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7일 목요일

Sophie Landres, The First Non-Human Action Artist Charlotte Moorman and Nam June Paik in Robot Opera (2018)

샬럿 무어만과 남준 백이 콜라보레이션을 시작할 때 무어만은 1964년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을 위한 칼하인쯔 슈톡하우젠의 <<오리기날레>>를 제작하고 있었다. 예술가 마리 바우어마이스터와 공동으로 쓴, <<오리기날레>>는 전후 작곡에서 가장 급진적인 발전을 포괄하고 있는 것 같았다: electronic sounds, the austere mathematical order of serialism, and the messy, veristic improvisations found in happenings. 무어만은 상대적으로 프로듀싱에서 뉴했지만 잘 알려진 괴짜 첼로주자로, 그녀의 뉴뮤직의 해석은 잡 디스크립션을 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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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적 대체

"인간화된 기술"이 백남준의 잘 알려진(그리고 무어만의 조금 덜 알려진) 사이버네틱스에 관한 관심으로부터 도출된 한에서, 그것은 이중의 스테이트먼트로 독해되어야 한다. 경력 후기에, 백남준은 여기에 관해 "나는 기술을 바보처럼 만든다"고 덧부치기도 했다. 동일한 결론이 그가 노버트 위너와 마샬 매클루언, 케이지 사이의 "공통분모"라고 부른 것을 고려함으로써 도달할 수도 있다. 믹스드 미디어와 비결정성, "전자학과 물리학의 시뮬레이션 혹은 비교"에 덧붙여서, 백남준은 "미학과 사이버네틱스의 관계성" 속 중요한 연결지점을 위해 앙리 베르그송의 "시간의 개념"을 사려했다. 메카닉한 인식과는 반대로, 이것은 생기있는 연속체로서 상상된 시간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지속으로, 거기서 무질서는 오직 비결정성과 엔트로피, 실패 같이 예기치 않은 질서이다. 이런 이유로, 베르그송은 (손탁처럼) 오토마티즘이 코미디의 본질적인 원천이며 사회 비판의 형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계적 강요를 유동적 시간성, 굳은 액션이나 아이디어의 자동적 변화를 강요하든 꼭두각시와 리플리카의 외양을 강요하든, "인간 몸의 그 태도와 제스처, 움직임은 몸이 기계를 우리에게 떠올리는 꼭 그만큼 웃길 수 있다." 인간과 그들의 발명품을 화해시키는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인간화하는 기술"은 <오페라 부파>의 역할을 역전하는 것처럼 기능했다. 달라가 설명했듯이, 그것은 새로운 시간성 안에 새로운 주체성을 제시함으로써 현재에 반대하는 판타지다. "그것의 무기"는 그가 말하길 " 공통 휴머니티에 참여하는 것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 것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캠페인 트레일의 입후보자처럼, <로봇 케이456>은 ... 백남준이 무대에서 종종 그랬던 것처럼 말린 백태를 "쌌다." 뉴욕에 그것을 가지고 오기 전에, 백남준은 그것의 사포와 부싯돌 페니스를 제거하며 더욱 더 안쪽의 조크를 불어 넣었다. 케이지가 쓰길, "로보트의 똥은 비타민과 데오도란트, 사슴똥을 연상시키는 모양의 흰색이다; 페니스는 손가락의 그림자다;질은 고래의 그것이다." 케이지는 자연과 마약상점의 메타포를 통해 로봇을 이해했다. ... 다른 말로, <로봇>은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문화적으로 조합된 형상이었으며 예술가 자신의 자화상이었다. 왜냐하면 백남준은 <오리기날레>동안 관중에게 콩을 던졌고 <심플>에서 같은 것을 퍼포머에게 시켰고, 로봇의 콩의 배설은 또한 백남준의 일을 대신했던 것이었다. 백남준은 실로 그것이 그렇게 되길 희망했다.

도구에 의해 대체(substitution)되거나 로보트로 만들어진 노동자에 대한 조크는 산업화의 여명 이후 순환하는 불안을 건들였다. 빠르게 밤낮없이 지속되는 만족모르는 생산성은 새로운 기술이 노동자를 전부다 대체하려고 위협하는 동안에도 산업 기계의 기계적 움직임의 확실성을 오랫동안 필요로 했다. 1960년대에, 컴퓨터적 기계는 비슷한 울티마텀을 보여줬다. 동시에, 마이너리티와 여자 노동자의 밀어닥침(백남준과 무어만과 다르지 않게)은 미국 고용 시장을 압박했으며 어떻게 자본주의가 objectify하는지에 관한 마르크수조의 담론을 재점화했다. 그러나 프로덕션이 자본주의 경제 하의 인간과 오브젝트 사이의 트랜스피규레이션의 에이전트로 보였다면, malfunction은 <로봇오페라> 안에서 트랜스피규레이션의 에이전트였다. "다시 새로워진 존재론", 즉 "서프라이즈 아 프리오리"가 참여자를 익명화하는 곳으로부터 떠오른, <로봇>은 일을 멈추기 위해서 설계됐으며 그것은 무어만과 백남준이 욕망했던 역할의 융합을 초래했다. 

그 로봇은 <ㅇ리기날레>의 타임포인트동안 무어만과 함께 슈톡하우젠의 유명한 <플러스 마이너스>를 듀엣으로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피치카토는 로봇이었다--하지만 로봇이 부서져서 피아노로 백남준에 의해 대체됐다. "스테이지 프라이이트"는 리뷰에 프린트된 설명이었다. 섭스티튜션과 트랜스피겨레이션은 다음 봄 유럽 투어까지 이어졌다. ... 생상의 <동물의 카니발>의 <백조>를 연주하는 동안, 무어만은 챌로주자로 행동하는 것에서 백조를 그리는 것으로 선회하여 한 배럴 물에 자신을 잠기도록 하고 물을 뿌리는 작곡을 완수했다. <로봇>이 무어만을 따라 작동하고 있을 때 마다 그 곡은 <로봇 오페라>를 참조하는 듯했다. 무어만이 자신이 음악이 될때까지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악기적 로봇은 삶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인간의자, 인간 엔드핀 스토퍼, 백조 인간, 로봇 뮤지션에 더해서, 무어만과 백남준은 <24 stunden>의 <26'1.1499">의 급진적인 해석을 수행할 참이었다. ... 백남준을 "인간 첼로"로서 연주하기는 케이지의 작곡에 대한 무어만의 초기의 가장 도발적인 주석 중 하나였다. ...

케이지는 정확하게 그 시퀀스가 "시간 속 사운드 이벤트라기보다 액션을 중시했다"고 헐뜯었다. 실로, 퍼포머의 음악적 트레이닝과 체화된 존재를 향해 퍼포먼스가 재지시됨으로써, 무어만은 오페라 안에 음악이 가진 에이전시와 <오페라 부파>가 mistaken identity의 케이스를 제공한다는 사회적 풍자를 선호했다. 악기를 위해 인간을 잘못 취하는 것은 프로페셔널 필드로서의 학제와 후기 자본주의의 억압적인 행위 룰로서의 디서플린 사이의 유비를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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