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2일 화요일

James Lovelock, Geophysiology: The Science of Gaia (1989)

분리된 학문 분야별 접근만으로는 행성 규모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다. 행성의 구획 중 가장 단순한 부문인 대기를 이해하려고 해도, 단순히 지구물리학자만으로는 부족하며, 화학과 생물학의 지식도 필요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다른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연구팀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전문가들의 모임에 가본 사람이라면, 각 전문가는 자기 말만 하고 듣지 않거나, 혹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를 개선하려면, 개별 학문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보다 폭넓은 기반의 일반과학 혹은 과학적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현대의 우려들은, 인간이 대기의 구성과 토지 표면 및 생물상을 변화시킨 결과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현대적 우려들은, 의학이 발달하던 초기 시절에 인체에 대해 가졌던 비슷한 우려들을 여러 면에서 반영한다.

19세기 말, 생화학과 미생물학은 이미 크게 발전했으나, 서로 단절되어 있었고 질병을 다루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생리학이라는 일반과학의 존재 덕분에 가능했다. 생리학은 학문 간 경계를 넘는(transdisciplinary) 학문이었고, 살아있는 유기체의 본질적인 창발적 특성(emergent properties) 을 인식했다. 예를 들어, 인체의 중심 체온이 섭씨 37도로 유지되는 원인을 알고자 할 때, 생화학적 접근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체온 조절은 시스템 제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리학에서 출발하면, 산화 대사와 같은 생화학적 측면이 자연스럽게 그 체계 안에 맞춰 들어간다.

이 글의 주된 목적은, 이러한 유추를 토대로 지구생리학(geophysiology) 이라는, 행성 규모 문제를 다루는 학문 간 환경을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다양한 분야가 얽혀 있는 문제에 적용하기 위해서다. 창발적 특성이 존재한다고 가정(증명되지 않았더라도)할 때, 지구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간주하는 것은 실용적인 목적에서 유용할 수 있다.

19세기 이전의 과학자들은 살아있는 지구라는 개념에 비교적 익숙했다. 그중 한 명인 제임스 허튼(James Hutton, 흔히 ‘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림)은 그의 저서 『지구 이론(Theory of the Earth)』(1788)에서 지구를 초유기체(superorganism) 에 비유하며, 이를 연구하기 위한 과학으로 생리학을 권장했다.

그러나 허튼의 건전한 지구관은 지난 세기 초에 폐기되었다. 이는 지구와 생명 과학 모두에서 ‘기원’과 ‘진화 이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결과였을 것이다. 생물학자들에게는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종 진화라는 위대한 비전이 있었고, 지질학자들에게는 지구 물질 환경의 진화가 단순히 물리적·화학적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완전히 독립적인 이론이 있었다.

이로 인해 19세기에 지구 과학과 생명 과학의 분리는 불가피했다. 탐험과 개발이 진행되면서 지구에 관한 정보가 급격히 늘어났지만, 생물체를 연구하는 기법과 해양·대기·암석을 연구하는 기법은 매우 달랐다. 아마도 당시 과학은 흥분에 가득 찬 시기였을 것이다. 허튼의 ‘초유기체’ 개념을 지키거나 더 넓은 관점을 유지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놀라운 것은 과학이 분리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서로 매우 다른 두 가지 진화 이론이 오늘날까지 공존해왔다는 점이다.

이 분리가 지속된 이유는, 지구 과학자와 생물 과학자가 ‘적응(adaptation)’이라는 마취제 같은 개념을 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응이라는 개념은 의심스럽다. 현실 세계에서, 유기체가 적응하는 환경은 단순히 물리·화학적 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생물들의 활동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세계에서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게임의 일부’일 수 있으며, 환경을 바꿈으로써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면, 유기체들이 물질 환경을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윈의 시대에는,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것 —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바다, 암석이 모두 생물의 직접적인 산물 혹은 그들의 존재로 크게 변형되었다는 사실 — 을 알 수 없었다. 생물은 단지 ‘죽어 있는’ 물리·화학적으로만 결정된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숨결과 뼈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살고 있으며, 지금도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

가이아(Gaia) 이론은 빅토리아 시대 생물학과 지질학의 ‘분리’를 비판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훨씬 더 나아간다. 가이아 이론은 대기·해양·지표 암석으로 구성된 물질 환경과 생물권(biota)이 긴밀히 결합된 시스템의 진화를 다룬다. 기후와 화학 조성 같은 중요한 성질의 자가 조절(self-regulation) 은 이러한 진화 과정의 결과로 본다. 살아있는 유기체나 많은 폐쇄 루프 자기 조절 시스템처럼, 전체는 부분의 합을 뛰어넘는 창발적 특성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시스템은 발명가들이 잘 아는 것처럼, 단순한 인과 관계의 논리로는 설명하기 매우 어렵다.

공학자와 생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피드백의 미묘함을 알고 있었다. 항상성(homeostasis)은 피드백이 적절한 세기(amplitude)와 위상(phase)으로, 그리고 시스템의 시간 상수(time constant)가 적절할 때만 가능하다. 긍정적·부정적 피드백 모두, 적용 시점에 따라 안정이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이론 생태학 모델이 수학적으로 난해한 것은 엔지니어에게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를 ‘열린 루프 시스템(open loop system)’에서 피드백이 임의로 적용된 경우로 볼 것이다.

반면, 데이지월드(Daisyworld) 같은 지구생리학 모델은 부정적·긍정적 피드백을 일관되게 포함하며, 그 결과 견고하고 안정적이다. 이런 모델은 수많은 비선형 방정식을 포함해도 안정적인 어트랙터(attractor) 를 유지한다.

나는, 어떤 지구의 특정 성질의 조절이 전부 혹은 상당 부분 결정론적 물리·화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에 반대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시스템은 화학을 경제적으로 사용하며, 물리·화학을 ‘더 잘 하려고’ 애쓸 이유가 없다. 가이아의 목적은 지구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예측을 만드는 것이다.

가이아의 작동 원리를 고민하면서 생긴 호기심이 없었다면, 디메틸 설파이드, 이황화탄소, 메틸 요오드화물, 메틸 클로라이드와 같은 중요한 미량 기체들이 발견될 시점에 찾아지고 발견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가이아 이론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1. 생명은 행성 규모의 현상이다. 행성 위에 생명이 드물게 존재하는 상태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동물의 절반만 존재하는 것처럼 불안정하다. 생명체는 그 행성을 조절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물리·화학 진화의 피할 수 없는 힘이 그 행성을 거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2. 가이아 이론은 다윈의 비전을 확장한다. 종의 진화를 환경의 진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두 과정은 단일하고 불가분한 하나의 과정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장 많은 자손을 남기는 종이 성공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성공은 유기체의 진화와 물질 환경의 진화가 일관성 있게 연결되는 것에도 달려 있다.

3. 가이아 이론이 지구물리학에 주는 선물은 알프레드 로트카(Alfred Lotka, 『물리생물학의 요소』1925)의 통찰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즉, 복잡한 역학의 혼돈이 부과하는 한계에 압도되지 않고, 자연의 비선형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수학적 지구관을 제시하는 것이다.

2025년 8월 11일 월요일

여미혜인지 뭔지

조국을 사면하라는 요구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견해는 '조국 일가'가 벌인 일은 상류층 일반에 무감각하게 퍼진 계급의 불법적 세습 행위로, 그것에 동정하는 놈들은 모두 명예 부르주아로서, 진정한 평등의 장애물이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법 앞에서의 평등은 별로 진정한 평등에 비해서 중요한 게 아닌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계급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부당하게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이 있고 부당하게 더 쉽게 좋은 길로 가 좋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고 정당하게(?) 해도 덜 벌고 안 좋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 박권일에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편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불평등, 차별에 저항하는 소수자가 '이미 존재'한다. 이들의 존재는 조국의 계급 세습을 위한 위법행위를 '법 앞에서의 평등'이란 말로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이는 잘못된 것이라기보다 원래 그런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불평등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라기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그럭저럭 살만한가? 일지도 모른다. 

<내가 감히 표창장을 위조할만한 힘이 없어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지만 표창장을 위조할만한 힘이 있었다면 나도 당연히 했겠지.> 

박권일은 이를 비굴한 중산층 의식이라고 할 것이다. 박권일은 그것에 영합하기보다 최저층에 있는 헐벗은 생명의 편이 되고자 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 지지하면서도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란 걸 안다. 나는 < > 안에 들어간 내용에 더욱 가까울지도 모른다. 박권일은 나 같은 소시민과 적대한다. 그런데 나 같은 소시민과 적대하는 게 무슨 이득이람?

소시민을 부정하기보다 소시민 의식이 현실의 불평등을 참으면서 바라는 결과가 무엇인지, 그것을 가지고 논쟁하는 편이 덜 숨이 막힐 것 같다. '진영이 아닌 의제'라는 명제는 뭐 그런 바람 아닐까 싶다.

조국 입시비리와 상류층 관행 관련된 팩트

 여미애

조국 사태는 진보진영에도 거의 악몽에 가까운 경험이었는데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이 일로 5년을 만나던 사람과 결별했다. 남들이 우스게소리로 제네 이별 사유가 “조국”이야 하면서 농담을 하지만 실제 그랬다. 그애가 서초동 집회 나간 뒤로, 그리고 그런 그애하고 매주 싸운 뒤로 아마 헤어짐을 앞당겼던 것 같다.
조국 사태에 대한 입장들이 첨예하게 달라지면서 쏟아지는 글들을 다 따라가기도 바빴다. 당 내부에서도 내홍이 심했는데 사면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 나는 내가 아는 것만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2010년대 초중반 수시 전형이었다. 논술 자소서 등을 업으로 하다보니 그때 상황이 생생하다. 당시 수시전형은 지금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전형”이었다. 사교육계에 종사하는 나도 감당하지 못하는 전형이었다. 일단 기본틀은 서류+면접전형이었는데 서류전형의 아무 제한이 없었다.
1단계 서류 평가 특징은 연구참여, 인턴봉사, 비교과 활동을 모두 기록할 수 있고 증빙자료만 첨부하면 되는 식이었다. 쉽게 말하면 학교 밖에서 한 모든 일을 생활기록부에 적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때 내가 제일 많이 받은 오더는 논문 대필이었다. 학생 5명분의 원고료를 줄테니 5명을 논문 공저자로 만들어서 몇 가지 논문과 보고서를 완성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주문은 꽤 있었고 다른 사교육업체들 알아보니 장당 얼마씩으로 가격을 메겨 돈을 받고 있었다.
나는 석사로 최우수논문상을 탔고 박사과정에 재학하면서 독서수업으로 먹고 사는 중이었다. 학자금 대출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황에서 나에게 학부모들이 제안한 금액은 내 한 학기 등록금에 가까웠다. (700정도)
주변에 알아보니 그 일로 떼돈을 보는 사교육업자가 대치동에 엄청 많았다. 논문 대필, 보고서, 자소서 대필은 사교육 시장에 거대한 기회였다. 심지어 평생 영어 수학만 수업하던 강사들이 날 보고 “너희 로또 맞은 거 아니냐 이때 왕창 벌어라” 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거절했다. 양심이 깊고 도덕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고 단순히 쫄아있었다. “대필해서 서류에 잔뜩 이름만 기재했다가 면접 때 다 들통날 게 뻔해요” 라며 거절했다. “차라리 논문 쓰는 법 강좌를 열테니 그걸 수강해서 학생이 직접 듣게 하면 어떨까요?” 라고 했다가 나에게 상담 요청했던 학부모들은 나를 손절했다. 성적과 수능에 신경써야해서 그런건 필요없다고 했다.
추후 교수님들에게 그 전형에 대해 물을 기회가 있었고 면접에서 그 진위를 가릴 수 있냐 물어보니 정말 나를 세상물정 모르는 인간이라는 표정으로 보면서 그건 그냥 잘사는 학생들을 뽑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거 모르니? 라고 답해줬다.
그렇다고 나에게 그런 작업을 의뢰한 학부모들이 다 잘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분들은 누구는 교수 딸이라 누구는 대기업 다니는 누구 아빠 아들이라 누구는 고위공직자라 서로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 다 부모 빽으로 알아서 처리해준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그럴 능력이 없어 이렇게 사교육 업계에 돈이라도 밀어넣어 해줘야하는 처지라고 했다.
끔찍한 시절이었다. 인턴과 봉사활동도 일반 학생들은 청소와 노인간호 말고 없는데 교수 공직자 아들 딸들은 여기저기 고급스러운 인턴과 봉사를 하고 심지어 하지 않아도 다 발급서를 끊어준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나는 그저 그런 의뢰들을 다 거절하고 구청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청소를 한 학생들 자소서 작성을 도왔고 학생들하고 성실히 썼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쓰는 것을 금지했다. 상담 데스크에 아예 그런 류의 어떤 의뢰도 받지 않겠다고 적어놓기도 했다. 그 광기의 시절에 아등바등해 모든 악재를 뚫고 합격한 학생들도 있었다. 차라리 이딴 전형에 목숨거느니 수능 잘봐서 승부보겠다고 학교를 떠난 제자들도 꽤 있었다.
2017년~2020년쯤 돼서야 학교 밖 어떤 활동도 기재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런 제도는 족히 7년 이상 지속된 것이다.
조민과 비슷한 나이 또래 학생들은 웬만해선 그 트라우마를 다 가지고 있다.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뼈 때리게 경험한 세대. 그 세대들이 청년이 되어 586을 증오하고 진보를 참징하는 자들을 경멸하며 차라리 극우에 편에 서겠다고 했다면? 이 모든 것이 정말 아무 연관도 없는 이야기인가?
단순히 한 기득권 가정의 일탈일 뿐이며 검찰권력의 무도한 피해자로 정리될 수 있는지 맥락을 살펴야 한다.
진보적 의제를 내세우고 진보의 매력자본을 거머쥐고 법무부장관까지 된 그와 그들은 어떤 세대에 혹은 그 사회 전체에게 “아? 한국은 신분제 사회였지 참” 재확인 시킨일이라면 그 죄가 작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안은 없는가?

이여로의 글: 서울문화재단의 〈연극in〉 일방적 휴간에 부쳐: '2005년 체제'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이기는 싸움을 만들기로써… : 네이버 블로그

김민관의 글: 연극인, 남웅, 인미공에 대하여 :: ARTSCENE

둘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연극인>이란 게 (아방가르디스트라고 부르든 진보라고 부르든 엘리트라고 부르든) 소수에게 닫힌 영역, 그 소수가 소수성을 향해 그 영역을 열어 젖힌다는 역설을 포함한다면, <스파크>란 것은 다수성에게 열림으로써 반대로 소수성을 밋밋하게 해버린다는 것. 이건 가짜 민주적 지향이란 측면에서 기만이라는것.

짜치는 부분이 몇 군데 있지만 무엇보다 보편성을 지향하는 소수 엘리트의 아방가르드 실천을 '소수성'으로 부르는 장면인데. 사실 역사적으로도 현재도 그렇고 아방가르드는 남근적인 것이다. <연극인> 같은 채널은 현재 <세마코랄>이 그렇듯 마지널한 영역에 있지 않았을 것 같은데? 혹여나 그런 비슷한 게 있다면 정말로, 그건 주류가 다수이면 주류일 수 없다(의대 정원수 제한 류의 담론)는 의미에서 '소수'이지 않을까?

아방가르드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 사이에서 정녕 <스파크>가 더욱 해악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혹은 <스파크>가 해악이라고 해서 <연극인>이 과연 '실재'로 상정될 수 있는가? ㅋㅋ <연극인>과 <스파크> 양자택일에서 <스파크>를 선택할 수 없고 <연극인>은 이제 사라졌으니 성급하게 '이제 실재의 자리에 등극했다'고 선언하고 수긍하는 자의 이분화된 세계에서 그야말로 '소수성'이 끼어들 자리가 있는가? 

TBS 시절 <뉴스공장>의 예를 떠올려 본다. TBS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이 갑자기 유튜버가 되었다. 그래도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이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 

2025년 8월 6일 수요일

지원을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내란의 시대에 되돌아 보는 DJ의 문화민주주의 < 문화 모꼬지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팔길이 원칙이니 하면서 문화예술 정책의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이다. 물론 고마운?말이지만 한없이 권력의 입장에서만 나올 수밖에 없는 말이기도 하다. 약자를 돕자라는 말이 전제하는 건 (선한) 강자와 (순진무구한) 약자다. 

언제부턴가 문화정책 담론에 시큰둥해진다. 나와 전혀 다른 계통의 일인 것 같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이 상상하는 문화구조란 대통령-문체부-산하기관-지원사업의 관료적 체계 안에서 벌어지는 소요일 뿐이다. 만약 문화정책이 예술생산에 무언가 기반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그건 예술에 맹독을 타서 조금씩 들이키는 것과 같다. 

<간섭을 하든 말든 작업을 하자> 같은 슬로건은 어떨까? 이게 정신승리일지라도, 최소한 방법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25년 8월 3일 일요일

만들기/말하기

한국은 미술을 작품제작의 영역에 국한해서 생각한다. 미술비평, 미술사와 이론, 큐레이팅, 토크, 교육 프로젝트 등등은 미술이라기보다 미술을 지원해주는 무엇이다. 한국에서 성공적인 미술 정책의 핵심은 제작된 작품을 관객에게 잇는 것에 있다. 이 말이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미술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1800년대 후반 일본의 식산흥업 정책. 공예품을 만국박람회에 가져나가서 파는 것을 어마어마한 국제 무역 활동이라고 생각했던 그 아이디어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미술은 산업이고 미술작품은 산업생산품이다. 왜 이렇게 한국에선 작품과 관람객이 중요할까? 사실 관람객은 소비자이고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한 상품/작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니까. 사토 도신이 말하길, 미술은 제작과 연구, 만들기와 말하기로 구성된다고 한다. 만들기와 말하기는 다르다. 제작과 연구는 그냥 다른 활동이다. 지원하고 말고의 그런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연구는 지원하는 활동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결론은 좋은 상품과 좋은 소비자를 만들자는 구호에서 주저 앉는다.

2025년 8월 1일 금요일

안치운, 질문을 잃어 버린 한국연극

https://www.arko.or.kr/zine/artspaper2000_02/46.htm

제작극장이 뭔가 싶어서 찾아보다가 도달한 글이다. 
보아하니 링크가 불안해서, 나중에 다시 읽고 싶어서 박제.


질문을 잃어 버린 한국연극

안치운(연극평론가)

텅빈 손

그동안 연극에 대한 전반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기껏해야 짧은 공연평을 쓰는 것이 연극비평(가)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터에, 연극의 안팎에 접근하는 글은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연극제작과 공연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한국연극은 오랫동안 연극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포기하고 있다. 다양한 논의와 깊은 사유가 없는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겪고 있는 허장성세와 만연된 부실공사에 비유하면 좋을 것이다. 자연과학에 대한 지원과 기대는 많지만 예술이 지닌 사회적 역할은 점점 무시된다. 국가경쟁력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문화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 실제는 위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연극의 위기이기도 하다.

필자의 이 글은 연극 분야에 대한 지원이 쓸모없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지원금이 부족해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지원에 앞서, 지원에 의지한 채 연극하는 이들이 잊고 있는 것을 지적해 보려고 한다. 그 이유는 지난 몇 년간 좋은 연극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아 제작된 공연들 가운데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 드물다. 몇 년 전,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 책임자가 초청할 작품을 고르기 위하여 우리나라 공연들을 보고 난 후, “빨리 가는 미국식 쇼, 관광객들을 위한 밤무대 쇼같다”고 말한 것은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최근의 한국연극은 그 때와 비교해서 별 차이가 없다. 공연들은 애매모호하고, 각색이니, 해체니 하면서 이상한 탈을 쓴 공연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창작도 예외가 아니다. 삶에 지침을 주는 존재가 없을 때 삶은 거칠어진다. 오늘날 한국연극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교과서에 씌어있는 것처럼, 극장에 가면 연극적 경험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하기 어렵다. 그것은 전적으로 좋은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감히 말하건대 연극의 불황은 관객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역량이 부족하고 공연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제작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반성이 아니라 불평일 뿐이다. 우리는 이 점을 너무 잊고 있다.

필자는 다른 글 「풍경에 매혹된 기쁨-연극과 삶의 환경」에서, 오늘날 한국연극에는 “단계적 실험과정을 통해 장르 해체 이전의 원시적 공연 형태를 복원하고, 현대적 제의성의 재창출이라는 어마어마한 말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공연을 보면) 작가가 쓴 텍스트와 번역된 공연 대본은 다르다. 순서와 내용의 차이가 너무 크다.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생략된 부분이 너무 많다. 어디에도 연극의 온전함이 없다. 한국연극은 연극에 대한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가 따로 논다. 연극에 대한 언어가 연극하는 이들의 의식만 팽창시키고 확대시켰을 뿐이다. 그 끝은 분명한 자기소멸이 아닌가. 언어가 현실로부터 떨어져 나올 때 기표가 완전히 기의와 결별하는 것처럼, 연극과 연극하는 이들의 실제적 삶 사이에는 근본적인 균열이 생긴다. 떠올리기 싫지만 그 끝은 무섭다. 공연된 연극들은 무너진 기표가 되고, 연극하는 이들은 맹목적으로 연극을 일삼는 자동기계 장치로 전락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쓴 적이 있다.

2000년 새해 들어 한국연극계는 다시금 경제적인 문제들을 내세워 연극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연극은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가 있고, 연극에 관한 정부의 지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과연 그러한가? 서구의 연극 역시 예전에 비하면 턱없는 몰락의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첫째는 경제적 위기를 꼽을 수 있다. 경제적 위기는 모든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온다. 아주 갑자기.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연극은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함께,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해왔다. 연극은 이름하여 사람과 말을 함께, 하나로 모으는 장소요 역할이었다. 연극을 만남의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름답고 옳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고, 사람과 장소의 만남이고, 사람과 이야기의 만남이고, 몸과 몸의 만남이고, 몸과 말의 만남이고, 몸의 울림과 말의 들림의 만남이다.

연극의 위기란 이러한 만남이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지난 20년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극에 대한 전망은 어두었다.

연극예술은 사회적 위기의 한복판에 있고 분명하게도 그것으로부터 예외가 아니다. 이제 연극은 소수집단의 예술로서의 위치마저 포기할 위기에 빠져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자본과 기술이 지배하는 지금, 연극예술의 몫에 대하여 말하는 이들은 더 많아졌다. 세상의 거울로서, 이 세상에 대하여 말하는 연극을, 우리의 불안과 세상의 혼란을 무엇보다도 연극이라는 고유한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연출가였던 조르지오 스트렐러(G Strehler)의 좬삶을 위한 연극Th즺^tre pour la vie좭, 안트완느 비트즈(A. Vitez)의 좬이념들의 연극Th즺^tre des즜d es좭, 의제니오 바르바E.Barba의 좬연극, 고독하지만 혁명적인 직업Th즺^tre, Solitude m즨ier r즪olt좭등과 같은 책들을 보라. 고통스럽지만 다시 묻자. 연극이란 무엇인가를. 연극은 본질적으로 현실의 부재이다. 이 말은 연극과 현실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인데, 현실의 결핍 때문에 연극을 한다고 해석해도 된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이란 연극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보장하는 현실이 아니다. 이 말은 연극은 현실과 늘 길항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늘려 놓을 수 있다. 부재는 힘인가? 나약함인가? 현실과 현실부재의 사이를 메꾸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연극적 상상력과 우리 연극이 어떠한 모습으로 21세기의 연극에 입문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돈이 없어 연극을 못하겠다고 할 때, 서양연극은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질문했다. 그것은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sme)의 연극으로 좁혀지고, 국가라는 거대한 담론이 서서히 해체되는 것, 각자가 사회적 책임을 자신의 몫으로 인수하는 것, 국가라는 편리한 허울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뜻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처럼 주인공들이 서서히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떠나면서 시작되는 일종의 여행의 연극이 되었다. 여행은 내게 아무도 아닌 자의 철학을 배우게 한다. 나라와 나라의 경계를 넘을 때마다 영원한 여행 속에 편히 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길 위에 있기를 좋아한다. 주목하라. 기차 역 앞에, 버스정거장 앞에는 항상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즐비하게 길 위에 누워있는 모습을. 그들은 떠나지 못하는 절망과 떠나지 못하게 하는 억압의 상징이다. 이들은 이 억압의 주체인 국가에 대항하기 위하여 길 위에 나뒹군다. 그들은 길 앞에 무력하게 내버려진 이들이다. 그들 뒤에 그들을 무기력, 무능력하게 만드는 합법이 있다. 그리고 그들 앞에 구걸하는 불법이 있다. 길의 무화는 곧 자신의 무화를 뜻한다. 길이 막혀있다. 길이 없을 때 등장하는 인물들의 부재가 확인된다. 길이 없을 때 인물들은 분열된다. 절망한다. 무화된다. 아무 것도 아닌 나가 된다. 그러나 한국연극은 지금 텅 빈 객석을 바라볼 뿐 지금, 여기에서의 연극행위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잃어 버렸다.



역설의 가치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연극이 불황이라는 말들을 곱새겨 보자.

텅 빈 객석이, 취소되는 공연? 말을 바로 하면, 한국연극은 언제나 힘들게 이어졌다. 극장이 텅 비는 것은 공연작품이 형편없기 때문이고, 공연이 취소되는 것은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생긴 사태가 아닌가. 작가가 글을 쓸 수 없을 때는 잠시 쉴 수 있는 것이고, 극단은 돈이 모자라면 공연의 예산과 규모를 축소하면 될 일이다.

연극의 ‘모양’ 혹은 모양새란 무엇일까?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를 포함해서 연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 역설과 같은 것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다들 돈놓고 돈먹기 식으로 삶을 저울질 할 때, 삶 속에는 그렇지 않은 것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역설이다. 그것은 땅 한뼘크기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유전자조작을 통한 대량생산과 유통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큰 나라에 저항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해도 좋다.

한국연극은 90년대를 지나면서 역설의 가치를 거의 잃어버렸다.

연극하는 이들이 지닌 경향은 승자독식으로 바뀌었고, 흥행의 성공이 공연에 관한 모든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연극하는 이들을 만나서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돈이다. 많은 극단, 희곡작가, 연출가들은 문예진흥기금, 특수 지원금 등을 타서 활동하고 있다. 그 수혜자와 몇 천만원 혹은 일억이 넘는 기금들의 액수는 적지 않다.(좬문화예술좭 2000년 1월호 참조) 하여 많은 이들이 이 기금을 타려고 애를 쓰고 있다.

한 극단의 예산계획서를 살펴보면, 가장 많은 부분이 무대제작비이고, 배우의 몫은 참으로 적다. 이런 예산편성은 한국연극이 지닌 정신적, 물질적 결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사람과 공부에 대한 배려보다 무대셋트 제작, 프로그램, 포스터 제작, 극장 임대료와 같은 물리적 소비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대로 분배되어 연극을 생산하는 이들의 역량이 향상되지 않는 한, 그 많은 지원사업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 뿐이다. 작년과 올해 지원금을 받고 공연된 작품들 대부분이 졸속이었고, 나눠먹기식이었다는 연극인들의 자조적 표현이 무엇보다도 그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다시 묻자. 돈이 있어야만 연극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가? 이는 사실이지만, 돈의 지위를 강조할수록 연극이 존재했고, 존재해야한다는 가치는 추락한다. 생활이 안되는데 연극은 무슨 극이야라고 말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 말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는 것은, 연극과 연극하는 이들이 스스로 진정한 가치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방해하는 격이 되어 버린다. 연극하는 이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생활이되, 생산해서 이윤을 붙여 파는 유통구조 속의 생활이 아니라 자신과 연극의 존재를 되묻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가난하고 쓸쓸하지만 자유로운 생활이다. 이것이 연극과 연극하는 이들이 역사적으로 지녀왔던 역설의 가치이다. 강제로 연극하는 것이 아니라면, 연극하는 것이 자발적인 선택이라면 표현과 자유의 가치를 옹호해야 하는 것도 연극하는 이들의 몫이 아닐 수 없다.

잘라 말해, 오늘날 한국연극에는 깊은 세계를 지닌 작가들이 많지 않고, 감동을 주는 작품들이 거의 없다.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들 대부분이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이들이다. 연극은 연극 바깥의 기준에 주눅이 들어 버렸다. 그런 모습들은 성공을 돈과 인기와 비례하는 것으로 본 나머지 주변 장르와 구별되는 연극만의 독자성을 유지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 뿐이다. 배우, 연출가, 희곡작가들은 새로운 연극을 창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극장을 삶 속에 내세울 시도를 하지 못했고, 고전 희곡을 줄줄 외울 수 있는 배우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죽었다 깨어나도 연출을 고수하겠다는 연출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영세한 연극동네는 아직도 아마츄어들이 엉거주춤한 삶을 살다 떠나가는 간이역과 같다. 연극은 사람이 사람을 말하는 예술인데, 앞 사람이 허하고 가벼우니 뒷사람이 허깨비들이고 가짜일 수밖에 없는 노릇아닌가. 차라리 집에서 희곡 한편을 소리내 읽느니, 세익스피어 희곡을 영화로 만든 비디오를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연극을 하고자 한다면 다시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머리에 끈을 동여매고 책을 읽고 사유하면서 구두 밑창이 다 닳도록 걸어다니면서 너른 세상의 삶에 조응하는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연극을 꿈꾸는 수 밖에 없다.



공연의 끝에서 다시

텅 빈 객석, 늘 그렇고 그런 공연을 보는 비평(가)도 연극을 생산하는 작가들처럼 괴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연극비평도 가난하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연극비평(가)을 위한 지원은 거의 없다. 한국연극에서 연극에 관한 글쓰기로서 비평은 문학도 아니고, 연극의 생산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공연프로그램에 들어있는 주례사와 같은 비평은 비평이 아니다.

한국연극의 불황은 공연이전과 아울러 공연 이후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공연이전이 극단과 연출가와 배우의 몫이라면, 공연 이후는 비평가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비평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사실 상투적이기도 하다. 늘 그렇게 물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연극이 이렇게 초라해진 지금 이 질문은 유효하다. 작가가 공연의 생산에 대해서 책임을 지니고 있다면, 비평은 생산 이후에 대해서 질문하고 평가할 의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형편없는 공연 앞에서 어찌할 수 없어 망설이거나 부르르 떠는 것은 비평가의 글이 아니라 비평(가) 그 자체이다. 브레히트도 좋은 작품에 좋은 비평이 깃든다고 말했다.

연극비평(가) 앞에는 두 개 큰 항이 놓여 있다. 그것은 연극의 문제와 문제의 연극이다. 이 땅의 평론가들은 대부분 문제의 연극에 대해서만 말한다. 좋은 연극과 나쁜 연극을 가늠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하나의 작품에 대해서 긍정적인 면을 찾고, 보다 나은 점을 기대한다고 덧붙이는 것도 문제의 연극에 매달리는 비평의 상투성이다. 연극비평(가)이 이 문제의 연극에만 관심을 갖는 동안 연극의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다시 말해 연극의 근원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듯 되묻지 않게 된다.

연극의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문제의 연극에 대하여 연구하는 일보다 훨씬 심각한 일에 속한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연극의 정황을 사회, 미학적 문제로 읽어내는 일, 그것을 연극에 관한 글쓰기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여기에 연극은 미적 생산물인가, 경제적 생산물인가를 묻는 일도 포함된다. 필자의 견해로는 오늘날 문제의 연극에 관한 시선을 지닌 우리 연극(인)과 평론가들은 당연히 후자에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비평은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이 되고 만다. 그런 현상의 피폐는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평(가)은 희곡작가, 연출가, 배우의 결핍이 인정되고, 그것을 확인할 때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비평(가)의 글은 그들의 불만과 결핍을 향하여 달려간다. 그것들을 애무하러 땀을 흘리며 가까이 다가서려 한다. 글쓰기로서의 비평은 따뜻한 위로가 아니라 남김없이 벗기는 행위에 가깝다. 그 글은 작가들의 이중과 속을 벗기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비평과 비평가는 작가들의 가정부가 아닐 뿐만 아니라 작가들의 식구로서 가정을 꾸미는 이도 아니다. 비평(가)은 그들 밖에서 그들과 함께 존재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세계에서 결핍을 메타화하면 비평(가)은 그것들을 현실적 불만과 결핍의 언어로 바꾸어 놓는다. 사물을 메타화하면 언어는 반복된다. 그러나 언어를 반복하면 사물은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작가는 여기서 사물을 차별시키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차별시키게 된다. 작가는, 연출가들은 반복의 위험과 상실의 함정을 비켜가며 사물을 드러낸다. 좋은 작가와 연출가는 반복의 위험과 상실의 함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반면에 설익은 작가와 연출가는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빠져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곳은 함정이 아니고 보지 못하는 행위가 위험이 될 수가 없다. 그들은 한마디로 눈뜬 장님과 같다. 언어가 가끔씩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길을 잘못 안내하는 안내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그런 탓이다. 언어는 길을, 사고를 다른 방향으로 안내한다. 그것이 심해지면 언어가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모든 연극은 주제를 지니고 있다. 그 주제는 연극하는 이들이 연극으로 만드는 형상이다. 연극으로 주장하고 요구하고 연극으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책임감과도 같은 것이다. 모든 연극은 그것으로부터 시작하고 동시에 그것을 이행함으로써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차지한다. 연극과 연극인의 영광은 순간에 빛나고 동시에 순간에 소멸한다. 연극의 미덕은 바로 순간과 그 영광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아비뇽 연극제의 주제는 연극으로 돈을 버는 일이며(이것에 결코 머물지 않으면서), 연극과 연극인들이 당당하게 산업사회에서 자신들의 몫을 주장하는 일이며, 무대가 차지하는 사회적, 문화적 역할을 극대화하는 일로 귀결된다.



말의 절대성

연극은 관객들에게 어떤 것을 줄 것인가? 실망, 아니면 기대. 어떻게 연극이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묻자. 오늘의 연극은 관객들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연출가들은, 극단의 책임자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앞으로 그들의 계획은, 밝은 미래 아니면 희망의 무게에 짓눌리는 어려움? 연극이라는 역사와는 어떤 관계를, 어떤 연극의 역사를 남길 것인가?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이 말한대로 연극은 말들의 무덤처럼, 말들의 최후의 무대(l’ultime sc즢e du dialoque)가 될 것인가? 연극은 볼거리를 보여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어떻게 연극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가? 아니면 확인시켜야 하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벌써부터 텔레비젼과 영화같은 것이 독점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필자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아니라고. 그것은 연극은 살아있는 말들이 모여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연극의 말이란 살아있고, 유일하고, 모방할 수 없는 말이다. 사회와 그 비극적 정황들과 사람들의 고통과 원한,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말이다. 이런 것들이 결핍의 시대가 요구하는 아주 귀중한 연극의 반성이 아니겠는가? 경제적 위기라고 해서 연극 고유의 원초적 반성마저 아껴야 하겠는가? 연극은 원초적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제의, 신비, 텍스트의 아름다움으로. 관객이 한번 연극배우가 희곡 안에 쓰여있는 대사를 발음하는 연습장을 보았다면 놀라고 말 것이다. 관객들이여 보라. 무수하게 반복되는 똑같은 대사들 앞에 경건하게 몸을 세우고 배우는 말한다.

배우의 몸으로부터 울리는 말들은 나갈 뿐 되돌아오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 울린다. 되돌아 오지 않는 말들의 뒤에 항상 배우의 몸이 있다. 배우의 몸에서 나와 울리는 말들은 메아리가 없다. 저멀리 사라질 뿐이다. 그 사라질 뿐인 말들을 위하여 배우는 온 몸을, 온 정성을 다하여 소리내고, 몸을 움직인다. 조용하고 나직하게 그리고 사납게 소리지르기도 하며. 사라지는 말들은 배우의 몸의 고통과 환희를 담는다. 사라지는 것만이 울린다. 많은 연출가들은 배우들에게 사라지는 말의 울림이 배우 자신의 몸을 울리는 경험을 하라고 요구한다. 어려운 주문이다. 말이 울림이 배우의 몸을 울리는 것 그것이 자연스러운 연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포샤의 대사 하나 “내게 빛을 주시되 가볍게는 하지 마세요”.(5:1:129) 배우가 말을 반복할수록 말들은 더욱 견고해지고 결국에는 절대성을 지니게 된다. 연극이야말로 말의 절대성을 인정하고 요구하는 곳이 아닌가. 그런 맥락에서 배우는 가장 정확하고 바른 말을 하는 이라고 한다.

연극하기 어려운 지금, 연극인들은 단결해야 한다. 연극이라는 커다란 주제의 탑에 모여야 한다고. 아주 원초적 질문을 하기 위하여, 짧은 이익을 눈앞에 두고 헛갈리지 말고, 너무 일상적인 질문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연극으로서 경제적 이익보다는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다. 그것은 연극에 대한 반성을 필요로 한다. 반성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이면서 자신의 연극적 행위의 정당성을 묻는 일이며 동시에 경제적 위기와 이어지는 연극의 위기가 주는 불안을 진정시키고 연극행위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한 주저를 과감하게 벗어나는 길이다. 최종적으로 연극이야말로 문화적 소산임을 확신하고, 자신이 그 행동의 전위에 몸담고 있다는 자신감을 더욱 굳게 다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