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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ul O'Neill and Mick Wilson(ed), "Curating and the Educational Turn", Open Editions / De Appel Arts Centre, 2010. |
"큐레이팅과 교육적 전환"이란 책의 서문을 읽었다. 서문인데..이 책에서 최고 어려운 글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좀 고생했다..기보다 짜증났다. 그런데 잘쓴 서문이다. 큰 배경부터 주제의식과 그 문제, 포인트 설명, 콜랙션된 글들의 grouping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나도 나중에 편저서 내는 것이 하나의 작은 꿈인데, 그때 서문을 정말 잘 써내고 싶다. (...)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교육적 전환이란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자는 이 말을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 그러니까 명백히 아니다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서도, 교육적 전환을 반 이상은 좀 안 좋은 징후로 보는 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낼 필요가 있다, 는 뭔가 지식인스러운 태도는 부록.)
이 책에 모인 글들도 적어도 반이상은 교육이란 말에 알레르기를 보이며, 반신반의하거나 아예 범위를 제도교육에 한해 딱 못박아서만 이야기/비판하고 그 외에 대해선 입닫는다. 말하기 힘드니까. 아니면 극단적 '막해라!'주의.
아무튼 생각보단 괜찮은 기획의 책이고, 이 책을 위해 같은 주제로 여러번 세미나, 워크샵도 진행했나보더라. 그래서 각 필자들의 글 제목에서 특정 단어가 겹친다. 예를 들어 turn. 심지어 폴 오닐을 포함, 적잖은 필자들이 turn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경향이...
이 책은 "Curating Subjects"(2007)이란 책과 세트인가보다. 모양이 똑같이 생겼다. "Curating Subjects"는 현실문화에서 <큐레이팅이란 무엇인가>라는 이름으로 번역본이 나왔다. 변현주 선생님이 번역하셨다.
다음은 Introduction 발췌 및 번역.
"컨템퍼러리 큐레이팅은 교육으로의 전환에 의해 표명된다. 교육적 포맷, 방법론, 프로그램, 모델, 용어, 과정 그리고 절차는 만연해졌다. 컨템퍼러리 아트의 큐레이팅과 생산 양자의 실천에서. 그리고 그들이 참여하는 비평적 프레임워크에 의해서. 이것은 간단하게 제안된 것이 아니다. 큐레이토리얼 프로젝트는 급격히 주제로서 교육에 적응했다; 큐레이팅이 급격하게 확장된 교육적 실천으로서 수행되는 것을 공격하기보다. 그것은 이런 제안이다--큐레이팅 그리고 예술 생산이 더욱 광범위하게 생산되고, 수행되고 혹은 그것도 아니면 교육적 전환을 표명한다--이 책에 모인 많은 저자들은 그것에 응답하기 위해 초대됐다."
"논쟁적으로, 레토릭으로서 재정렬의 특정한 순간을 가정한 장치인 ‘전환(turn)’은 진부한 말이다. 얼마간 표면적이고 이 모두가 쉽게 상품화된다.[7] 다른 한편으론, 이 용어는 발전의 로직을 제안하는 데 유용하다. 그 발전은 자율적이면서 타율적이다; 변화의 과정이라고 명명될 수 있는 그것은 본질적(intrinsic)이거나 부대적(extrinsic)이거나 둘 다다; 그것은 급진성의 필연적 수행이나 부풀려진 불가피함 없이 점진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동사적 명사는 고정된 조건이나 정체된 상태보다, 과정의 다이나믹을 효과적으로 가정한다. 이 레토릭으로 인해 또한 흐름의 청원과 영토의 전환, 안정 및 표준의 장소가 만들어진다."
"교육은 역사적으로 밀도있게 논쟁된 카테고리다. 그것은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논란의 키(key)가 되어 왔다. 지난 몇 십년의 영미권을 통틀어 공공 교육에 관한 보수적인 비판에 의해 명시된 것처럼. 이전의 논쟁이 실질적으로 컨텐츠와 목적(커리큘럼과 정전[cannon]에서 다양한 전쟁에 의해 전형이 된)에 관해 이야기된 것에 반해, 교육은 더욱 최근에 글로벌하게 재정비됐다. 서비스 경제의 섹터 그리고 개인적 경영의 공간으로서. 그러므로, 광범위하게 인용되고 있는 볼로냐 선언(Bologna Declaration), 그러니까 유럽을 가로지른 고등교육의 정돈(alignment)의 과정은 컨텐츠의 커리큘럼과 프로그램의 국제적 일원화, 혹은 ‘아웃풋'의 표준화에 근본적인 목적이 있지 않다. 그것보단, ‘성취(outcome)’--일반 시장--를 위해, 서비스 조항(provision)과 교환 등가 시스템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목적으로 한다."
"명백히, 이쪽으로 가정하는데, 큐레이팅은 단지 행정, 관리, 전시, 구경거리 등등으로 축소될 수 없다. 큐레이팅은 이런 의미에서 ‘변화하는 과정(processual)’이다, ‘정해진 절차(procedural)’이거나 수단적(instrumental)가 아니라. 도구-목적 합리성의 배치보다, ‘과정적' 모드는 도구와 목적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들은 행위의 흐름 안에서 드러난다. ‘과정적' 모드는 선형적이지 않고, 끝을 방해하지 않는다; 최종적 의미, 가치 혹은 목적의 소모적인 폭로의 달성은 긴급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과정의 액티비티는 ‘질(quality)’의 관료정치의 도구주의 혹은 좁은 회계주의에 의해 근본적으로 갱도를 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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