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에게, 미셸 푸코는 "주체화"의 과정의 역사만큼 "주체"의 역사를 쓰지는 않았다. 들뢰즈가 보기에 푸코는 권력 관계가 동시에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기계"--돌이켜 보자면, 시각적 형식과 비시각적 형식--를 통해 작동하는 담론 실천과 제도 실천에 함축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훈육과 처벌"의 파놉티콘은 촉각적인 아키텍처("시각적이거나 발광하는 배치")였고 동시에 인간 다양성에 가해지는 특정한 수행을 강요하는 추상적 다이어그램이었다. 시각적 형식은 비형식적 힘이 발생되고 그것을 초과하는 힘이었다. 들뢰즈는 푸코의 다이어그램의 힘이 다른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매핑했다고 특기했다. 그것은 "가상적이고 잠재적이며 불안정하고 사라지며 분자적이다" "전략적이고" "multipunctual"인 만큼 말이다. 들뢰즈의 리딩에서 이런 분산성 기능은 일종의 "휴먼 테크놀로지"를 구성하면서 사회 필드를 설립한다. 그것은 내재적 발인cause처럼 작동하는데, 그 내지적 원인은 그것의 관계와 프로듀싱 이펙트를 처단하는 아상블라주나 메커니즘을 지시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푸코를 이렇게 결론내린다. "기계는 테크니컬하기 전에 소셜하다."
이런 형식과 정보의 이중성은 주디스 베리의 예술에 엔트리를 제공한다. 베리의 방법 안에서 시각 테크놀로지가 사회적 차원과 다이어그램 둘 다를 생산한다.
배리의 작업은 푸코식의 아파라투스로서의 필름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 주체성을 구축하거나 생산하는 공간적이고 사회적인 도구 말이다. 하지만 더욱 일반적으론, 그녀의 작업은 1970년대의 변동을 확증한다. 그 변동이란 개별 오브제나 "텍스트"로서의 필름 분석으로부터 주어진 작업에 의미를 생산하거나 그것을 통해 생산하는 차별되는 기호화 실천에 대한 주목으로 변했다. 포스트구조주의와 대략적으로 부응하는 이런 기호학적 접근은 서로 다른 담론적 포메이션을 허용하거나 방해하는 특정한 보는법의 문맥과 사회적 상황에서 인간 주체의 구축을 다룬다. 포스트구조주의 분석의 핵심 토픽은 주체 구축이 시네마의 "기계"와 결부된다고 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카메라 옵스큐라 그 자체는 공간 속에 광학적으로 집중하기 위해서 배열된 평행한 판과 함께 고전적인 퍼스펙티브의 기하 시스템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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