에 맞서는, 급진성의 신화와 상징적 혁명에 맞서는.
=>비판의 제도는 제도가 내면화된 예술가(제도)의 자기질문. 예술가가 제도 자체.
마지막으로, 이런 자기-질문(self-questioning)--"제도" 같은 테마적인 것보다 훨씬 더, 이것이 얼마나 광의적으로 정의되든 간에--은 제도 비판을 실천으로 정의한다는 의미다. 뷔르거가 언급했듯이, 만약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자기비판이 "자율적 예술을 폐기"하고 "삶의 프락시스로" 그것을 통합하는 것을 의도했다면, 그것은 목표와 전략 모두에서 실패했다.[12] 그러나, 이 실패를 표식하는 그 제도화는 제도비판의 조건이 된다. 실패과 그것의 결과를 인지함으로써 제도비판은 예술의 제도를 분해하거나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는 네오아방가르드의 한층 나쁜 신념으로부터 돌아서서 바로 그 제도를 지키려고 했다. 아방가르드의 "자기비판"의 제도화가 그 제도에 가능성을 창조하며 말이다: 비판의 제도. 그리고 바로 이런 제도화는 제도비판으로 하여금 예술의 제도를 재판하게 한다. 제도의 합법화 담론의 비판적 요청에 맞서는, 저항과 논쟁의 장소로서 그것의 자기 재현에 맞서는, 급진성의 신화와 상징적 혁명에 맞서는.
=>비판의 제도는 제도가 내면화된 예술가(제도)의 자기질문. 예술가가 제도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