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요일
2024년 4월 18일 목요일
Yuk Hui, ChatGPT, or the Eschatology of Machines
지피티로 위협을 느끼고 있음
칼 슈미트 등 모던이론은 모두 신학적 개념이 세속화한 것 -> 이런 이해는 모던의 합법성을 깎아내림
비슷하게 AI의 장점은 기계와 산업 프로파간다--모던 스테레오타입--에 의해 만들어진 종말론적 상상에 파묻혀버릴 지경.
AI를 테크니컬한 것 이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
지피티는 단순히 이해하지 못하는 패턴을 출력하는 게 아님 -> 재귀성(피드백)
원인-결과 매커니즘(선형적 인과관)은 자연, 기계론적. - 오가니즘에 대한 사유가 18세기 등장(칸트). 판단력비판. 생각(철학)은 유기체만 가능하다. <-이건 사이버네틱스 등장으로 종료
사이버네틱스는 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귀성. -> 비선형적 인과관계
지피티는 기계적(인간이 알 수 없는 기계적 알고리듬으로 이뤄짐)이지만도 않고 유기체적(모든 인간의 텍스트를 알고있다)이지도 않음. 통합함.
지성(intelligence)이 반성형식이라면 칸트는 그게 인간만 가능하다고 봤지만 사이버네틱 시스템에선 그렇지 않음
2024년 3월 3일 일요일
로기완
“이 돈 니 어머니 몸이다.“
이 말만큼 한국의 부모세대와 자식세대를 진절머리나게 연결하는 말도 없는 것 같다. 한국인에게 왜 이렇게 돈이 중요하냐? 돈이 내 자식이 탈북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기에, 그렇기에 삼촌이 아들 동의 없이 죽은 어미 시체를 병원에 팔아서 돈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영화가 제시하듯, 그런 감각으로 부모 세대는 세상을 살았기 때문이다. 믿을 건 돈밖에 없다. 돈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한국을 최첨단 자본주의 사회라고 한다. 한국인의 무지막지한 돈욕심에 대해 누군가는 비판한다. 자본주의에서 돈의 탄생은 주체와 노동 사이의 소외를 가속화시킨다고 한다--돈은 나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에게 돈은 주어진 세상에서 그나마 믿을만한 것이다.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고 신분을 위조하고 새 사람으로 살 수도 있다. 행복할 수 있다. 반대로 돈이 없다면 죽는다. 시체가 된다. 장난이 아닌 것이다.
이 돈이 곧 내 몸이다. 내 어머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곧 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말이 되나? 내가 이해하기론 한국에선 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인이 돈을 사랑한다면 그 의미는 좀 다르게 이해해봐야 할 것 같다. 그게 뭔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2024년 2월 29일 목요일
2024년 2월 14일 수요일
유은순 편, (보이지 않는) 협력자들 (2023)
큐레이터 세상이라는 홍보라매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가 있다. 이 카페는 큐레이터를 꿈꾸는 비전공자가 거의 유일하게 관성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준학예사. 왜 관성적이냐면 큐레이터란 직업을 가지기 위한 막막함이 자격증 시험으로 마치 해결되는듯 보이기 때문이다. 큐레이터 세상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경력이 없고 비전공자여서 해맑아보이기도 하고 좀 안타깝기도 하다. 대학원을 진학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고민도 있다. 서울대 홍대, 어디가 좋냐 무슨학과가 취업이 잘 되냐 뭐 그런 질문들이 검색만 하면 같은 질문이 수십개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또 올라온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소위 말하는 국공립미술관 박물관 진입에 실패할 것이다.
그리고 큐레이터 모여라란 사이트가 있다. 이 사이트는 큐레이터 세상에서 하는 준학예사 자격증 장사의 실체, 허위성을 까발리다가 제적당한 회원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보기에 준학예사 자격증은 실제 취업시장에서 실효적이지 않다. 차라리 단 번에 안정적인 정규직 자리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 큐모다. 석사학위가 있고 국공립박물관 미술관의 공무직, 임기제 자리를 준비하거나 이미 해본 사람들, 혹은 몇번 기간제 일을 하다가 그지같아서 빠르게 '공시'로 전략을 바꾼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여기 사람들은 기관 경험자이거나 미래 공무원이라서 그런지 어투부터 사고방식이 매우 '공무원'스럽다는 것도 특징이다.
큐레이터 모여라 회원은 느낌적으로 큐레이터 세상 회원을 낮은 직급처럼 본다. 큐모 회원은 그냥 느낌으로 보기에 대부분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당연히 관련전공자다. 이들이 봤을 때 큐세 회원은 박물관 미술관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왜냐면 기관은 학위와 철저한 검증절차, 시험을 통해 걸러진 사람들이 일하는 전문적인 매우 중요한 기관이어야 하기 때문이고, 자신들은 곧 그 기관의 당당한 '학예연구사'로 일할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은순이 편집한 (보이지 않는) 협력자들이란 책을 보았다. 내가 보기에 협력자는 큐세의 맹목성과 큐모의 능력주의를 거쳐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들 스스로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조직이 싫지만 떠나기 못하거나 떠났다고 하더라도 다시 조직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조직에 들어가기에 무언가를 결여하고 있기에 말하자면 정직원이 되기 힘든 사람이다. 10년을 기간제로 살았더니 현타온다 뭐 그런 것이다.
이들은 큐레이터가 무엇이냐 학예보조가 무엇이냐를 시종일관 테이블에 올리지만 사로잡힌 건 직급이다. 이들이 보는 미술 세계는 마치 직급으로 구성된 곳처럼 보일 것 같다. 거기서 1등 시민이 있고 2등 시민도 있고 불가촉천민도 있는 것이다. 학예연구사라는 최고의 자리에 나도 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문제 의식은 '학예'라는 것에 항상 한정되어 있다. 사실 이들의 고민과 더 가까운 사람들은 비슷한 초단기 기간제 노동자일 것이다. 매표나 미화 등의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학예보조를 하면 자연스럽게 햑예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번지수를 잘못찾았다. 국공립의 채용구조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사립미술관 갤러리는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그런 선택지는 없다. 대우가 별로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이들이 되고 싶은 것은 학예연구사가 아니다. 정규직 공무원이다. 그럼 답은 간단하다 큐모의 단계로 돌아가 공시 준비를 하면 된다. 하지만 이들은 그것을 하기도 힘들거나 싫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공립이 바뀌어야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기간제가 정규직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 같은 것이 문장 속에 녹아 있다. 그렇다면 공무원 조직 구조가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단 한 사람 직책이나 직급이 아니라 역할에 주목한 사람은 박성환뿐.
홍이지 같은 사람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