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변적 실재론 (https://en.wikipedia.org/wiki/Speculative_realism)
요새 뜨는 이론이란다. 데이빗 조슬릿도 여기에 어느정도 걸치고 있는 것 같다. 스펙큘러티브 리얼리즘, 한국어로 '사변적 실재론' 혹은 사변적 리얼리즘이라고 번역한다. 과학을 철학한다-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흠 잘 모르겠다. 이런 이론과 관계된 사람은 브뤼노 라투르 정도 밖에 모르겠다. 하지만 브뤼노 라투르도 어디서 줏어 들은 건 조금 있지만 사실 읽어본적이 없다.ㅠ 모르겠다만 계속 연발하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천천히 한 번 살펴 봐야겠다.
퀑탱 메이야수란 사람의 신학(?)에 관한 책 <유한성 이후>가 번역되어 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28317
역자 후기는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http://blog.naver.com/lackir/40109366177
그레이엄 하만. 사변적 실재론의 변주, 사물지향적 object-oriented 철학의 권위자인듯. 이런저런 책들이 많이도 나왔네. 블로그다.
https://doctorzamalek2.wordpress.com/books/
그레이엄 하만의 책 중 중요해보는 저서. <Prince of Networks: Bruno Latour and Metaphysics> http://www.amazon.com/Prince-Networks-Latour-Metaphysics-Anamnesis/dp/0980544068/ref=sr_1_1?ie=UTF8&qid=1303180835&sr=8-1
아래는 이 책의 목차와 서문 번역이라는데 불펌이다. (링크: http://blog.daum.net/nanomat/22; 문제가 생기면 삭제하겠습니다.)
-------------------
차례
약어들
서론
런던정경대학 행사
서문
1부: 라투르의 형이상학
1. 비환원자들
2. 과학의 실천
3.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4. 판도라의 희망
2부: 객체와 관계
5. 기여한 점들
6. 의문들
7. 객체지향 철학
참고문헌
찾아보기
서론
런던정경대학 행사
이 책의 첫 원고는 2008년 2월 5일 런던정경대학에서 '하만 리뷰: 브뤼노 라투르의 경험적 형이상학(Harman Review: Bruno Latour's Empirical Metaphysics)'이라는 제목으로 온종일 계속된 심포지엄에서 논의되었다. 그 행사는 런던정경대학 경영학과의 혁신체계 및 정보 집단(Innovation Systems and Information Group)이 주최하였으며, 그 학과의 학과장 레슬리 윌콕스(Leslie Willcocks) 교수가 충심으로 지원하였다. 브뤼노 라투르는 그 원고에 응대하기 위해 참가하였다. 공개 토론회는 에드거 휘틀리(Edgar Whitley)가 주재하였는데, 루카스 인트로나(Lucas Introna), 누르츠 마레(Noortze Marres),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의 발표들이 추가로 있었다. 프랜시스 화이트(Frances White)는 그 행사를 조직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베풀었다. 게다가 심포지엄 조직위원회는 알렉시 알토넨(Aleksi Altonen), 오페르 엥겔(Ofer Engel), 페테르 에르데이(Peter Erdelyi), 그리고 위팍 후이 구에다나(Wifak Houij Gueddana)(모두 박사과정 학생들)와 마하 샤이크(Maha Shaikh) 박사를 특별히 포함시킴으로서 그 행사의 매우 국제적인 특징을 강조했다. 덧붙여, 그날 방청석에는 마흔 다섯 명 정도의 특별히 초대된 참가자들이 있었다.
에르데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매우 특별한 예상 밖의 행사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점을 믿기가 어렵다. 경영대학의 현장에서, 정보시스템학과의 박사과정 학생들에 의해 조직된, 하이데거주의 철학자와 하이데거를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회학자 사이의 형이상학적 논쟁이 개최될 가능성이 어디 있겠는가?' ANTHEM과 같은 활기가 넘치고 선견지명이 있는 집단이 연루될 때 그 가능성은 크게 증가한다. 그 약어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하이데거 모임(Actor-Network Theory-Heidegger Meeting)'을 나타낸다. ANTHEM의 에르데이와 그의 친구들 덕분에 지난 이 년 동안 나의 지적인 삶은 매우 풍요로와졌으며, 그리고 이 책이 현재의 최종 형식으로 출판되기 오래 전에 공적인 행위자가 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나는, 내 독자들이 지루하다고 느끼거나 배제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두려움 때문에 책에서 "감사의 글" 부분을 기피한다. 에르데이의 집단은 지루하지 않고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다. ANTHEM의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하고 그들의 웹사이트(http://www.anthem-group.net/)를 방문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
지루하지 않고 비(非)배타적인 또 다른 한 사람은 라투르 자신이다. 이 책을 적는 여러 단계에서 나는 브뤼노 라투르와 샹탈 라투르(Chantal Latour)―카이로와 파리에서, 그리고 샤텔패롱 당 랄리에(Chatelperron dans l'Allier)에 있는 라투르 '오두막'에서―로부터 가능한 가장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 내가 시카고에서 발버둥치고 있던, 책을 출판하지 않은 무명의, 갓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에 불과했을 때인 1999년 초부터 라투르는 내 질문에 자애롭게 응대하였다. 그런데 젊은이들과 무명 인사들에 대한 라투르의 개방성에 관한 그런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이 있으며, 이 책의 독자들은 어느날 스스로 이것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문
이 책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를 형이상학의 핵심 인물―그가 추구했지만 거의 얻지 못한 칭호인― 로서 숙고하는 최초의 책이다. 라투르가 사회학과 인류학 분야에서 저명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의 저작의 철학적 기초는 여전히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많은 찬미자들은 형이상학적 의문에 거의 관심이 없는 반면에, 여전히 "제일 철학"을 추구하는 은자들과 추방자들은 일반적으로 라투르를 잘 모른다. 내 목적은, 실재 그 자체의 기본 구조와 관계가 있는 견지에서 라투르의 통찰을 표현함으로써 이 두 집단을 접촉하게 하는 것이다. 고전 형이상학이라는 켄타우루스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라는 치타와 짝을 맺으면, 그들의 자손은 어떤 흉악한 괴물이 아니라 반세기 이상 동안 우리를 태울 수 있는 순혈종의 망아지다. 라투르의 경력은 대체로 사회과학에서 전개되었지만, 그의 기원은 강한 예수회적인 정취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엄밀한 전통적인 철학 교육에 놓여 있다. 그의 중심 문제 선택, 그의 기지, 그리고 그의 문체는 동시대의 것이지만, 그의 저작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형이상학을 둘러싼 논쟁에 기여한다.
가장 중요한 사상가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것처럼 라투르는 정반대의 이유로 동시에 공격받는다. 주류의 과학 옹호자들에게 그는 외부 세계의 실재성을 부인하는 또 하나의 프랑스인 연성 상대주의자일 뿐이다. 그러나 블루어(Bloor)와 부르디외(Bourdieu)의 신봉자들에게 그는 비(非)인간들과 교섭한다는 점 때문에 화석화된 고전 실재론에 붙은 배반자가 된다. 그렇지만, 라투어 자신의 저작들에서, 객관적인 물리적 물질과 주관적인 사회적 힘 사이의 피곤한 이런 갈등은 더 매혹적인 주제, 즉 그가 일반적으로 '행위자(actor)' 또는 '행위소(actant)'라고 부르는 객체(object)로 대체된다. 하이데거(Heidegger) 등과는 달리, 라투르는 사과, 백신, 지하철, 그리고 라디오 탑을 철학의 중심 문제로서 진지하게 여긴다. 그런 행위자들은 인간 정신 앞에서 배회하는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실재하는 미세입자들의 객관적인 층 꼭대기에 있는 각질의 집합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개체화되기 이전의 유출이나 생성에 부과된 빈약한 추상물이 아니다. 대신에 행위자들은, 작은 요정과 늑대처럼 세계 속에 풀려난, 무시할 수 없는 자율적인 힘이다.
이 책의 첫번째 부분은 라투르의 형이상학적 입장을 네 권의 핵심 저작―<<비환원자들(Irreductions)>>(1984), <<과학의 실천(Science in Action)>>(1987),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We Have Never Been Modern>>(1991), 그리고 <<판도라의 희망(Pandora's Hope)>>(1999)―에서 전개된 대로 고려한다. 또한 1987년부터 라투르는 그의 체계의 거대한 대안적 판본에 관해 은밀히 작업했는데, 이것 때문에 자신의 초기 단계와 후기 단계를 동시에 겪는, 확실히 역사상 유일한 철학자가 된다. "후기 라투르'는 잊혀진 프랑스 사상가 에티엔 수리오(Etienne Souriau, 1892-1979)로부터 부분적으로 영감을 받고, 그리고 라투르는 그의 숨겨진 체계를 수리오 자신의 캐치프레이즈―'서로 다른 존재 양식들'―로 서술하곤 한다. 라투르의 새로운 철학은 2007년 유월 노르망디 지방의 스리지-라-살(Cerisy-la-salle)에서 열린 콜로키움에서 참가자들에게 부분적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스리지에서 논의된 원고는 작업 초안에 불과했으며, 현재는 여기서 라투르 자신의 저자로서의 권리를 선점하지 않은 채 논의될 수도 있었던 완성된 이후의 체계 또는 나중에 출판된 단 한 권의 책도 없다. 이 때문에 나는 1999년까지 출판된 핵심 저작들로부터 알 수 있는 부뤼노 라투르에 한정한다. 또한 이것이 무엇이든지 향후 라투르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저작들에 대해 준비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의 두번째 부분은 라투르 형이상학의 장점과 단점을 숙고하는데, 나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저평가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라투르의 엄밀하게 철학적인 입장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것이 절반의 진실일 뿐이지만 나는 그를 대체로 독특한 인물로서 제시할 것이다.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질 들뢰즈(Gilles Deleuze), 미셀 세르(Michel Serres),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 가브리엘 타르드(Gabriel Tarde), 에티엔 수리오, 그리고 라투르 자신의 친구 이사벨 스텐저스(Isabelle Stengers)와 같은 비(非)분석적/비대륙적(즉, 기본적으로 비칸트적) 동료 사상가들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자세히 살피는 것이 확실히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흥 'X학파'가 '과정 철학'이나 "내재성의 철학'과 같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명칭으로 고무될 때, 그 결과는 그릇된 비트족 형제애 의식이다. 사실상, 이들 사이에 개체들의 분리와 교배라는 매우 고전적인 문제를 둘러싼 큰 집안 싸움이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베르그송과 들뢰즈와 같은 인물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일반화된 생성이 특정한 존재자로의 어떤 결정화보다도 선행한다. 다른 한쪽에는 화이트헤드와 라투르 같은 저자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존재자들이 매우 한정적이어서 특성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그것들은 즉시 사라진다. 첫번째 집단에게는 실체가 너무 한정적이어서 실재할 수 없고, 두번째 집단의 경우에는 그것이 너무 비한정적이어서 실재할 수 없다. 그런데 라투르의 독특한 입장은 내전의 소란 속에서 잊혀지기 전에 특별히 조명할 가치가 있다.
번역: 김효진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