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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mille Pissarro, Coin de village, effet d'hiver, 1877 |
"이러한 비평은 인색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기이하고 그렇게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을 페인팅에서 지적한다. 피사로가 <마을 모퉁이, 겨울 인상>에서 화면 오른 쪽에 건물의 측면의 문과 창문을 애매하게 덮고 있는 나뭇가지에 사용한 붓질의 패턴은 전혀 페턴이 아닌 것에 아주 가깝다.(그림) 만약 우리가 팔 길이 거리(화가의 거리)에서 그림을 본다면, 나뭇가지, 그림자, 수풀, 회벽, 기와지붕, 처마, 나무줄기를 의미할 다양한 흔적(mark)는 거의 알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재현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각각의 흔적은 긁히고 다른 것으로 퍼진다. 마치 그것이 매우 오랜 시간 혹은 매우 열정적으로 작업됐던 것처럼; 때때로 물감의 표면은 시각적으로 분리된 원색의 색점으로 도드라져 보이기도 하고, 때때로 그것은 하나 혹은 두 개의 붉은색 혹은 녹색의 얼룩점들이 서로 중첩되거나 서로 상쇄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의 목적은 팔 길이 거리에서 분명하지 않다: 만들어지고 지워진 것이, 혹은 어떤 나무가지 혹은 지붕의 가장자리의 라인을 따라 색깔이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것이 무엇을 생산했는지 알아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것이 심지어 화가에게도 특정한 터치를 찍어가는 것이 분명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가 그의 작업으로부터 물러선다면, 그 흔적은 종국에 응집되고 무언가 보여지는 것--집의 전면이나 나무줄기와 줄기 사이에 빛이 떨어지는 방식--을 해방할 것이다. 그 테크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상하다. 피사로가 페인팅--나는 여기서 “페인팅"을 노골적인 유물론적 의미로 쓴다--을 하고 있을 때, 그가 물감이 의미하는 것과 효과적인 방법의 아주 잘 형성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만들어지는 동안에, 그 유사성은 전혀 있지 않으며, 기껏해야 그것의 정의는 잠정적이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물체는 거리르 뒀을 때 변한다. 그리고 그 페인터는 보고 비교할 수 있는 적당한 지점까지 뒤로 뒤로 물러난다. 그러나 그 뒷걸음치기는 그 자체로 기이한 거리두기였다; 그것은 마치 어떤 공간이 회화와 재현 사이에 유지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존재했다: 두 과정은 결코 그것이 서로 완전하게 맞물리는 것처럼 짜여있지 않다. 그것은 보통의 재현의 습관이 기능하기 위한 찬스를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로직은 언제나 모더니스트적 케이스에서 중심적이다); 물감을 칠하는 것으로 만들어진 등가(equivalents)는--그러한 색깔나 그림자의 종류 혹은 그러한 선이나 그러한 수풀의 종류 사이에서--언제나 틀린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손과 눈, 머리를 위한 지름길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물감을 칠하는 것으로 되풀이될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페인팅은 일정한 거리에서 등가를 부여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피사로와 그의 동료들은 세상의 모습이, 결국에 발견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오직 추측된 혹은 반쯤 흘깃본 유사성의 춤 속에서, 그리고 항상 단순한 물질로 사라져 버리는 그 지점에서. 그래서 물감을 칠하는 것 그 자체--그것은 재발견된 어떤 진정한 유사(likeness)에 관한 핵심이다--가 문제였다." (p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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