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1일 금요일

오뉴월 토크 후기

오뉴월 아티스트 토크를 다녀왔다. 요샌 남의 말을 오래 듣고 있지 못하겠어서..토크 내용과는 별개로 엄청 지겨웠다. 끝나고 나서 중국 음식은 맛있었다.

오랫만에 민관씨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길 나눴다. 여전히 긱한 느낌?
문혜진 선생도 만났다. 뭔가 호크다. 이미지가-.
강상훈 대표도 그렇고 김민관 기자도 그렇고...이 둘은 볼 때마다 뭔가 쪼글쪼글한 감이 생각난달까. 절대 노 오펜스, 그냥 이미지가 그렇다고.

전시에서 최현석 작가인가? 이름은 잘 모르겠다. 그분의 작업이 인상 깊어서 메모한다. (예전 개인전은 좀 시시했던 기억. 전시에 갔었는데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작업에서 작가는 스테이트먼트를 반복해서 읽는다. 다소 문어체의, 개념어로 뒤범벅된 글이다. 입에 안 익은 말이니 자꾸 틀린다. 틀리면 다시 처음부터 반복한다.

토크 내용을 들으니 작가에게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특히 공모 심사에서 제한시간 내에 작업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려면 그게 필요하다고 한다. 작가에 따르면, 항상 2차 면접 심사에서 떨어졌는데, 그때 작가는 작업 탓은 안 하고 스테이트먼트 탓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몇번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를 수정하고 교정받고 해서 최고의 무기로 제련한다고 한다. 그걸 반복해서 암기한다고. 그걸 하느냐 안하느냐가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어쩌면 오늘날 젊은 작가들이 처한 현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일 테다. 여튼. 

비디오에서 흥미로운 건 쓰여진 텍스트와 낭독자 사이의 미끌어짐이랄까. 계속 읽는데 잘 안된다. 근본적으로 잘 안맞기 때문이다. 도식적으론 이렇다. 

예술가 vs. 언어 / 작업 vs. 스테이트먼트 / 예술 vs. (공모)제도

예술가, 작업, 예술의 편대는 언어와 제도에 적합한 형태로 재현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영상 속에서 그건 끊임 없이 미끌어진다. 영상은 그 대립항이 서로 겹쳐지면서 떨어지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건 크라우스의 <비디오: 나르시시즘 미학>에서 등장하는 세라의 폐쇄회로 작업관 좀 다른 차원에서 흥미롭다. 세라의 작업에서 퍼포머로 나선 그 여자(누군진 까먹었다)는 비디오가 만들어낸 심리적 감옥에 갇힌다. 끊임 없는 자기 참조 속에서 생각하길 정지한다. 

하지만 이 작업에선 사회적으로 구성된 역할과 그것을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진실한 자아가 동시에 매핑된다. 여기서 문제시되는 건 나르시시즘적인 매체 자체가 아니라 스테이트먼트를 요하는 제도와 예술가의 작업 사이에 형성되는 어떤 순환구조다. 좀 더 확장됐달까? 사용하고 있는 매체(비디오)까지 포함해서 성찰했면 좋았을텐데 그럼 작업이 복잡해졌으려나. 여튼 이런 류의 작업을 디벨롭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또 홍정욱(?) 작가인가? 그분의 작업은 뭔지 잘 모르겠고, 말을 장황하게 하셨는데 이 전시와 관련해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어서 메모.

그분이 주로 말씀하셨던 건 기술적 문제였다. 원래 회화과 출신이라 입체를 만들 때 설계를 하고 어쩌고 저쩌고 실패를 줄이기 위해서 만전을 기한다고 하셨다. 고은씨가 이 작가의 작업실에 갔을 때 흥미를 느꼈던 게 그런 거 아닌가 싶다. 큐레이터는 작업을 안 실패하기 위해서 행하게 되는 준비 과정들, 그게 이 작가가 꽤나 탄탄했기 때문에 그걸 드러내고 싶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사실 기계나 톱밥 같은 걸 리터럴리 그대로 가져오는 건 말도 안되고. 그 완성품이 만들어지는 조건. 즉 기술적 문제들이 프로세스 상에서 메인이 되니...그런 절차의 발명이 흥미로워보였던 게 아닐까. 추측.

임영주 작가도 마찬가지로 회화를 그리긴 했는데 세밀화 그리는 방법을 바꿔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페인터리한 그림을 그렸다고 하고..전반적으로 그런 기술적 문제가 깔려있는 듯. 전시에서 그걸 드러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아. 이것도 한물 간건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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