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작가를 만났다. 어떤 전시를 위한 모임이었고 나는 여기에 부쳐 글을 한 편 쓰기로 했다. 처음 보는 작가들이어서 한 명 한 명 앞에 놓고 작업을 봐야했다. 나는 집중도 면에서 일 대 일 인터뷰를 여러모로 선호하는 편이지만, 뭔가 그런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했던 것 같다. 여튼 본의 아니게 네 명 앞에서 면접보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서 좀 진이 빠졌다.
모두가 머랄까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작업에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여러가지 다양한 차원으로 이야기 되고 있었지만 거칠게 말해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불평등, 권력에 대한 비판 의식이 이들에게 큰 이슈였다. 젊은 작가들 중 많은 이들이 그런 작업을 할 것이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컨셉츄얼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예술가는 경험을 표현하는 사람이란 생각을 잠깐 했다. 아니,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여하튼 이런 이슈를 예술가가 다룬다고 했을 때 모범사례처럼 떠오르는 작업들이 있다. '급진적'이고 '비판적'이고 '저항적'이고 '전복적'이고 '혁명적'이어야 한다. '현장성'이 중요하고 '효과'가 중요하다. 예술은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그런 작업들은 분명히 있다. 나는 이런 작업에 대해 망설임 없이 경의를 표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 만난 네 명의 작가들이 가지는 현실에 대한 태도, 그것을 비판적이라고 말해볼 수 있다면 그런 비판적 태도는 몹시 기묘한 것이었다. 이들은 현실에 대한 저항을 비교적 안온한 작업에서 할 뿐이다. 그것도 굉장히 감성적이고 이미저리하며, 한편으로 상징적이다. 추상 조각-설치부터 내러티브 비디오까지, 모든 것이 그랬다. 소위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일 수 있는 가상적 부유물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의 작업은 싫든 좋든 삶 속에서 분리된 어떤 예술처럼 보인다. 혹은 일종의 시간차와 거리를 둔다. (이것을 상징주의라고 한다면 이 문제는 재현의 문제와 조금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참고할 것.)
이 부유물들을 두고 작가들이 현실 비평적이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그런 이유가 몹시 궁금하다. 그걸 부정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예술가들이 느낀다면 그런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현대적 삶을 산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모아 작업을 제작한다. 그래서 작가가 만약 이런 이미저리한 것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만약 그렇다면 이런 이미저리한 것들만이 정말로 현대적이고, 현실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또한 생각해봐야 한다. 때문에 진정으로 '비판'의 모드를 전환할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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