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8일 월요일

픽쳐레스크

"그러나 구상단계에서 그를 이끈 것은 평범하고 자명하며 일화적인, 자연의 복잡한 세부였고, 이러한 자연의 세부를 그는 초기의 작품들에게서만큼이나 후기의 작품들에서도 인정했다. 끝으로 가면서 나타난 주요 차이는 1870년대말에 그의 미술에 들어왔던 픽처레스크를 르누아르가 스스로 제거하고 인상주의 기법으로 하여금 스스로와 좀더 어울리는 목표들에 도달하도록 했다는 점이었다.

픽쳐레스크는 하나의 결과로서의 그림 그리고 결과에 거의 다름아닌 것--성공할 것이 틀림없는 효과--으로서의 그림을 의미한다. 픽처레스크의 의미는 입증된 미술의 요소들 속에서 성장할 수 있고, 전달될 수 있으며, 고양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르누아르의 경우, 픽처레스크는 18세기의 프랑스 회화와 초기 낭만주의 회화를 의미했지만, 이러한 회화들을 원천으로 해서 급속도로 형성되었던 대중 미술 popular art도 또한 의미했다. 그 시대의 선진 미술가들 가운데에서 르누아르 혼자만 대중적인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대중적 이미지들과의 유사성은 실내의 인물을 다루는 쇠라의 처리에서도 분명하고, 피사로와 반 고흐 그리고 심지어는 고갱에게서도 또한 발견할 수있는 디자인과 색채의 어떤 밀집성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오늘날의 우편엽서 미술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모네에게 그리고 심지어는 세잔느의 일부 작품들에도 스며들어 갈 것이다. 그러나 픽처레스크--꼭 대중적인 것은 아니더라도--와 오랫동안 붙어살면서, 1900년 이전의 그림들 가운데 적지 않은 작품들에서 정말로 멋진 표현을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이른 경제적 성공도 얻은 유일한 인물은 르누아르였다. 처음에는 르누아르가 모네보다도 더 조각적 한정 definition을 좋아하지 않았고, 깊디깊은 공간의 환영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문제에서 한번도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위와 같은 점이 없었다면, 르누아르의 싱싱함은 질펀하게 엎질러져서 숨막히는 종류의 장식성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르누아르", <예술과 문화>, 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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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처레스크"는 18세기의 영국에서 발전한 미학 개념으로, 풍경화를 중심으로 유럽 본토의 고전주의가 수용되어 영국에 신고전주의를 낳은 과정, 그리고 이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원리상으로는 고전주의와 전혀 대조되는 낭만주의 풍경화가 대두하는 과정, 둘 다와 연관되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이 과정은, 문자적으로 "그림 같은 like picture"이라는 뜻을 의미했던 이 말로 수용된 "그림", 즉 고전주의 풍경화가 푸생이 아니라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였다는 사실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클로드의 풍경화는 고대의 건축물을 등장시키거나 고대의 일화를 소재로 하여 고전주의 풍경화의 기틀을 유지하면서도, 이성적이고 체계적이며 부동하는 자연을 제시하는 푸생의 풍경화와는 달리 목가적이고 신선하며 생동하는 자연의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자연 자체를 독자적인 시각적 즐거움의 대상으로 발견해냈다. 이는 고전주의와는 다른 자연주의를 촉진했으며 그것은 다시 낭만주의로의 이행을 촉진했다. 즉, 클로드의 그림은 그와 같은 풍경을 실제 자신들의 자연 속에 구축하고자 한 영국의 풍경 정원 landscape garden으로 일단 영국에 신고전주의 건축 붐을 일으켰으나, 그 과정에서 생생하고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발견이 이루어졌고, 이는 궁극적으로 미술의 초점이 고전주의의 이성에서 낭만주의의 감성, 나아가 상상력으로 옮겨가는 데 큰 기여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낭만주의 풍경화로의 이행과정에서 "픽처레스크"의 의미도 당초의 "그림 같은"으로부터 "불규칙한", "다양한", "닮은", "거친" 등등의 의미로 다변화되었다. 이어지는 문단에서 곧 보겠지만, "픽처레스크"를 구사하는 그린버그의 어법은 이 말의 위와 같은 원래의 의미와 아주 느슨하게밖에는 연관되어 있지 않다." 픽처레스크에 관한 조주연 선생 역자주. 같은 책, 6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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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에 대한 대묵을 읽으면, 자신의 어린 제자가 자연 그 자체는 "회화로 형상화될 만한 가치"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오스틴이 느낀 흥미로운 아이러니 속으로 우리도 함께 빠지게 된다. 풍경을 그린다는 행동을 통해 풍경이라는 관념 자체가 일차적인 것을 재현하는 이차적인 용어로서 축조된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풍경은 그에 앞서는 그림에 대한 복제가 된다. 이런 까닭에 저명한 풍경화가인 윌리엄 길핀 목사와 디스트릭트 호수에 놀러 온 그 아들 간의 대화 내용을 통해 우선적인 것에 대한 순위를 분명하게 알기 된다.

이 젊은이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산에 오른 첫날에 느낀 실망감을 썼다. 왜냐하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는 아버지가 자신의 저술에서 "회화적 효과"라고 지칭하던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틀째 되던 날, 아들은 폭풍우가 몰아친 후에 구름이 갈라지듯 열렸다고 쓰면서 아버지를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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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의 속에서, 자연을 재현한다는 주장을 공고히 해주는 풍경 뒤에 위치하는 것은 바로 드로잉--효과에 대하여 선행된 결정을 갖춘--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1981년 판 <존슨즈 사전>은 '픽처레스크'라는 어휘에 대해서 여섯가지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런데 이 여섯가지는 스스로의 경험에 대한 근원이 되는 것으로서의 풍경화라는 문제의 주변을 마치 8자모양으로 서로 맞물려 순환하고 있다. 이 사전에 의하면 픽처레스크는 "1) 보아서 즐거운, 2) 유일성이 두드러진, 3) 그림 그리는 데 상상력이 뛰어난 4) 그림과 같은 5) 풍경화 주제로서 알맞은 6) 풍경하를 그리기에 적절한"이다. 이 정의들 가운데 "유일성이 두드러진"이라고 해석되는 '싱귤레러티'는 랜드스케이프를 회화의 한 유형으로서 설명하는 "풍경화 주제로서 알맞은"과 같은 다른 정의들과 어의적으로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회화 유형--길핀이 말한 바 '효과'라는 공리적 조건에 정합되는--은 단지 한 가지의 배합, 폐허, 수도원 등 일련의 요소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효과가 현실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자연적인 배열이 다른 곳에서 존재하는 또 다른 작품, 즉 '풍경화'로서 되풀이된다는 것이 감지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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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오스틴, 길핀, 그리고 사전이 내린 픽처레스크의 정의는 유일한 것과 판에 박힌 반복적인 것은 어의상으로는 반대되지만, 각각은 서로에 대한 조건들이 된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즉 이들은 풍경화 개념에서 논리적인 짝인 것이다. 회화의 선행성과 반복은 픽처레스크의 유일성에 본연적인 것인데, 유일성은 보는 사람이 그에 앞선 예를 통해서만 다시 깨닫게 되는 식의 인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픽처레스크의 정의가 순환적일 수밖에 없는 것도, 주어진 순간에 이루어지는 지각적 배열이 유일한 것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 복수성이라는 선행적 토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로잘린드 크라우스, 아방가르드의 독창성,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103-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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