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를 두고 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했다는 둥 그래봤자 가상이라는 둥 하는 말을 하는 건 쓸데없다. 굳이 아날로그적 방식을 쓴 것은 그것이 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CG는 생각보다 풍부한 화면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영화라는 장치는 물론 가상이지만 그 가상이 현실 문맥에 프레젠테이션 되는 순간 그것은 현실성을 가진다. 다시 말해서 그 현실성이란 지금 여기의, 아마도 관객이 처해 있는 복잡한 현실적 상황과 영화에서 재현하고 있는 상상적 상황이 교차하는 순간 발현되는 현실성이다. 요는 정확하게 재현했다 아니다를 따지기 전에 어떤 현실성이 지금 여기에 있냐를 따지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국가가 일으킨 전쟁 상황, 그 조건은 이미 주어져 있다. 그리고 남성 군인이 덩케르크란 공간에 갇혀있고, 전운이 기울어 하루 이틀 상관으로 이들은 죽을 것이라 사실도 이미 조건으로 주어져 있다. 최악의 조건. 그렇담 여기서부터 어떻게 할 것이냐?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냐? 크리스토퍼 놀란의 질문은 이런 것 같다. 매우 현실적인 질문인 것 같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안은 가능한 방법은 다 사용하자 같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 오작동하더라도 일단 실패하더라도 해보자는 것. 때문에 아무런 무력도 없는 민간 선박이 징발되기도 하고 자원에서 민간인이 전장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프랑스군이 영국군으로 위장하기도 하고 좌초된 배를 활용해보려고 하기도 하고 기름이 떨어져가는데도 무리해서 공중전을 벌이기도 하고, 이를 위해 때로는 민족주의적 정서를 강조하기도 한다.
실패의 차원에서 보면 애먼 트라우마를 가진 아군 군인에 의해 꼬마 아이가 머리를 다쳐 죽었고, 프랑스군이 구조에서 배척을 당했으며, 민간 선박을 구하다가 많은 파일럿이 희생됐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은 구조되어 가정으로 돌아갔다. 성공도 실패도 없달까.
마지막에 해군 제독이 남아서 프랑스군을 더 구할거라면서 희망사항 같은, 허황된 말을 하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그렇게라도 생각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감독도 그런 심정으로 저 장면을 집어 넣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까 민족주의를 놀란은 분명히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적 현실이라고 본다. 다시 돌아가서 이런 민족주의를 어떻게 볼 것이냐? 사람을 구하는 민족주의라면?
덩케르크가 표현하고 있는 2차대전, 덩케르크의 고립된 상황에서 여성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전쟁이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피해자도 남성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꽤나 나는 남성 군인에게 감정 이입했으며, 그 고통을 내가 겪었으면 어떨까 생각하며 지금 현실에 안도감을 내쉬기도 했다. (비극의 효과!) 말하자면 나는 맞서 싸우는 군인이라기보다, 영상의 군인처럼 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서든지간에 도망치고 안전한 장소에 숨어서 안심하는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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