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8일 화요일

백남준, 노스텔지어는 피드백의 제곱근이다. (1930년-1960년-1990년) (1992. 9)

제목이 시사하듯이 백남준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곱절의 피드백과도 같다고 썼다. 그는 30년을 주기로 가정하며 90년대와 60년대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일단은 적으며 시작한다.

"30년이라는 기간을 예로 들어보자. // 지난 30년을 뒤돌아보면 60년대는 우리에게 비교적 가깝게 느껴진다. 그 당시 스타가 지금도 대부분 살아 있고, 여전히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 예전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도 있다. 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것만큼 사람들의 예술적 취향이 달라지지는 않은 것이다."(35쪽)

하지만 60년대에서 본 30년대는 엄청나게 멀다고 말한다. 즉 과거로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우리는 당대의 사실과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며, 그런한, 피드백, 즉 정보의 순환 속에서 기존의 정보가 계속 다르게 갱신되는 프로토콜이 제곱근으로 가속화 된다고 보고 있다.

"반면 60년대에 서서 30년을 되돌아보면 심연처럼 멀어 보인다. 그 30년은 히틀러의 등장으로 시작되어 케네디 대통령의 선거운동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사이를 스탈린, 집단농장, 홀로코스트, 히로시마, 한국, 베를린, 아이젠하워의 자주노선이 차지하고 있다.
이 두 기간을 가르는 또 다른 심연이 있다. 바로 인쇄매체와 전자매체의 간격이다. 인쇄매체는 실제 일어난 일과 거의 정확한 이미지를 전달하지만, 전자매체는 그레타 가르보나 진저 로저스와 같은 당시 할리우드식 버전에 국한되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30년대를 독재와 경제공황의 시대가 아니라 버스비 버클리의 시대로 상상하며 자랐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1960년대를 다시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같은쪽)

상기 인용에서 90년대의 젊은이는 30년대를 (헐리우드식으로) 매우 다르게 인식한다. 그렇다면 90년대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60년대도 다시 짚어봐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30년대의 인쇄매체는 상대적으로 정확한 기록을 남기지만 60년대부터 전자매체는 헐리우드식 버전으로 남긴다고 하였다. 따라서 90년대의 젊은이들은 30년대를 헐리우드식으로 상상하며 자란다. (상기 인용에서 느껴지는 바는 백남준이 '헐리우드'에 관해 어떤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상대적으로 정확한 팩트가 있는 30년대도 현재 이렇게 왜곡 인식하는데 헐리우드 전자매체가 주름잡은 60년대 이후는 오죽하겠냐. 많은 기억의 변조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것--그리고 어딘가 그건 잘못됐다는 것.

여기서 그는 로버트 라우센버그를 거론한다. 라우센버그의 '9일밤'에서의 공연은 백남준이 보기에 대단했던 것 같다. 짧은 글의 많은 지면을 그 공연을 묘사하는 데 쓰고 있다. 하지만 포인트는 라우센버그가 그런 공연을 감당하기 위해 "광고를 해야 했다"는 것, 그래서 그가 혹독하게 비판받았다는 것.(36쪽) 그리곤 그 자신의 비슷한 경험담을 술회한다.

백남준이 티비랩에서 만든 실험물은 WNET이란 케이블 방송국을 통해 인기를 끌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영 TV로 중계되면서 나라 전체, 다시 말해 40억 시청자를 상대해야 했다."(같은쪽) 그때 백남준은 "그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다"(37쪽)고 회고하는데, 왜냐면 "예산이 우리 것보다 20배가 넘는 할리우드나 BBC의 프로그램을 주로 다루던 메디슨 가의 전문 광고업자를 고용했던 것이다."(같은쪽) 그래서 백남준은 자신의 프로그램이 "첫 방송 시리즈 이후 잊힐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같은쪽)

백남준은 많은 대중을 비디오아트로 끌어들이는 것에 성공했으며, 더욱 큰 성공을 위해 광고업을 끌어들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즉 지나고 보니 헐리우드와 손을 잡아선 안됐다. 생각해볼 수 있는 점은 백남준이 록펠러재단과 같은 기업과 비디오아트 국립방송을 창시하긴 했지만, 헐리우드 광고 같은 상업주의를 그 자체로 지지하진 않았단 사실이다. 즉, 그들과 손은 잡되 스스로를 동류로 포지셔닝하진 않았다.

여기까지가 비디오아트(아방가르드)-광고(상업방송) 간의 어떤 제휴와 실패를 말하고 있다면 마지막 단락은 약간 애매하게 붙어있다. 마치 내가 옳았다를 증명하는 것처럼, 헨리 겔트잘러란 미술평론가와의 저녁식사에서 나눈 다소 거북한 대화--즉 그녀가 비디오아트에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친 관점: "예술가는 여러가지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 자체는 어떤 미적 감각도 없어요. 기술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37쪽)--를 버젓이 쓴 뒤, 그녀가 70년대 NEA에서 비디오아트 분야 장학금을 지급했다고 다시 적으며 그녀의 과거 말을 비꼰다.

말하자면 비디오아트(아방가르드)-예술계(제도)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앞서 예술이 광고 쪽과 붙는 일에 백남준이 "실패"라며 거부반응을 보인다면, 반대로 예술계 쪽에서 비디오아트에 일방적인 거부권을 행사했던 사실에도 거북한 반응을 보인다. 종합해보면 백남준은 비디오아트가 텔레비전 광고가 아니라 결국 예술이며 상업주의에 저항해야 한단 소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고 과거를 회상해보니(노스텔지어) 얻어진 통찰이자 진실(피드백)이라고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편 그가 과거를 회상/비판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로 날아가서 당대를 비판하는 것과 같은 어조다. 즉 그 당대가 아니라 그 시간축을 뒤로 물려 아주 편하고 명백한 관점에서, 하지만 마치 당대에 있는 것처럼 비판한다. 나는 이런 방식이 꽤나 흥미롭게도 한데, 현재의 관점으로 역사가 다시 써진다는 점이 그렇다. (즉 또 다시 30년이 지난 후에 백남준의 관점이 다시 뒤집어질지도 모른다.) 마치 정말로 시간을 가역적인 것으로, 혹은 비디오를 타임머신 기계처럼 망상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의 최초에서 그가 "1950년 이전 예술가들은 추상적인 공간을 발견했다. // 1960년 이후 비디오 예술가들은 추상적 시간을 발견했다. // 아무 내용이 없는 시간을"이라고 썼던 이유처럼 보인다. 그리고 노스텔지어가 피드백의 제곱근이라고 썼던 이유이기도 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