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없는 미술계에 화두라면 어떤 디스토피아적 전망과 결부된 예술가의 생존문제다. 이런 생존문제--비정규직 문제, 무급인턴 문제, 청년실업 문제 등--는 사실 이미 알려진 사회적 문제로, 처음에 어르신들이 문제 제기했으며 청년 논객들이 가담해 비판했으며 지금은 심심하면 한 번씩 뉴스에 나오지만 별 감흥없는 상태랄까, 그렇다.
미술계에서도 이런 담론은 청년 세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아직도 유효하다--정도가 아니라 지금에서야 핫다달까. 결국엔 지겹게도 세대교체란 말로 귀결되는 듯하지만. 하지만 역시 이건 별로 새로운 건 아니다. 세대교체는 전사 이래 항상 있어왔던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적인 것이다. (일부러 하는 세대교체는 있을 수가 없다. 무슨 인류보완계획도 아니고...) 세대갈등은 항상 있어왔고 문제적이지만 해결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는 항상 그런 것이었다. 세대갈등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기 때문이다. 원인이 사라져야 증상이 사라진다. 이걸 이슈화하는 사람은 대개 세대 갈등을 조장해 반사이익을 얻길 원한다.
세대 갈등의 문제의 원인은 워낙 중층적이라 쉽게 말하기 힘들다. 거의 사회 문제의 모든 것이 이유와 결부되어 있다. 이걸 모두 고쳐나갈 수는 없다. 당연히. 하지만 그걸 끊임없이 추구해야만 한다. 그것 없이 구세대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고 세대 전복을 주장한다면 그건 세대 간 땅따먹기 경쟁과 다름 아니다. 그렇지 않을까?
아무튼 요즘은 생존에 대한 인식과 준거집단으로서의 세대의 어떤 애티튜드가 일종의 젊은 작가의 스펙처럼 보인다. 예컨대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해 공유된 인식, 전세대 작가와 큐레이터에 대한 반감, 신생을 표방하는 공간에 연루된 연대의식, 모바일과 소셜미디어에 관한 강박적 자의식, (어떤 형태로든) 아트페어와 시장에 관한 관심 등.
어쨌든 좋다만, 이런 애티튜드가 미술을 구제하진 않는다는 사실만은 적고 가자. 많은 이들은 이런 공유된 인식, 공유된 애티튜드가 작업 자체를 보증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비판적 태도를 작가 스스로가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작업이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기존 제도화된 공간의 안티테제로서 신생공간을 만든들, 거기서 일어나는 전시와 작업이 비판적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설령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작업 형식 등장했다고 해서 모두가 지지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가장 보수적인 문화형식으로 드러난다면 말이다.
나는 여전히 미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배웠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미술이 테러를 일어나지 못하게 할 수 없고,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 없으며, 난민들을 구제할 수도 없다. 돈을 만들어주지는 더더욱 않는다. 미술이 할 수 있는 것은 따로 있다. 문화의 한 체제로서, 지금의 훈육된 인식 체계, 소위 문화적 지배 이데올로기, 시각 체제를 반성하고 비판할 수 있다. 이 지점을 모색하는 일은 미술이 할 수 있고 여전히 나에게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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