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3일 일요일

철학과 미술

미술 이론은 개념의 엄밀함을 따지는 분야가 아닌 것 같다. 물론 엄밀함을 따진다. 하지만 그 강도는 철학에 비할 바가 안된다.

이런 것이다. 사과가 있다. 어떤 컨텍스트에선 사과를 사과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컨텍스트에선 사과의 품종이 중요할 때도 있다. 컨텍스트에 따라서 필요로 하는 정보는 다르다. 만약 '사과가 여기 있어'라는 발화를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 서부에서 나는 무슨 품종인데 오리지널은 어떤 거고.....'라고 줄줄이 떠들고 있다면 다음 말을 하지 못한다. 말 자체는 둘 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용도는 다르다.

들뢰즈의 화용론 따위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어떤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른 쓰임새를 가진다. 미술사와 이론에선 개념을 철학적인 깊이까지 사실 다룰 필요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지고 기존 미술과 이론의 내러티브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에 관한 거다. 이것을 망각하고 개념을 마구 써댄다면 사이비 철학자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나 또한 예전엔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설명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냐면 스스로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좀 그렇지 않다. 이 개념이 이런 뜻이라고 말하는 방식보단, 어떤 개념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지에 더욱 관심이 가는 편이다.

그러니까 지식을 꿰고 줄줄이 레퍼런스를 늘어 놓는 것 그 자체는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개념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는 건 조금 다른 일일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그 개념이 다른 분야에서 수입된 것이라면, 입장은 자신의 분야로부터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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