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yanalogy.org/texts/02%20-%20Anton%20Vidokle%20-%20Exhibition%20as%20School%20in%20a%20Divided%20City.pdf
ANTON VIDOKLE, Exhibition to school: UnitedNationsPlaza
나(안톤 비도클)는 아티스트이지만 마니페스타6의 컨셉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시기획팀에 합류하였다. 전시기획팀은 문화적인 생산을 위해 지역의 예산을 낭비하고, 국제 미술 영역에서 가져온 콘텐츠와 참가자들의 전형화된 형식을 탈피할 새로운 비엔날레를 만들고자하였다. 그들은 주어진 예산으로 비엔날레의 자원과 네트워크를 이용한 임시 예술학교를 계획하였다. 전시가 아닌 예술학교의 모델에 대한 흥미를 갖게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현재와 미래의 전시와 예술학교의 가능성을 실험하려는 의지가 크게 반영되었다. 과거의 몇몇 전시(The production of cultural difference, 3rd istanbul biennial, Critical confrontation with the present, documenta x) 에서 이미 전시 기획자나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작업이 상징적인 제스츄어가 아닌 변화시키는 사회적인 프로젝트가 실현되기를 주장하였다. 이런 미술적인 실천들이 동시대의 사회에서 변화시키는 에이전트(AGENT)로서 활동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기대되고 있지만, 전시에서 그럼 그런 한 참여가 얼마나 효과적일 도구가 될 수 있는가?
1937년, Andre breton 와 Leon trotsky의 독립적이고 혁명적인 미술에 대한 선언서를 예로 들면서, “진정한 예술은 레디메이드 모델의 다양성을 실험하려 하지 않는다. -진정한 예술은 시대의 인류의 내적인 욕구들을 표현하는 것을 주장한다.- 진정한 예술(true art)은 혁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완벽하고, 근본적인 사회의 재건을 열망한다”
혁명은 미묘하고 중요한 정의를 포함한다. 그 정의는 아티스트와 큐레이터, 작가가 사회에 개입할 필요에 대하여, 해방을 창조하기 위한 개입. 그리고 모든 것이 발생하는 것에 창조적인 활동을 위한 상황을 생산하기 위한 개입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미술과 미술가가 사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개입하기를 원하는 가. 그것은 그저 민주적인 투쟁 인가. 미술을 극히 소수의 특권적이 공간에서 실제적인 형상/콘텍스트로 가져오기 위한 열망인가? 아니면, 그것은 더 나아가 미술적 실천(practice) 의 콘크리트 사회의 사용가치를 배정한 인스트루멘털리즘(instrumentalism: 기구[도구]주의, 사상이나 관념은 환경 지배의 도구로서의 유용성에 따라 가치가 정해진다고 하는 John Dewey의 학설) 을 향한 움직임인가?
공공(PUBLIC) 전시는 프랑스혁명에서부터 시작한다. 왕궁이었으며 이후 왕실의 예술품을 관리하다가 예술가를 교육하는 장소로 사용되는 루브르궁에서 페인팅과 조각을 최초로 공개한 살롱 카레(salon carre)에서 유래되는데, 프랑스 혁명을 통해 1793년 8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이 전시를 관람한 관중(REAL PUBLIC)들은 맹렬하게 정치적인 힘을 얻어 공화국을 세운 시민그룹이었다. 전시된 작품은 전통적인 풍경화나 누드, 신화나 종교적인 모티프를 가진 작업들이어서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작품이 아니었지만, 궁전에 들어가서 예술작업을 볼 수 있다는 실제적인 체험은 정치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그 당시에 발생한 혁명의 과정과 연결된다. 즉, 전시에 참석한다는 것은 투표하고나 공공병원을 방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시민들이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인 행위주체성(AGENCY)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이것은 그들만의 커뮤니티을 형성하고 그들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바꾸는 것을 허락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동시에 예술적 실천과 미술 기관들 모두에게 전례 없는 포지션과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공공public의 존재는 아티스트들에게 예술의 비평적인 기능을 통해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변형시킬만한 최초의 잠재력, 공공의 의견에 영향을 미치고 그룹에 개입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낳은 잠재력을 제공하였다. 몇 십년 후, 쿠르베, 마네 와 같은 오늘날에도 설득력을 갖는 미술적 실천에 개입한 패러다임을 형성한 작가들의 출현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미술기관들은 개인의 콜렉션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기능으로 이행하였다. 작가와 기관은 갑자기 군주/통치자의 자리를 획득하여 운영하게 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오브제와 재현을 바라보는 관중의 자질/자격?(sectatorship)의 프로세스를 통해 가능했다. 그러나 미술의 관중들은 그들의 정치적인 행위주체성을 점차 많이 잃어버렸다. 1980년대 Martha Rosler는 관객public들을 관찰함으로써 그들을 관중audience으로 대체했다. Public과 audience와의 차이는, Audience는 레저와 스펙타클의 소비자 그룹으로 좀더 활동적인 방식의 참여를 사람들에게 허락하지만 그들은 정치적인 에이전시를 갖지 않고 의미를 중요시 하지 않고 사회적 변화에 관심이 없다. 주장하건대 로즐러는 1980년대 기정사실이 되었다고 관찰했다. 반면 미술을 위한 audiences는 점차 거대해지고, 그들 사이에 public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비평적인 아트 오브제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것의 변화하는 기능을 완성할 PUBLIC은 없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비평적인 동시대의 미술 실천의 전제가 효율적으로 옹호될 수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시는 좋은 시작을 위한 최선의 장소가 될 수 없다. 아마도 학교는 모델로써 효율적인 PUBLIC의 부재에 대한 미술의 AGENCY를 복원하는 방법을 가리킬 수 있을 것이다.
예술 학교는 실험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다. 주안점은 생산물이 아니라 진행중(ON PROCESS)인 배움일 것이다. 예술학교는 여러학문에 대한 담론, 실천, 재현이 우위가 없이 공존할 수 있다. 예술 학교에서 생성된 실제적인 행동(실행)들-실험, 리서치, 토론, 비평, 협력, 우정 등-은 실천과 이론의 잠재성을 재정의하고 발견하는 지속적인 프로세스에 공헌할 것이다. 예술학교는 배움의 과정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종종 문화적인 생산인 책, 잡지, 전시, 새로운 작업, 세미나, 심포지아, 필름 스크리닝, 콘서트, 퍼포먼스, 연극, 새로운 패션, 디자인 생산, 건축프로젝트, 도서관으로서 자원와 모든 종류의 기록보관소, 봉사 기관-의 매우 활발한 장소로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시와는 달리 학교는 PUBLIC에 가깝다. 임시적으로 개방되어 공공의 접근이 용이한 예술학교는 현대 미술의 전시와 새로운 퍼블릭을 교육하고 창조함으로써 미술의 에이전시를 복귀시키는 잠재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실행 가능한 대안이 될 것이다. 이것이 비엔날레 전시의 대체물로 임시학교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유다.
처음 이 제안은 사이프러스 국내외에서 열정적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의 계획은 자치적이고, 다른 교육방식을 배치하고, 온라인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독립된 스터디 프로그램은 장소를 이동하는 노마딕 스쿨로 지속되는 것이었다. 2004년 남쪽은 그리스의 영향권에 있었고, 북쪽은 터키의 영향권아래 놓여 끊임없이 종족간의 갈등으로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으로 우리의 프로젝트를 가지고 갔을 때, 마니페스타 6의 장소는 남북으로 분단된 사이프러스의 수도는 분단된 도시 분열된 내가 맟은 프로젝트 department 2는, Turkish Cypriot 근방에 있는 오래된 호텔 빌딩에서 이루어졌다. 이곳은 참가자들을 위한 숙소와 함께 공공의 생산품, 제한이 혼합되었다. 몇 천명의 아티스트들과 큐레이터들, 필름 메이커들, 뮤지션, 건축가, 디자이너들인 학교에 참가하기를 희망하였다. 대략 프로그램에 참가할 100여명을 골라서 비엔날레를 위해 100일을 사이프러스에 머물렀다. 학교는 무료로 진행하려 했고, 선택된 참여자들은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비엔날레가 개최할 쯤 지역 적인 허가에도 불구하고 정지되었다. 그들의 요구는 모든 프로젝트가 그리스 영향권인 남쪽의 사이프러스 지역에서만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를 거절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한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도는 무산되었다. 비엔날레는 오픈 3개월전에 취소되었다. 이것은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학교로서의 전시가 실제로 작동하는지에 대하여 알지 못한 체 그 프로젝트를 버려두는 것이 꺼린칙했다. 나와 가까이에서 일하는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로 했다. 그래서 독립적으로 베를린에서 자생적으로 조직된 계획으로서 실현시켰다.
나는 점차적으로 이것을 실현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바우하우스나 블랙마운틴칼리지와 같이 중요한 아트스쿨들이 예술가그룹에 의해 자생적으로 조직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트프로젝트에 흥미가 있다면 그것은 레디메이드모델의 베리에이션은 아니다, 그것은 존재하고 순환하는 그 자체의 구조화된 작업 안에서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베를린은 분단과 고립이라는 측면(반세기동안)에서 우리학교가 존재하기 흥미로운 장소이다. 벽의 붕괴와 함께 독일 유럽에서 많은 작가들이 정착하였다. 그것은 문화생산자들의 거대한 이민이었고, 어떤 다른 공식적인 미술기관들의 발전보다도 빠르게 조직되었다. 그 결과 불과 20년만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전시장소가 생겨났고, 작은 독립기관들과, 베를린의 문화적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
사이프러스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unitednationsplaza로 바꾸었다. 학교프로젝트의 구조는 아주 단순했다. 무료이며 비형식이고 대학강의 타입의 세미나 시리즈, 그리고 현대 미술에 대한 포커스: 프로젝트의 기간 1년 동안 모두에게 개방된다. 콘텎츠는 출판물, 라디오방송, 온라인 을 통해 산재화하였다. 프로그램은 지속성을 가지기 때문에 한 번 와서는 의미가 없다. 반복되는 방문은 토론에서 어떤 가치를 얻는데 필수적이다. 일반적인 작가의 토크나 강의와는 다르다. 세미나는 길다. 때때로 몇 주를 늘리기도 하였다. 주말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매일 밤 몰려들었다. 전체적으로 일년에 6개의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주제는 포스트커뮤니스트 상황에서의 종교의 역할에서부터 사회적 매체로서 비디오아트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두서 없는 구조의 생존능력에서부터 전쟁상황에서 미술의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테마가 있었다. unitednationsplaza는 많은 필름 스크리닝을 보여졌고, 퍼포먼스도 이루어졌다. 마사 로즐러의 도서관은 여름기간동안 초대되었다.
UNP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자체로의 예술작업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하나의 예술 프로젝트로서 누구도 전시하거나 그것을 위해 선전하거나 AUDIENCE를 데리고 오지 않아도, 그것은 그 모두를 대신했다. 게다가 이것은 뉴욕에서부터 멕시코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관으로써 가장 효율적이고 필수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비평적인 실천의 형식이다. 물론, UNP는 이런 실험의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이것은 tina girouard, caroline goodden, Gordon matta-clark의 비형식적인 문화센터였던 „food‟와 같은 전통과도 연관될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치앙마이에 the land foundation도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Audience 몇몇에게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포지션을 연계한다. 이런 것은
상황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준다. 모두가 그들이 원하는 만큼 참여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생산적인 관여engagement의 일종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Spectorship은 초월되었지만, 기관과 큐레이터, 아티스트, 퍼블릭의 전통은 좀더 복합적으로 혼합되기를 독려받는다면, 나에게 있어, 이것은 어떻게 미술을 체험이 상상되고 구축되는지에 대한 변화를 준다. The public에 대한 아이디어는 부활될 수 있고, 비평적 미술 실천에 대한 양식은 보존될 수 있다.
Nikolaus Hirch, Unitednations plaza: building knowledge
UNP에서 건축가로서의 역할은 특별한 방식이다. 전시장이 없는, 전시를 위한 건물을 생산한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디자인보다는 건축적인 실천이 불가피하다. 전시장에서 학교로의 이동은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공동의 조건이 되는 사회적인 상황/조건을 강조한다.
이것은 계획가, 장인, 교사 등등 다른 롤모델들 사이의 지속적인 협상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나는 문제를 조직하고, 문제를 기관과 같은 어떤 형식이 삽입한다. 나는 아카데믹 공간에 초대받았으므로, 건축적인 작업과 함께 이론적인 모델로서 물리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현대 박물관과 교육기간 사이에는 지식의 생산과 관련된 다이나믹한 상황으로 불 수 있는데, 넓게 보면, 미술이 사회정치적인 타당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비평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몇몇 중요한 전시를 기억해보면, 활동적이고 사회적인 프로젝트로서 역할을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목적은 사회적인 스케일에 대하여 변화하는 프로젝트로서 전시를 재포지션하는 것이다.
UNP는 학교 모델이라는 측면에서 시작한다. 공간은 새로운 관중AUDIENCE를 부르는 것에 이용하거나 영합하지 않는다. UNP의 장점은 단순히 비스듬하거나 기대하지 못한 각도에서부터 프로그래밍의 문제를 씨름하고 교육에 대하여 씨름한다는 것이다.
사이프러스에서는 모델의 이론적이고 물리적인 측면 사이에서 마찰이 존재했다. 그곳에서 전시로서 학교는 꽤 축약된 형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장소특정적인 접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중립적인 인프라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학교의 요소들, 세미나, 오피스, 주방, 등등은 기호논리학적인 요소로 계획되었다.
안톤 비도클과 나의 관계는 건축가와 고객과의 관계는 아닌 열린 협업의 관계다. 세워진 결과는 특정한 커미션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비토클의 작업에 대한 건축적인 측면으로 묘사될 수 있다. 그의 관심은 E-FLUX, MARTHA ROSLER LIBRARY, EFLUX VIDEO RENTAL과 같은 기반시설 INFRASTRUCTURE들 이었다. 사실은 우리의 프로젝트의 시작은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략적인 사이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다. 그 자체가 미술작업이 되는 동시에 INFRASTRUCTURE가 되는 역설적인 과정이다.
비토클과 나는 하나의 공간을 위한 표준이 되는 하나의 세트를 개발했다. 베를린은 점유되지 않은 아파트나 상업공간이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공간들이 우리의 경제적인 요소, 중심성, 근접성이 표준에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다른 측도가 필요했다. 컨셉 내에서 자치권/자율성의 측면을 반영하여, 빌딩의 자율성이 가져오는 FREESTANDING, VISIBLE, ACCESSIBLE의 이점을 기준으로 많은 공간을 제외하고 3개의 빌딩으로 축약하였다. 그 중 PLATZ DER VEREINTEN NATIONEN(UNITED NATIONS PLAZA)의 주소가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3층의 건물은 맑스의 미사여구도 없었고, 베를린의 보헤미안적인 녹청도 없었다. 그것은 아주 포괄적이었다. 빌딩이 1970년대에서 온 것으로 보이지만, 1993년에 지어진 빌딩이었고, 건축적인 언어를 재조합하는 것을 피했다. 나에게는 이러한 조사의 과정이 건축을 디자인하는 다른 방식이다. 이 빌딩은 실현을 위한 최선의 적합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적인 이데올로기의 조직들을 무심하고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무표정한 우아함이 보였다. 건축적인 익명성은 베를린 문화적 지형도 내에서 UNP의 즉시적인 높은 비주얼러티를 제공하는데 이점이 있었다.
나의 개입INVENTION은 추가보다는 삭제의 측면이 더 많았다. 몇 개의 벽을 없애고, 한 층을 제거했다. 그리고 조명시스텐을 간소화하고, 파사드는 리암길릭의 UNP사인을 배치하기 위해 4가지 LOGIC으로 발전시켰다. 공간적인 컨셉은 상반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대 미술기관의. 갤러리, 극장, 시네마, 오디토리움 등이 혼합한 상태에 대한 관심으로 나는 경량 모듈러시스텐을 개발했다. 백색이거나 약간 누런 재질로 형식화된 그 시스텐은 다른 형식을 변경가능했다. 전시에서 세미나로, 비디오 스크리닝에서 퍼포먼스로, 강의에서 예측할 수 없는 배열로 혼합이 가능했다. 그래서 UNP는 그자체가 기간적인 모델로 디스플레이된 공간이다. 공간적인 배열은 양적인 로직이나 기하학적인 패턴 등으로 묘사될 수 있다.
UNP는 브뤼노 라투로가 말한 사물, 현실정치(REAL POLITIK)에서 사물정치(DINGPOLITK)로에 대한 현실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물리적인 사물이 가진 점차 분배되고 집합되는 것에 대한 활동적인 잠재력에 대한 것이다. 건축은 단띾함의 형식을 부정하기도 한다. (우리는 프랑스의 과학기술학자인 브뤼노 라투르를 다룰 것인데, 그는 현재의 근대성의 위기는 권력정치(Realpolitik)가 사물정치(Dingpolitik)로 전환되고 민주주의가 사물들(비-인간)로 확장됨으로써만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근대인은 세계를 자연과 사회, 대상과 주체라는 비대칭적인 이분법으로 분할함으로써 성공한 동시에 스스로의 위기를 자초했기 때문이다. 이제 민주주의는 하이브리드가 되어야 하며, 하이브리드로서 이해되어야 하는데 이는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의 이종혼합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이종교배여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세미나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는데, 빌딩은 작은데 참여하는 작가들은 많았다. 모든 강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었다. 핵심적인 형식의 문제는 무엇이 세미나이고, 강의인가/ 어떻게 청중과 강의자가 교감할 수 있는가 였다. 리암길릭의 경우, 나는 세미나의 형식에 맞춰 엄격한 그리드로 의자와 벤체를 정면을 향해 배치하였다. 리암 길릭의 스피치의 퍼포먼스피티를 강조하기 위해서, SPEAKER와 AUDIENCE사이에 정면의 자리에 배치하였다. 다음날, DIEDRICH DIEDERICHSEN의 세미나에서는 그가 참여자들과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잆도록, 임시적이로 흩트려트려 배치하였다. 마사 로즐러의 작업에서는 스크리닝 형식에 중심을 맞추었다. (Martha Rosler Library. Comprised of approximately 7,700 titles from the artist’s personal collection, the Library was opened to the public by e-flux in November 2005 as a storefront reading room on Ludlow street in New York City. It has since traveled to Frankfurter Kunstverein and MuHKA, Antwerp. The library will remain on view in Berlin through August 31st and will travel to Institut national d’histoire de l’art in Paris in November.)
나는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빌딩이 되는 것과, 빌딩이 다시 가르침이 되는 상황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지식생산과 존재하는 빌딩의 생산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서비스 제공자이자 작가이다. 나는 작가로 초대되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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