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생리적으로 뭔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폭, 그러니까 용량이 줄어든다고 한다. 대신에 늘어나는 것은 판단력이라고 한다. 경험에 비추어 뭔가를 좁고 깊고 세밀하게 생각해서 입장을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부르는 종류의 말이 여럿 있다. 학자나 정말 잘되면 석학이란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혹은 지식인이란 말로 불려질 수도 있다. 조금 라이트하겐 논객, 평론가도 여기에 해당이 된다. 이들의 통찰력은 예로부터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 말로 조금 더 네거티브하겐 꼰대라고 불린다. 입장이 너무나 분명하고, 그건 그 체계 안에서 이견과 섞일 여지가 없다. 포용력이 없다고 해야하나,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한다고 해야하나. 때문에 이들의 의견은 사회에 불편함을 자아낸다. 이들은 분명 맞는 말을 하는 것이고, 어쩌면 그 자신이 피해자이고 타자이거나 그런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논리가 해당되는 세계는 어쩌면 꼰대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다. 조금 한 발자국 나아가면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계의 타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세계의 나머지 부분을 타자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것이 꼰대가 비난 받는 이유다.
하지만 꼰대가 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까? 만약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그것이 어느정도 생리적인 현상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자기 입장이 분명해진다는 일 말이다. 이건 쉽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백신이라고 해야하나, 예방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젊었을 때 뭔가를 많이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는 일이다. 뭔가 다양한 것과 대면하고 그것을 경험하고 즐기는 일.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일. 나이가 더욱 들어서 용량 부족에 시달리기 전에 말이다. 그런 풍부한 경험과 기억이 말년의 지식인의 포용력, 나아가 통찰력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니까 변방에 고립되어 끼리끼리 놀면서 다소 외로운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될 것이냐, 좀 더 다양한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그들에게 조언을 건내고 또 피드백을 듣기도 하는 그런 삶을 살 것이냐의 문제다. 당연히 사람들은 후자가 되고 싶어 한다.
판단력은 중요하다. 판단을 하고 입장을 고수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흐리멍텅해진다. 어정쩡 이럴땐 이런 입장, 저럴땐 저런 입장...소위 기회주의자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한국 사회에선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한국을 개판으로 만들고 있는 정치인의 부류가 그렇다. 하지만 문재인만 보더라도 하나의 입장만을 고수하는 일이 얼마나 무능한 일인지 알 수도 있다.
판단을 하고 입장을 내는 일을 왜 하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현실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그 현실은 바로 지금 여기의 삶이다. 어떤 아이디얼한 세계가 아니다. 종종 협소한 판단력은 현실의 삶을 부정하고 상상적이거나 아이디얼한 세계를 진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계는 다양하다. 아마 엄청나게 다양할 것이다. 그런 원초적인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다양성에는 매우 평범한, 그래서 그것은 순수하게 악한, 반대로 순수하게 선량한, 정의로운, 거지같은, 토할 것 같이 더러운, 기회주의적인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다. 그들은 모두 나와 같은 사람이다.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을 모르고,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정의를 판단하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회의 타자를 살피고,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하는 일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되고, 물과 기름처럼 사회의 어떤 부분과 스스로를 억지로 분리시킨다면, 그렇게 해서 입장을 고수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잡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회는 변하는데 자신은 과거에 계속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에선 공감할 수 있는 폭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남는 것은 신세한탄과 울분이다. 그런 사람은 공격적으로 변할 것이다. 그런 사람의 말은 그래서 다른 의미로 불편해질 것이다. 꼰대가 된다. 이들은 본의 아니게 또 하나의 타자로 밖에 살아 갈 수 없게 된다. 안타깝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현실에서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할 필요가 있겠다. 정확함을 추구하되 관용을 가지자. 그런 이야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