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에 관한 사상이다. 책은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평생의 업같은 것일진데, 이런 글을 한 번 써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일지 모르겠다.
글쓴이완 다른 레벨에서 나 또한 읽은 책이 이해가 되지 않아 반복적으로 읽는 경우가 많다. 한 문장 읽고 나서 다음 문장을 읽으면 까먹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쩔 때는 한문장 한문장 필사를 해야지만 읽히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텍스트와 맞대면하는, 스스로의 모든 것을 걸고 텍스트와 투쟁하는 인간상이란게 오늘날 존재하는가? 글쓴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욱 정보를 차단하고 더욱 반복해서 하나의 텍스트를 읽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천지난만한 범생이의 무리한 소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텍스트를 소비하는 방법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인간의, 존재론적 위상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은 여러가지 정보와 동일한 수준에서 서로 얽히고 섥혀있다. 그것을 차단하고 독서에 심취해 자기 자신 안에서 혁명을 해가자는 주장은 산골짜기에서 공자왈맹자왈 읊어도 그 또한 혁명이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또 정보-인간으로서의 자기부정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는 정보 네트워크와 분리되어 살아갈 수 있는가? 만약 그 밖이 없다면, 사사키 아타루란 독서가의 자리는 도대체 어디에 위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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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모든 혁명이 텍스트로부터 일어난다고 했다. 텍스트를 급진적으로 독해하는 길만이 가장 혁명적이라고. 이 대목에 동의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한편으로 의심스러운 부분도 여전히 존재한다. 왜냐면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는 많은 텍스트들이 있지만 그것이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냉소하는 시대다. 다이빙벨 같은 영화만 봐도 그렇다.텍스트와 맞대면하는, 스스로의 모든 것을 걸고 텍스트와 투쟁하는 인간상이란게 오늘날 존재하는가? 글쓴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욱 정보를 차단하고 더욱 반복해서 하나의 텍스트를 읽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천지난만한 범생이의 무리한 소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텍스트를 소비하는 방법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인간의, 존재론적 위상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은 여러가지 정보와 동일한 수준에서 서로 얽히고 섥혀있다. 그것을 차단하고 독서에 심취해 자기 자신 안에서 혁명을 해가자는 주장은 산골짜기에서 공자왈맹자왈 읊어도 그 또한 혁명이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또 정보-인간으로서의 자기부정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는 정보 네트워크와 분리되어 살아갈 수 있는가? 만약 그 밖이 없다면, 사사키 아타루란 독서가의 자리는 도대체 어디에 위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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