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0일 화요일

질 들뢰즈 <매저키즘>

1. 사드와 마조흐의 언어
"폭력과 에로티시즘은 분명히 만난다."(국 20)

"마조흐의 사랑은 계약에 의해 상대의 행동을 언어의 형태로 형식화시키고 규정시켜야만 하는 사랑이다."(국 21)


사드: 자신의 고독과 전능함을 논증하는 것. 그것이 사드의 폭력. (괴로워 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 하지 않음. 오히려 차갑고 논리적인 고독 상태.) 그래서 바타유는 "사드의 언어는 화자와 청자 간의 관계를 부정하는 언어다"고 말함. institution 필요

성관계에 있어 둘 사이(아마도 dom과 sub를 언어학적 sense로 표현하면:
imperative function 명령어적 기능 / 폭력
description function  기술적 기능 / 에로티시즘

사드나 마조의 언어에서 imperative function + description function의 1차적 기능은 비슷함. 개인적 차원의 폭력과 에로티시즘. 하지만 두 번째 기능은 고차원적인 기능을 수행하는데, 여기서 사드와 마조가 갈림. 사드에서는 순수 이성의 이데아가 행하는 비개인적인 폭력이 나타남. 그 폭력의 구체적 행위가 demonstration. 내가 맞다는 것을 끊임 없이 입증하는 것. 여기서 피가학자의 의사 따위는 사실 안중에 없고 중요하지 않음. 내가 만족할 때까지 해야겠지만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무한 victim 양산.

하지만 마조흐는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서 많은 단계를 밟아야 함. 설득하고 교육하고 계약(pact)을 맺어야 함. 그 가운데 계약자를 신화화, 이상화(사실 페티시화)하는 의식을 치러야함. 들뢰즈는 이것을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텔레스가 주인공더러 supersensual이라고 한 말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남주인공의 예를 듦. 또는 <이혼한 여자>에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의 나체를 보고 예술작품인 것처럼 느끼는 장면의 예.

We are dealing instead with a victim in search of a torturer and who needs to educate, persuade and conclude an alliance with the torturer in order to realize the strangest of schemes.(20)

The middle ages distinguished with considerable insight between two types of commerce with the devil : the first resulted from possession, the second from a pact of alliance. The sadist thinks in terms of institutionalized possession, the masochist in terms of contracted alliance.(20-21)

Plato showed that Socrates appeared to be the lover but that fundamentally he was the loved one. Like­ wise the masochistic hero appears to be educated and fashioned by the authoritarian woman whereas basically it is he who forms her, dresses her for the part and prompts the harsh words she addresses to him. Dialectic does not sim­ply mean the free interchange of discourse, but implies transpo­sitions or displacements of this kind, resulting in a scene being enacted simultaneously on several levels with reversals and redup­lications in the allocation of roles and discourse. (22)
/ 국역본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연인이 있었을 때, 바로 자기 자신이 그 연인이었음을 보여준 적이 있다"라고 번역한 것은 오역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랑하는자(능동형)라고 자신을 어필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사랑받는자(수동형)였다는 것을 플라톤이 보여줬다는 뜻이다. 즉 위상의 변증법적 자리바꿈. <향연>의 결말부에 나오는 이야기. <매저키즘> 국역본 26쪽 참고할 것.

사드 언어의 고차원적 기능은 demonstration
마조 언어의 고차원적 기능은 dialectics

2. description의 역할

사드의 description은 난잡함. cf. 마조흐는 점잖음.
사드의 디스크립션은 물론 demonstration의 영향 하에 있음. 그 전제 하에..
사드의 디스크립션에서 주인공의 쾌감이 궁극적으로 뒤쫒는 것은 pure negation. (표면적으론 pure negation보다 경험적인 범죄적 쾌락--심하면 살인까지--에 사로잡힌 것 같아 보이지만...)
이것은 경험 세계에 없으므로 demonstration의 대상. eg. 수학의 0 개념. 이것은 자기 자신의 자아까지도 부정. -> 프로이트의 죽음충동

마조흐는 disavowal과 관계.
disavowal은 다른 것의 출발점이 되는 타당한 이유. (무엇을 하고 싶기 때문에 무엇을 disavowal하는...) "프로이트가 보여준 가장 훌륭한 예는 바로 페티시다."(국36) 페티시는 남근의 대체물. 페티시는 상징이 아니라 실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하여 끊임없이 회귀하는 정지된 이미지. 여기서 이미지는 믿음과 연결. "페티시즘은 필연적으로 매저키즘에 속한다"(국37) "마조흐의 인행과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페티시의 주된 대상은 모피, 신발, 채찍, 여성을 찬미할 때 사용하는 이상한 모자, <모피를 입은 비너스>에서 보이는 다양한 위장 등이다."(국 38)

요컨대 사드는 "제도"를 통해 사고하며 마조흐는 "계약"을 통해서 사고한다. 계약과 제도의 법적인 차이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계약은 원칙적으로 관련자들 간의 자유로운 동의를 전제로 하, 양자 간에는 권리와 의무의 시스템이 형성된다. 게다가 계약은 제3자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으며 제한된 기간 동안만 유효하다. 반면 제도는 장기간의 상태를 결정하며, 강제적이고 마음대로 취소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이나 권위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과 관련한 계약과 제도의 차이다. 계약은 법이 그것을 가능케 한 조건을 넘어서거나 그 조건에 간섭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적인 법을 형성하지만, 제도는 행동, 권위, 권력의 동적인 모형을 통해서 권리와 의무의 시스템을 대체하고 법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계약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생 쥬는 제도는 많을수록, 반대로 법은 적으룻록 좋으며, 법이 제도에 대해 우월성을 가지는 한 진정한 공화정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계약의 저변에 흐르는 그 특유의 충동은 법이 결국 계약 자체를 대신하고 계약에 법의 권위를 강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을 창조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반면, 제도의 경우에 작용하는 충동은 모든 법의 격하와 법에 상위하는 우월한 권력의 형성을 지향한다.(국 92-93)
-> 법의 거부로서의 제도라는 사드의 "아이러니"

법이 선이라는 원리가 아니라 법의 형식 그 자체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사상으로부터 새디스트는 법보다 더 우위에 있는 원리로 상승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낸다. 그러나 이 원리는 법을 전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일차적 자연의 비공식적 요소이다. 법은 그것을 준수하는 사람들의 죄를 증가시킨다는 또 다른 현대적 사상으로부터, 매저키스트는 법에서 그 결과로 하강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한다. 그는 처벌을 금지된 쾌락을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죄에 직접 대항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그는 방법만 다를뿐 새디스트에 못지않게 급진적으로 법을 전복시킨다.(국 107)

** 내가 생각하기에 사디스트는 상대방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쾌락을 얻음. 그런데 이때 부정되어야 하는 대상이 부정을 수긍해버리면 쾌락이 사라짐. 부정되어야 하는 대상은 끊임없이 새디스트의 부정을 부정함. 부정은 완성되지 않음. 그렇기 때문에 부정은 무한 반복. 이것이 들뢰즈가 이야기하는 2차적 자연의 매커니즘. 하지만 완전한 부정의 달성이 궁극적으로 추구되기도 하는데 이것이 프로이트의 죽음충동과 상통.(1차적 자연) 그런 논리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경우엔, 새디스트 자신의 부정을 동반하게 됨. 일종의 초자아적 법만이 그 본질로 남게 됨.

** 매조키스트는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도록 상대방을 설득함으로써 쾌락을 얻음. 하지만 이것은 자신이 부정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부정됨으로써 얻는 2차적 이득(쾌락) 때문임. 들뢰즈는 때문에 이런 심리를 부인이라고 말함. 부인은 부정과는 다르게 ~ 때문...이라는 부정의 동기가 있음. 이런 부정은 판타지를 만드는 매커니즘과 같음. 망상을 통해서 상대방이 나를 부정해도 되는 사람인 것처럼 설정하는 것. 부정되는 (계약)조건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란, 처벌 이후의 일종의 자유. 다시 말해 자유를 얻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신을 계약 관계 안에 자진해서 구속하고 처벌을 먼저 받는 것임. 이 모든 것이 판타지 속에서 이뤄짐. 그러니까 새디스트가 진심을 담아 뭔가를 한다면 매조키스트는 가장해서 뭔가를 한다. 새디스트는 법을 그냥 부정하지만 매조키스트는 법을 지키면서 법이 의도하는 것과 다른 결과를 낸다는 점에서 법을 희롱함. 새디스트가 진정성 넘치는 사람이라면 마조키스트는 의뭉스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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