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hankookilbo.com/m/v/50b07531531449f29cf5133ce35ad138
비겁하게 인용으로 떡칠했지만, 내용을 압축하면 고은의 삶과 문학을 분리해서 보자는 말이다. 이 사람이 진보 논객이라는 게 정말 웃긴다. 이들이 하는 일이란 주어진 문학, 이들이 믿어 왔던 문학을 사수하는 일이다. 김병익의 인터뷰와 뭐가 다른가? http://news.joins.com/article/22357457 문학을 지키면서, 동시에 문학의 진보를 말하는 게 가능할까?
2018년 3월 31일 토요일
2018년 3월 29일 목요일
죄인에게 돌을
위드유에 교묘하게 섞여 있는 악플 문화를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쁜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는 정당한가? 누가 그런 자격을 갖추었을까? 언제 그것을 합의했을까?
그리고 나서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또다시 성전에 나타나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앉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 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 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양심의 가책을 받아)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하고 말씀하셨다. - 요한 복음서 7장 53절~8장 11절(공동번역성서)다 자기만족인 것을... 부질없다.
2018년 3월 27일 화요일
마르셀 뒤샹+도스토예프스키=쿠르트 슈비터즈
마르셀 뒤샹의 반예술
도스토예프스키 <백치>에 나오는 간질병, 진리를 통찰하는 엑스터시
쿠르트 슈비터즈의 메르츠. 슈비터즈는 베를린 다다이스트의 정치적 성향을 배격했다. 다다이스트가 쓰레기를 쓰레기로 제시한 반면 슈비터즈는 쓰레기를 예술로 승화.
백남준은 <실험티비의 후주곡>에서 영원을 포착하는 2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는 "정점이나 불모의 영점에서 정지하는 것." 이는 의식의 비정상적 상태이며, 도스토예프스키의 간질의 경험이다. 의식의 이중성의 종합.
다음은 "독립적인 다수의 평행적인 움직임을 동시에 감지하는 것." 의식을 끊임 없이 지속하는 것. 사르트르적인 의미(인간의 의식은 언제나 대자적 자아)에서의 황홀. 의식의 통상적인 상태. 의식의 이중성(정신의 변증법적 진화)이 자유의 증거로서 보존된다. -> 12대의 실험티비를 동시에 감지하는 것은 신비주의자의 오랜 소원을 실현해줄지도 모른다는 것.
도스토예프스키 <백치>에 나오는 간질병, 진리를 통찰하는 엑스터시
"도스토예프스키가 18세 되던 해, 1839년 그의 아버지는 실제로 영지 농노들의 원한을 사 살해를 당하는데, 한 도스토예프스키 전기 작가에 따르면, 당시 그는 맞아 죽었을 뿐만 아니라, 성기도 잘려 있었다고 한다. 어떠한 이유로 농노들의 원한을 샀는지 그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최초의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의 첫 발작 시기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한 이견이 있지만, 어쩄거나 중요한 점은 그 후로 평생동안 이 병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떠나지 않았으며, 그의 많은 주인공들이 이 병을 나누어 가진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 <<백치>>의 미시킨 공작도, <<악령>>의 키릴로프도, 마지막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부친 살해자 스멜댜코프도 다 간질병을 갖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 간질 발작은 우리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질병의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간질 발작의 순간은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신의 세계를 넘볼 수 있는 경계 이월이 가능한 절대 황홀경의 순간이었고, 유한한 존재가 무한의 세계를 일순이나마 맛볼 수 있는 신비한 순간이었으며, 세계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의 순간이었다. 간질 발작이 일어나는 불꽃같은 찰나의 순간이 갖는 이러한 미학적, 철학적 의미들은 그의 작품 세계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진다." <백치 천줄 읽기> 중에서
쿠르트 슈비터즈의 메르츠. 슈비터즈는 베를린 다다이스트의 정치적 성향을 배격했다. 다다이스트가 쓰레기를 쓰레기로 제시한 반면 슈비터즈는 쓰레기를 예술로 승화.
“나는 다다이즘 미술을 그 가장 고상한 형태에 있어서 메르츠와 비교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다다이즘은 오로지 반대를 위한 시도이나, 메르츠는 이 반대항들을 예술작품에서 일상의 요소들에 상대적인 가치들을 부여함을 통해 화해시킨다. 순수한 메르츠는 순 수한 예술이고 순수한 다다이즘은 비예술이다.” Kurt Schwitters, “Banalität,” 1923, (in Kurt Schwitters, Das literarisches Werk, 1973-81, Bd. 5), p. 148.
백남준은 <실험티비의 후주곡>에서 영원을 포착하는 2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는 "정점이나 불모의 영점에서 정지하는 것." 이는 의식의 비정상적 상태이며, 도스토예프스키의 간질의 경험이다. 의식의 이중성의 종합.
다음은 "독립적인 다수의 평행적인 움직임을 동시에 감지하는 것." 의식을 끊임 없이 지속하는 것. 사르트르적인 의미(인간의 의식은 언제나 대자적 자아)에서의 황홀. 의식의 통상적인 상태. 의식의 이중성(정신의 변증법적 진화)이 자유의 증거로서 보존된다. -> 12대의 실험티비를 동시에 감지하는 것은 신비주의자의 오랜 소원을 실현해줄지도 모른다는 것.
미투와 위드유
미투
1. 우리는 성차별과 성폭력이 한국에 만연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미투의 광의의 목적은 성차별과 성폭력이 한국에 만연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3. 미투의 목적은 가해자 지목인의 사법적 처벌이 아니다.
4. 미투의 구체적인 목적은 가해자 지목인을 비사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5. 미투의 우선적인 방법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사실을 공개적으로 털어 놓는다.
6. 미투의 방법은 피해 사실 공론화 이후 사태의 추이에 따라서 결정될 수 있다.
7. 미투는 또 다른 미투를 요청한다.
8. 미투의 효과는 위드유다.
9. 미투는 오류가 발생할 수 없다.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위드유
1. 우리는 성차별과 성폭력이 한국에 만연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위드유는 성차별과 성폭력이 한국에 만연하다는 것을 알리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미투와 목적을 함께 한다.
3. 위드유는 미투 폭로자의 말을 공개적으로 지지함으로써 미투에 힘을 실어주려고 한다.
4. 위드유의 효과는 가해자 지목의 사회적 매장이다.
5, 미투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증폭시키는 것은 위드유다.
6. 위드유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투가 아니다.
7. 위드유의 목적은 본보기를 만듦으로써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있다.
8. 공신력 있는 사람과 기관의 위드유는 즉시 최대치의 효과를 발생시킨다.
9. 위드유는 오류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1. 우리는 성차별과 성폭력이 한국에 만연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미투의 광의의 목적은 성차별과 성폭력이 한국에 만연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3. 미투의 목적은 가해자 지목인의 사법적 처벌이 아니다.
4. 미투의 구체적인 목적은 가해자 지목인을 비사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5. 미투의 우선적인 방법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사실을 공개적으로 털어 놓는다.
6. 미투의 방법은 피해 사실 공론화 이후 사태의 추이에 따라서 결정될 수 있다.
7. 미투는 또 다른 미투를 요청한다.
8. 미투의 효과는 위드유다.
9. 미투는 오류가 발생할 수 없다.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위드유
1. 우리는 성차별과 성폭력이 한국에 만연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위드유는 성차별과 성폭력이 한국에 만연하다는 것을 알리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미투와 목적을 함께 한다.
3. 위드유는 미투 폭로자의 말을 공개적으로 지지함으로써 미투에 힘을 실어주려고 한다.
4. 위드유의 효과는 가해자 지목의 사회적 매장이다.
5, 미투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증폭시키는 것은 위드유다.
6. 위드유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투가 아니다.
7. 위드유의 목적은 본보기를 만듦으로써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있다.
8. 공신력 있는 사람과 기관의 위드유는 즉시 최대치의 효과를 발생시킨다.
9. 위드유는 오류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