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0일 월요일

데이터베이스의 인간화 / 인간의 데이터베이스화

류가죠 나나나의 매장금을 보고 썼던 메모를 다시 다듬어 봤다. 쓰다 보니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이 되어 버렸다. 아..글을 이렇게 생각나는대로 쓰면 안되는데...책을 보면서 제대로 해야 되는데 여유가 없다. 노트로 만족하고 나중에 한 번 다시 정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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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만화 중에 오토노토코가 종종 나온다. 레진에서도 그렇고...류가죠에선 텐사이의 시종이 그렇다. 그러고보면 요샌 오덕들이 TS물도 생각보다 많이 보는 듯하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attributes 수요와 공급이 많이 생긴듯. 오토노토코 소비 심리 같은 경운 일단 미소녀를 너무 좋아한 오덕에게 동경이라는 마음이 생기고, 급기야 스스로가 미소녀가 되고 싶단 쪽으로 방향이 잡힌달까, 그런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부녀자가 미소년 커플에 빠지는 것도 그런 비슷한 투사 같아 보이기도 하고. 인간은 스스로의 욕망이 만들어낸 이상에 스스로 끌려간다.

하지만 이 경우엔 이런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 욕망은 이미 들어내어져있다. 애니메이션 산업에 의해. 그러니까 욕망이 향하는 위치는 아마, 이미 애니메이편 산업에 의해 영토화된 곳일 것이다. 그정도로 문화산업은 인간 인식 능력을 초월한 복잡성을 획득했으며, 그 복잡성은 계속 확장되며, 그것은 끊임없이 데이터베이스화 된다. 그 데이터베이스는 그 수많은 선택지-시뮬라크라를 통해 그 인간의 창발적 의지를 선택-충족 매카니즘으로 길들인다.

여기서부턴 오타쿠 문화를 데이터베이스-시뮬라크라 스킨의 2층 소비구조로 분석하는 아즈마 히로키의 내러티브. 그 결과 욕망의 욕구화, 인간의 동물화. 그러니까 어떤 이가 원하기도 전에 '오토노토코물'이 이미 규정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창조적 생각을 할 사이도 없이, 원하는 모든 것은 이미 내 옆에 편재해 있다. 그것을 즐기고 싶다면 구글에 접속하라. 시간과 돈만 있다면 그것은 언제든지 내 것이 될 수 있다. 이때 어쩌면 인간은 스스로의 시간-생명을 돈으로, 또 돈을 동물적 욕구의 충족과 맞바꾸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역전은 없을까. 인간은 동물화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곰과 호랑이처럼 인간이 되고 싶은 동물도 있다. 다시 말해 동물의 인간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히로키의 책을 읽어가면서 써내려가야 하지만 여유가 없는 관계로 일단 대충 노트. 히로키의 설명은 많은 부분에서 동물화한 주체의 소비에 중점이 맞춰져있다. 때문에 데이터베이스의 존재론에 관해선 리좀 모델이니 뭐니 설명을 하긴 하지만 그 양태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기억하기로 그가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데이터베이스 심급은 커다란 비-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어떠한 '오리지널리티'가 있다고 대충 설명되거나 추측된다. 리좀이든 오리지널리티든 리좀 속 유닛의 오리지널리티든, 그가 관심을 두는 소비의 측면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욕구의 프로세스는 그렇게 동물 >  욕구> 데이터베이스로 향하는 단순한 과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상적 감각에서 데이터베이스는 빅데이터 같은 것이다. 모든 정보의 총합. 그러니까 없는 것이 없으므로 필요하면 꺼내쓰면 되는 마법의 상자 같은 것이다. 따라서 (또 다시 일상적 감각에서) 데이터베이스는 완전한 것, 무결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히로키 또한 데이터베이스를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거대한 비이야기이자 리좀 모델로 규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시점에서 그것을, 그들에게 완전한 것, 혹은 기원 (혹은 무의식)으로 이해한다. 혹은 동물화한 소비자의 입장에 무게중심을 둔다면, 데이터베이스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설명 자체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동물에겐 필요-충족의 메카니즘만 확실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로 무게중심을 옮긴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데이터베이스를 히로키가 말했듯이 리좀 모델로 본다면, 이때 데이터베이스의 무결성은 완벽한 체계로서라기 보다는, 끊임없는 확장성, 그러니까 극한의 무결성에 다가가고 있는 광속의 움직임 쪽에 가깝다. 더욱 많은 정보의 양을 추가하고, 더욱 많은 정보의 교차를 조직해 극한의 경우의 수까지 스스로에게 포함시키려고 한다. (그것이 인간 인식을 초월하기 때문에 무결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문화적 시뮬라크라의 무결한 지지대로 인식되면서도, 한편으로 그 스스로를 해체하려는 충동을 언제나 잠재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런 데이터베이스의 확장을 욕망 혹은 무의식으로 본다면, 정리하면 인간은 동물화하는 반면, 데이터베이스는 인간화한다.

그렇게 되면 데이터베이스가 욕망하는 한, 인간의 욕구 또한 근본적으로 완전히 충족되어질 수 없다는 엉뚱한 명제가 튀어나온다. (충족되는 것처럼 보여질 뿐이다.) 히로키는 이런 데이터베이스의 확장에 대해서 설명을 자세히 하지 않지만 어느 도판에서 별종이라는 말로 언급하고 지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데이터베이스보다 표층구조, 즉 스킨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 그는 데이터베이스 총체에 (동물화한) 인간이 절대적으로 거기엔 도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소비자적 감각에서 거기에 대한 충동은 오리지널리티의 오마주이며 종국에 그것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오리지널리티라는 말의 감각은 데이터베이스를 의미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사실은 스킨, 그러니까 문화산업에 가깝다.

하지만 만약 데이터베이스의 소비가 (스킨을 통해서가 아니라, 혹은 스킨을 통해서라도) 그 심급으로 정확히 도달하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러니까 데이터베이스 심급과 욕구가 완벽히 평형상태가 된다면 어떨까? 일단 데이터베이스를 산업화시키는 자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욕구-충족의 평형상태가 곤란할지도 모른다. 문화산업은 그런 면에서 데이터베이스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문화산업은 데이터베이스의 무한성으로의 충동, 즉 욕망을 적당히 이용/중재하고 정지-물화시킴으로써, 그럼으로써 적당히 완벽한 체계를 가시화시킴으로써, 적당히 안정적인 (하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가 있는) 소비-욕구 구조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소비의 입장에서 데이터베이스는 확장될 필요가 없다. 그래야 자극과 반응만이 존재하는 동물의 왕국이 될 테니까. 욕구-충족 매커니즘에서 더 새로운 것은 필요 이상의 것이다. 동시에 소비자는 그 욕구-충족 매커니즘 때문에 더욱 완벽하게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하는데, 데이터베이스는 욕망하며, 끊임없이 확장되기 때문에, 욕구 충족을 위해 데이터베이스화 할 수록 욕구는 표층구조를 뚫고 들어가 욕망으로 전이된다. 그러니까 오타쿠가 결국 어떤 새로운 차원의 만화가=데이터베이스 기계가 된달까? 생산자로서의 작가랄까. 뭐 그런 모델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관점, 소비가 아닌 데이터베이스 자체에 무게중심을 두는 관점은 문화산업에게도, 인간에게도, 양날의 검이다. 문화산업은 데이터베이스가 욕망한다는 사실을 동물화한 인간 욕구에 발각되길 원치 않을 것이다. 이것이 성공했을 때 인류는 완벽히 동물화 한다. 한편 동물화한 인간 욕구는 끊임없이 데이터베이스 심급으로 도착하길 원할 것이다. 가능성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베이스로의 충동이 극한에 다가갈 수록, 그러니까 인간이 더욱 더 완벽하게 데이터베이스화될 수록, 역설적으로 데이터베이스의 욕망이 폭로된다. 그리고 한 번 동물화했던 인간은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한다. 이때 인간은 문화산업의 닫힌 계정 속에서 선택 충족을 반복하는 해리적 주체가 아니라, 열린 계정으로서 데이터베이스를 창조적으로 조직하고 생산하는 그런 주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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