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에 쓰여진 “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 공동시장”이란 에세이에서 백남준은 당대 비디오 문화를 “우주선 지구호에 실린 ‘비디오 랜드’”에 비유했다. 이런 테마파크의 비유는 명백하게 (마샬 매클루언의 유명한 용어 ‘지구촌’을 상기시키는) ‘지구호’와 대조를 이루는데, 이때 백남준이 문제삼은 것은 비디오 랜드가 전지구적인 규모로 분열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백남준이 보기에 세계의 방송국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프로그램을 생산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가 그것에 접근하기는 용이치 않았다. ("우리가 프랑스 텔레비전을 마지막으로 본 적이 언제인가?!") 그는 이런 상황을 1930년대 서구의 배타적 경제체제, 심지어는 파시즘과 비견될 수 있다고 하면서, 공영 텔레비전이 세계 평화와 지구 보존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때 백남준이 제시한 해법은 다름 아닌 비디오 문화에 자유무역시장의 정신과 기능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백남준은 이 글에서 유럽경제공동체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말하면 FTA 같은 걸텐데.)
비디오 문화의 자유시장화, 즉 비디오 공동시장이 세계의 평화와 보존을 약속한다는 백남준의 견해는 다소 뜬금없이 들린다. 하지만 당시 텔레비전 방송의 편파적 보도와 제한된 접근성으로 인한 “정보의 결핍”이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백남준은 그런 ‘단방향 통신’이야말로 베트남 전쟁과 같은 파국적 결말을 이끈 장본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백남준은 정보 채널의 전지구적 개방을 통해서 세계 평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때 비디오 문화는 예술이란 범주에 제한되지 않았는데, 오히려 백남준은 비디오 공동시장의 기획을 위해서 더욱 빠른 자본의 회전이 필요하다고 하며, 심지어 그것이 가능할 때 예술과 “세계평화”가 상품성을 띤 생생한 것이 된다고 했다.
백남준은 이것을 미디어 이론가 벅민스터 풀러의 말을 빌려 ‘생태학’이란 말로 압축했다. 풀러에 의하면 “경제라는 용어의 기원은 그 자체가 생태학, 즉 주거를 근본으로 하는 삶의 기술에 있다.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주거조건이 아니라 삶에 대한 총체적인 탐구이며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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