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7일 금요일

‘우리’는 걸어가면서 길을 만듭니다?

‘우리’는 걸어가면서 길을 만듭니다?

/ 안대웅 (유능사 일원)


서언


예전 같이 일하던 큐레이터 중 한 명은 종종 아이를 직장에 데려왔다. 그 아이는 산만하게 칭얼댔는데 그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놀이터에 가면 안돼? 언제 갈거야?” 엄마(이자 큐레이터)는 몇 일 전에 갔지 않냐면서, 누구누구 엄마에게 물어보겠노라고 아이를 달랬다. 나는 이 말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놀이터에 왜 엄마의 허락 받고 가야하는 것일까? 엄마와 같이 놀이터에 가는 것일까? 실로 그랬다. 엄마들끼리 길드를 짜, 품앗이로 한 달에 몇 번씩 돌아가며 놀이터도 데려가고 집에서 놀아주고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안전 때문에. 그 아이에게 놀이터 같은 공공장소는 반드시 감독 하에서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학교, 학원, 놀이시간 등 그 아이의 하루 일과는 (비록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꼼꼼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도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 때문에 흉흉했지만, 또 치마바람이라는 말도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이런 꼼꼼함에 비하면 굉장히 방치되었던 것이구나라고 새삼 느꼈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곤 애가 너무 산만했다!)

나의 유년 시절을 잠시 떠올려보자. 나 역시 치맛바람에 시달리는 유년 시절을 겪었지만, 그나마 일일 할당량을 채우면 그 외엔 뭐가 되어도 좋다는 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동네 노는(?)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시간에 동참하기 위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오늘 할 공부를 빨리 해치우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물론 숙제를 다 못해도 나가 노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우리 동네는 그 부근에서도 잘 놀기로 소문난 아이들이 많이 살았다. 다른 동네 아이들이 놀기 위해 이쪽으로 찾아올 정도였다. 놀이는 먼저 온 아이들이 주제를 정해서 놀고 있으면, 나중에 온 아이들이 “나도 끼워줘”하는 식이었다. (안 끼워 주는 날도 많았는데, 그래서 시간을 항상 엄수해야만 했다.) 놀이 주제도 다양했다: 비석치기, 진돌, 고무치기, 콜라, 술래잡기, 주먹야구, 발야구, 번호부르기, 이후에는 자전거경주, 줄넘기, 훌라우프 배틀, 미니카 경주 등. (나중에는 할 게 없어서 놀이를 발명하기 위해 머리를 끙끙 싸매기도 했다.)

자, 불과 20년 전만 해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그냥 하는 게 당연했던 놀이가, (오늘날 정말로 실현된 것처럼 보이는) 그 금기가 지금, 예술적 실천, 혹은 대안적 교육이란 다른 이름의 얼굴로 우리를 다시 한 번 방문한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보인다. 지난 해 나는 꿈다락 토요문화예술학교 통합예술감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수업 몇 개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이제의 “드래곤 스트~라이크!”, 남정애의 “군것질로 생각 그리기”, 유라유라의 “딴짓”, 전송이의 “생활의 작은 발견”. 그러니까 어린 나의 버전으로 번안해서 말하자면, 마음대로 그리고, 맛을 좀 짓궂게 표현하고,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음식으로 장난치는 것이다. 아마 어른들이 봤으면 하지 말라고 호통쳤을 아이들의 나쁜 버릇,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어서 몰래 했던 그런 장난이다. (그 말괄량이 아가씨는 이 교육에서 만큼은 엘리트일지도 모른다.)

물론 호이징거의 말처럼 어쩌면 놀이는 인간 활동 전반에 근본적일 수 있고, 예술 또한 그 범주에 당연히 포함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상과 예술의 통합’이라는 테제는 과거의 (어쩌면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가장 급진적이었던 미술의 전매특허이기도 했다. 이 수업을 담당한 예술가들 또한 자신의 예술적 방법론을 놀이로 프로그램화 해서 무언가 다른 방식의, 비관습적인 형태의 (일상과 더욱 가까운) 교육을 진행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술의 교육적 혁명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그런데 이 혁명은 근본적으로 누구에 의해 기획/관리되는가? 명백히 제도기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몫이다. 이런 양상—그러니까 예술적 실천이 교육 프로그램화되고 그것이 제도에 의해 기획되는—은 나에게 꽤 흥미롭다. 사실, 교육으로의 전환이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다면적으로 나타난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의식했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말이다.


컨템퍼러리 아트의 교육적 전환


“컨템퍼러리 큐레이팅은 교육으로의 전환에 의해 표명된다.”[1] 폴 오닐과 믹 윌슨의 2010년의 편저 <큐레이팅과 교육적 전환(Curating and the Educational Turn)>의 서문은 이런 확신의 찬 어조로 포문을 연다. 전시와 비엔날레에서 최근 몇 년 유사-교육적 프로젝트를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오닐과 윌슨이 열거하는 이런 징후의 예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다니엘 뷔랭과 폰터스 훌텐의 Institutdes Hautes Étudesen Arts Plastiques(1996); 2002년 도큐멘타 11의 '플랫폼'; 2007년 도큐멘타 12의 교육적인 라이트모티브; 마니페스타 6의 아트 스쿨 그리고 관련 책자인 <Notes for an Art school>; unitednationsplaza와 Night School 프로젝트; 프로토아카데미(protoacademy); Cork Caucus; Be(com)ing Dutch: Eindhoven Caucus; Future Academy; The Paraeducation Department; ‘Copenhagen Free University’; A.C.A.D.E.M.Y.; Hidden Curriculum; Tania Bruguera’s Artede Conducta in Havana; Art School Palestine; Brown Mountain College; Manoa Free University; and School of Missing Studies, Belgrade.[2]

여기 열거한 프로젝트와 작품, 아트스쿨이 오늘의 주제는 아니지만, 이런 예술 실험과 실천들이 확실히 전지구적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들 작업과 전시는 디스커션, 토크, 심포지엄, 교육 프로그램, 논쟁, 출판 등 담론적 실천에 해당하는 부대 행사 격의—교육적인—요소들을 메인이벤트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그 수행적이고 정치적인 이론적 실천을 제도 안에서 실행한다.)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부산비엔날레를 예로 들어보자. 2012년 독일의 로저 M. 뷔르겔 감독의 지휘 하에 열렸던 <배움의 정원>은 사실 한국에서 이렇다 할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관람객 일반이 마주친 것은 당혹감 아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비계와 가림막으로 치장(?)된 멀쩡한 건물 외관, 별다른 거대 담론보다, 차라리 ‘한국을 배운다'는 시시한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하는 감독의 (조금 성의없어 보이는) 짧은 서문, 그에 비해 난해한 미술작업, 곳곳에 깔린 파레트와 소파와 방석에 퍼질러 누워 있는 관람객, 그리고 배움위원이라고 명명된 정체 불명의 특별히 성가신 도슨트들. 조금 폭력적으로 말하자면, 제목을 보고 거대 담론을 읽고 이해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전시장을 들어서면 무언가 진지하고 위대한 정신을 대면한 후 전시장 밖을 나설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선사하는 일에 이 전시는 실패했다. 기존의 전시 비엔날레와 으레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면밀히 살펴볼 수록 성가신 가림막이 쳐 있어 끝내 그 속을 들여다보기 힘든 전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림막의 이름은 ‘배움(learning)’이다. 어느 정도는 뷔르겔 감독의 나태함을 탓해도 좋을 것이다. 그에게 부과된 담론적 실천의 영역을 통째로 배움위원에 이관했으니까. 그래서 혼자 조용히 전시를 보고 싶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도슨트, 자신의 충만한 지식을 어떻게서든 과시하고 싶어서 안달난(이들은 작업 프로덕션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 성가신 배움위원을 통과하지 않으면 이 전시의 진수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전문가일 수록 당혹스러움은 배가 될지도 모른다; ‘이 비전문가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이 전시를 자세히 비평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더라도, 다음의 사실은 언급될 필요가 있다. <배움의 정원>에 전시된 대다수의 작업은 명백히 일반인을 대상으로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작업 특유의 컨텍스트는 전문가라도 제대로 판독하기 힘들 정도다. 이 전시에서 그 개별 작업의 의미는 정확히 고찰될 수 있을까? 뷔르겔은 ‘그렇게 해보라’고 제안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어디에도 정확하고 이해 가능할 만한 정보를 심어 놓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히려 그가 공들여 제공한 정보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배움위원 뿐이다. 그 결과 전시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디스커션 플랫폼으로서 진동한다. 여기서 개별 예술작업의 진정한 의미 자체는 과정으로서만 중요하게 작용할 뿐이다.

그렇다면 뷔르겔은 큐레이터인가 예술가인가? 그는 (필시 큐레이토리얼 실천의 일환으로) 담론을 제시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예술가의 창조성을 바탕으로) 조직하는 사람인가? 분명한 것은 동시대 미술이 개념적이고 사회적 실천과 깊이 연관되면서, 오늘날 예술가와 큐레이터 사이의 경계는 뚜렷히 구분되지 않는다. 오늘날 큐레이팅은 하나의 작품으로서 인식되고 관람되고 비평된다. 다시 말해, 큐레이터(혹은 이런 실천에 연관된 예술가)의 직업적 위치가 전시 호스트에서 창조자로—또는 전시가 또 하나의 창조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이동했다. 게다가 각종 기관과 비엔날레, 아트페어, 페스티벌, 공공 프로젝트, 지원제도 등이 증가하면서,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더욱 높아졌다. 이때 큐레이토리얼 플랫폼은 제 특성상 강력한 제도적 권력을 가진다. 즉, 이렇게 말해볼 수 있다. 동시대 미술의 창조성은 작가보다 큐레이터에게서, 작업보다 전시에서 더욱 강력하게 결정된다—제도(institution)는 열린 계정으로서, 예술과 이론의, 큐레이토리얼의 실천의 장이 되었다. 이 말에 시차를 조금 적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이 번안된다: 예술과 이론의 실천은 큐레이터/큐레이팅에 의해 더욱 강력하게 매개될 수 있다. 이 강력한 매개 기능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교육적’인 차원의 실천과 교집합을 이룬다. 즉, 창조적 큐레이토리얼 실천은 필연적으로 전시의 담론을 교육적 담론에 포갠다.

그 결과, 오히려, 이런 실험과 실천들이 점점 더 예술적 실천이라기보다, (조금 더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의미에서의) ‘교육’이라는 범주 안에서 프레임되어 가는 경향이 생겨난다. 일종의 “교육의 큐레이토리얼화(curatoriallisation)”[3]. 그러니까 후자는 어쩌면 아까 전에 언급한 <배움의 정원>과도 구별되는, 하지만 또 거의 비슷한 이야기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어떤 우려스러움이 은밀하게 동반됐을지도 모르겠는데, 그것을 광범위하고 복합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우리가 ‘제도’라고 부르는 것의 자기수정 과정 그 자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제도의 미학화라고 간단하게 불러도 좋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조금은 조급하게 우리의 진짜 관심으로 들어가보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란 규모의 제도 산하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들 중, 이 글의 주제인 ‘통합예술감상’ 프로그램은 진정한 의미에서 큐레이팅된 교육이라 할 만 하다; 비유하자면 큐레이터(기획자)가 있고, 작가(예술 강사)가 있고, 관람객(아이들)이 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꿈다락은 2012년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주5일 수업제가 전면 실시됨에 따라, 토요일 “아동, 청소년 및 가족이 참여하여 문화예술 소양을 함양하고 또래·가족 간 소통할 수 있는 여가문화를 조성하는” 국가차원의 공식 문화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 중 ‘통합예술감상’은 또 다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음악, 미술, 무용, 사진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합한 다면적인 형태의 감상 프로그램”이다. [4]이 프로그램은 공공미술삼거리의 기획과, 작가이자 기획자인 양철모와 김월식의 자문 하에 조성됐는데, 이들은 예술의 장르적 향수 차원에 머물러 있는 예술감상의 선입견을 예술가의 독특한 지식을 통해 해체시키는 한편, (말하자면) 존 듀이식의 경험론적 교육과 접목시키는 기획을 했다. 이른바 “통합감각사용”이라는 기획. 이 기획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 방법론—필시, 유동적이며 가능성으로 충만한—에 기반해, 그 감각을 사용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아이들은 그런 감각을 통해 각자의 고유한 가능성을 수행적으로 발견한다. 마치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의 작동 원리처럼. 그러니까 공간과 작업은 예술적 프로덕션이라고 할 수 없다고 손 치더라도, 이들의 실천은 충분히 실험적인 큐레이토리얼 실천에 매우 가까운 것이다. 큐레이터에 의해 주도된 교육-전시이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한 사업으로서.


준자율적 공간으로서의 교육 플랫폼


그러니까 다시 정리하면, 이런 것이다. 유연하고 과정을 지향하는 변화하는 지식 모델—진보적인 큐레이토리얼 모델이 종종 지향하는—이 제도 그 자체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해,

큐레이팅은 제도가 되고 있다.

그리고 제도는 큐레이팅이 되고 있다.

이 명제에서 제도를 교육으로 치환해도 무관하다는 점을 두 번 상기할 필요는 없겠다. 사실, 오늘날 많은 교육 정책과 현장에서 ‘창조성’은 소위 신자유주의적 테제와 결합되어 소비되고 있다. 이런 질문은 오늘날 떠오르고 있는 창조경제나 인지자본의 문제를 쉽게 상기시킨다. 서동진의 용어를 빌린다면 이런 사회는 “자기계발하는 주체”를 주물한다. 유래없이 가볍고 빨라진 선진자본주의의 동력원으로서, 자본이 지식화되고 문화화한 전지구적 상황에서, 창조적 인간—제 스스로 탄력적으로 그 상황에 적응해 나가는 유동적 주체—이란 틀 자체가 훈육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대중의 광범위한 문화적 요구가 공공의 영역에서 없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이것은 역설적으로, 근대적 의미에서의 천재, 저자성과 관료 엘리트주의를 깨부순다. 예컨대 공공의 요구에서 미술관은 점점 개방되어야 한다. 과거의 근대적 미술관 모델, 즉 작품을 보존하고 연구하고 전시하는 엘리트적 장소에서, 대중들이 사람을 만나고, 커피를 마시고, 휴식하고, 영감을 받고, 그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그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참여적 미술관”의 모델이 오늘날 점점 더 강력하게 요청되고 있다. 이때 큐레이토리얼의 교육적 실천은 항상 지역사회와 커뮤니티, 관람객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관람객 자신조차 몰랐던 제 가능성의 발견을 수행적으로 (다른 말로 창조적으로) 모색하길 권장한다. 이때 관객은 작가 이상의 풍부한 창조성을 가진 주체로서 등장하게 된다.[5] 하지만 이럴 수도 있다. 이때 관객은 근대적 천재 이후, 창조경제와 지식산업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지식-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새로운 천재로서 가정될지도 모른다. 이런 새로운 천재는 진정 신자유주의화한 천재로서 문화권력을 빠르게 자본화하는, 탐욕스러운 문화 포식자의 모습으로 현상할지도 모른다.

교육적 전환이란, 따라서, 굉장히 모호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문제적인 테제인 셈이다. 하지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제도가 반드시 전복되거나 파괴되어야만 하는 대상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 전혀 아니다. 제도는 언제나 변한다. 그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굉장히 유연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예술가의 어떤 프로덕션이 반동적이거나 퇴행적이라면, 반드시 그 제도는 퇴행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누구 하나만의 잘못이나 책임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어떤 예술가가 자신의 프로덕션—교육 프로젝트든 그것이 작업이든—에서 미술관의 벽을 무너뜨리길 원한다면, 그 미술관은 그것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여기서 협상과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6]

이런 전제 하에, 교육적 실천의 장은 크게 두 가지로 보여진다. 하나는 미술현장에 기반한 것으로, 전시나 비엔날레 등 더욱 실험적인 실천이 허용되는 장소에서 큐레이터와 예술가에 의해 주도되는 예술적 실천이다. 이때의 소위 예술적 지식인들은 최소한 도구적 지식 세계에 저항할 수 있는 예술적 교육 형식을 창안하는 데 좀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한편 다른 하나는, 아카데미와 기관, 즉 미술관과 갤러리, 대학, 문화재단, 지식생산공동체 등의 장소를 가정하는데, 이때의 실천은 예술과 창조성의 생산이 관습적 엘리트주의적 지식에 흡수되는 것을 저항하는 형태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여기서의 핵심은 이런 것이다. 어떻게 예술이 일상적이고, 꼭 그만큼 제도적인 지식생산과 실천에서 거리를 둘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 그러니까 예술적 자율성에 관한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지금 여기서 세상과 동떨어진 예술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관습적인 공간에서부터 구분되어 떨어져 나올 수 있는 예술적 활동 공간, 즉, 할 포스터가 어디선가 말한 “준자율성(semi-autonomous)”[7]을 제도적 공간 안에 전략적으로 창안할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때의 준자율성의 조건은 신자유주의적 조건이 그토록 유연한 것 같이, 꼭 만큼, 절대적이라기보다 상황적이며, 반응적일 형태일 것이다.

이때의 예술가는 끊임없이 상황을 조직하고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무수히 많이 겹쳐진 제도적 레이어를 적절히 배치하고, 그 안에서 그 주체들이 서로 질문하게 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더욱 교육 다운 교육인가? 예술 다운 예술인가? 나는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가? 너는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가?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 등등 아이부터 어른까지, 관리자에서 예술가 스스로까지 다양한 질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야 하며 그 안에서 서로는 각자의 충실함에 끝까지 기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준자율적 교육 플랫폼은 관습적 제도와 필연적으로 적대 관계를 형성할지도 모르며, 그 관계 속에서 생겨난 비평적 거리가 어떤 저항에 있어 유효 판정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제도 또한 자신의 문제를 반성하고,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통합예술감상의 경우


나는 통합예술감상의 제도적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그리고 기획자/예술강사, 부모. 이 세 가지 주체는 피교육자에게 이미 주어진 전제 조건로서, 어떤 일과를 제시하는 자들이다. 먼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자타공인 예술제도 기관으로, 이 사업의 근본적인 기획자이자 책임자다. 또 기획자/예술강사는 이 기획의 세부 진행방안을 세팅하고 진행하는 자이며, 부모는 이 교육사업—즉 꿈다락 문화예술학교—을 신뢰한다는 전제 하에, 제 아이를 위탁하는 자다. 한편, 이 주체들의 기대를 써보면 이렇다. 모두가 성공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되는 것을 기대한다는 전제 하에, 진흥원의 경우, 수혜자의 좋은 반응과 평가를 기다린다. 하지만 기획자/예술강사의 경우, 자신의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잘 진행되길 바란다. 부모의 경우, 제 자식이 가장 질 좋은 문화 교육을 받길 원한다.

이 세 가지의 역할과 기대가 서로 합의되어 이 사업이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대통합은 그리 견고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령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겠다: 이들의 합의 속에서 억압된 것은 무엇일까? 만약 그들 각자가 자신들의 기대에 비추어 프로젝트의 과정과 성과를 평가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말해져야 할까?

이런 질문이 가능한 이유는 최초의 당위적 전제, 이 삼각편대가 모두, 가능한 가장 훌륭한 문화교육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점 때문이다. 피교육자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자, 그렇다면 이런 명제는 모두가 질문하고 대답하고 공유하고 토론해야 할 가치가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이, 바로 제도면서 동시에, 현장에서 사건을 만들어내는, 정확히는 사건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사람인 기획자/예술강사다.

나는 앞서 예술가가 준자율적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준자율적 공간은 상황적이고 관계적 것으로 주장됐다. 이런 견지에서 예술가의 프로젝트는 주어진 상황의 관습성을 폭로하고, 그것에서 떨어질 수 있는 자율적 조건을 제 프로젝트 안에서 고안해야 한다. 그것은 어떤 형식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각자의 기대에 충실하기, 곧 그로 인해 적대적 관계의 폭로될지언정,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변증법적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가령, 부모가 이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진흥원에 민원을 넣는다면? 이런 끔찍한 상황은 물론 고려되지 않아야 하겠지만, 상상되지 못하는 상황도 아닐 것이다. 만약 교육 프로그램 자체가 그런 상황을 특정적으로 조건지을 수 있다면, 그래서 서로 간의 동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면 어떨까? 그 속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일반 관습이 투쟁하는 한편, 꼭 그만큼 진정한 예술적-교육적 형태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그 가능성을 상상하는 실천은 순간적으로나마 예술적 자율성을 지시할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을까?

나는 최초의 어딘가에서 (이제는 드물어진) 놀이문화에 관한 유년시절의 기억을 수다스럽게 늘어 놓았다. 그런 놀이문화는 내가 보기에, 통합예술감상 수업에서 전적으로 방법론적 모델로 차용되었다. 물론 그런 기억이 아이들에게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일견 중요할지도 모른다. 사실일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만이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경험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가, 합당한 이유가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가령 그들의 부모는 잘못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예컨대 그 경험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안전의 문제와 함께 사실은, 오늘날의 아이들에게 그 경험이 진실로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들에게 국영수 과외는 진실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일까? 만약 프로그램에서 이런 대화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예술가: “통합예술감각 수업을 이제 시작해요.” 아이: “통합감각사용을 왜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게임이 훨씬 더 재밌어요”라던지. 부모: “집에 들어가서 학습지 해야지.”라던지. 물론 아이와 부모는 이런 정확한 말을 하지 않는다. 말보다 행동으로 좋음과 싫음을 표현할 것이고, 그것에도 많은 동기부여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보다 이것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덜 성숙하거나 자신이 없는 유아일지도 부모일지도, 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다고 해서 시도를 해보지 않을 이유도 없다. 아니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예술이란 그런 것 아닌가? ‘가능성’이란 그런 것 아닐까?

이런 견지에서 봤을 때 ‘통합예술감상 프로그램의 사용방법’은 이렇게 제시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제도적 권한과 한계는 명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욕망의 주체—심지어 아이들을 포함해—가 그 관습과 한계,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상호 교류하는 것, 그 적대 상태를 드러내 보는 것 그리고 그 방식을 창안하는 것은 그리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예술 혹은 큐레이토리얼 실천이나, 교육과 배움이란 측면에서 모두 중요해 보인다.


결언


이것은 내가 큐레이토리얼 실천과 교육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를 통합해서 바라보는 하나의 방법이다. 여기서 관습적인 페다고지의 원칙은 거의 고려된 바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믿는다. 그보다 예술가의 준자율성에 기댄 비평적 교육의 플랫폼이 비평으로 작동하고 그것이 교육과 사회를 움직이고, 또 아이를 변화시킨다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나에게 더욱 즐겁다. 또한 이 글은 조금은 구조적이고, 형식적 관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명백한 한계다. 좋은 프로젝트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발로 뛰어다니며 현장을 충실하게 찾아다니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니터링한 프로젝트 중 몇몇은, 솔직히 말하자면, 강남식 영재미술교육과 비슷하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도 면밀히 살피지 못한 나의 피상적인 인상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보완해보려고 한다.

저명한 민중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교육자의 이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교사는 모든 것(everything)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학생은, 정확히 틀지워져있기 때문에, 교사의 손에 그들의 몸과 영혼을 노출시킵니다. 마치 학생이 예술가를 위해 준비된 진흙이었던 것처럼. 교사는 당연히 예술가입니다. 그러나 예술가는 그/녀가 프로필을 만들고, 학생을 틀 지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에듀케이터가 가르침에서 하는 것은, 학생들이 그 자신 답게 되는 가능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그/녀는 학생의 자유와 권리로서, 민주적으로 관계의 경험을 살아갑니다.”[8]

이 글에서 나의 아이디어는 정확하게 그의 의견과 일치한다. 학생들이 그 답게 되는 가능성을 만들기. 그 가능성의 조건을 현대적 삶 안에서 모색하는 사람이야말로 교육자이면서 예술가일 것이다. 여기서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교육자와 학생의 역할은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그 역할은 서로 동등하게, 자유를 지향하는 것 안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프레이리는 이런 교육의 이념을, 함께 걸어가며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에 조그마한 첨언을 하나 덧붙이고 싶다. 함께 걸어가며 길을 만드는 일은 절대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많이 다르지만, 좋은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엔 동의한다. 반대로 말해 좋은 길에는 동의하지만, 우리는 그러기에 너무 다르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더욱 많은 질문을, 가능한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여기엔 분명히 많은 갈등과 회의, 절망, 분노, 질투, 심지어 폭력이 동반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과 교육의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한, 그것은 해 볼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를 통해 어떤 이는 그 자신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어수선하면 항상, 교육의 문제가 제기된다고 한다. 교육의 문제는 언제부터 제기되었을까? 까마득해서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런 사회에서, 아이는 물론, 예술가는 그리고 교육자는, 인간은, 우리는 더욱 성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더 많이 토론하고, 싸우고, 공감하고 배워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어떤 공간은, 언제나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통합예술감상 모니터링 원고로 쓰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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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ul O’Neill & Mick Wilson(ed), Introduction in “Curating and Educational Turn”, De Apel, 2010, p.13.
[2] Ibid.
[3] ibid, p.14.
[4] http://toyo.arte.or.kr/Introduction.do (검색일: 2015. 2. 27)
[5] 여기에 대해 자세한 논의는 니나 사이먼(Nina Simon)의 탁월한 저서, <참여적 박물관(the Participatory Museum)>(Museum 2.0, 2010)을 참고하라.
[6] Daniel Buren and Wouter Davidts, Teaching Without Teaching, O’Neill, Ibid, p.222 참고.
[7] 준자율성에 관해선 할 포스터의 <디자인과 범죄 그리고 그에 덧붙인 혹평들>(시지락, 2006)의 제2장 “디자인과 범죄”를 참고하라.
[8] Myles Horton and Paulo Freire, “We Make the Road by Walking: Conversations on Education and Social Change”, Temple University Press, 1990,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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