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8일 일요일

Laura Wertheim Joseph, Messy Bodies and Frilly Valentines: Charlotte Moorman's Opera Sextronique

샬럿 무어먼은 학창시절부터 페미닌. 심지어 병실에서도 메이크업과 헤어스프레이를 쥐고 놓지 않음.
백남준은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Room for Charlotte Moorman>을 설치. 무어만이 좋아하던 가운들.
무어먼의 커리어는 페미니즘 제2물결과 동시에 있음. 그에 따르면 무어먼은 스테레오타입의 페미니니티를 가지고 있음. 그래서 마사 로슬러가 비판: 백남준의 프로젝트의 "body as an instrument that plays itself."그 당시 분위기란 1968년 미스 아메리카에 반대하는 데모를 여성 단체가 함. 브라를 던지고... (<Topless Cellist>에 따르면 무어만이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티비 브라>를 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라는 사실.) 

무어먼은 남부 미국의 페미니니티의 관습을 가지고 있었음. 무어먼이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를 통해 경찰에 잡혀갔을 때, 그녀가 드러낸 페미니니티를 향한 페미니즘 진영의 감정은 좋지 않았음. 세컨 웨이브 페미니스트 Andrea Dworkin은 무어먼을 harlot창녀라고 부름. 또 그녀의 커리어를 process of extended rape라고 함. 플럭서스 동료 엘리슨 놀즈는 무어먼의 subservience와 유아성에 비관적이었음.(charlotte moorman: cello anthology 씨디의 평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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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맥퍼슨이 <More Than Meat, Joy>, 슈니만의 퍼포먼스와 글 선집의 미드커리어 연구를 기획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슈니만에게 글을 하나 기고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슈니만은 맥퍼슨의 손편지에게 손글씨 메시지를 더했다. 그녀는 이렇게 메모했다:

우리의 길고 환상적인 공유된 모험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마음에 들어 온다. 아마도 당신의 첫 번째 누디티에 관한 스토리, 내가 발코니 오르막을 위해 무척 느슨하게 종이를 당신 주변에 달았을 때?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사랑하는 C.

"첫 번째 누디티"에 관해서 슈니만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오리기날레>의 미국 프리미어에서 발생했던 레퍼런스를 만든다. 백남준은 실제로 이렇게 주장했는데, 무어만이 섹스를 가지고 음악을 증폭시킨다는 뜻으로 선진화된 음악을 향한 백남준 자신의 욕망에 복무하는 가운데 세미누드를 어필하라고 무어만을 설득한 최초의 사람이 자신이라고 말이다. (1965년 파리에서 무어먼은 백남준의 <생상의 테마에 관한 변주곡>을 위해 가운 대신에 셀로판을 입었다.)[28] 그러나 그 해보다 전에, 슈니만의 제안에서 무어만은 <오리기날레> 캐스트에서 "현악기주자"를 연주한 저녁 동안 얇은 거즈로 몸을 감싸는 것을 어필했다. 인터뷰에서, 무어먼은 또한 그녀의 누디티에 관한 첫 번째 실험에 관한 기억을 슈톡하우젠의 스코어가 표시한 기간동안 "그녀 자신을 연주했을" 때라고  더듬었다. 의상의 적용에 슈니만의 크레딧을 주기 보다는, 무어만은 앨런캐프로, 미국 프로덕션의 디렉터가 무어만을 "디페미나이즈defeminize"하는 노력 가운데 제안을 만들었다고 리포트했다.[30] 무어먼은 어떻게 (예상과는 다르게!) 얇은 페브릭이 자신의 페미닌한 보디 피쳐를, 그것으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게 아니라,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는지 강조하면서 그 일화를 끝맺는다.

슈니만의 실망에 관해서 이야기 하자면, 무어먼이 슈니만이 책임성을 갖고 있었던 퍼포먼스의 요소를  캐프로에게 크래딧을 주는 일은 한 번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다음 해, 무어먼의 세 번 째 연례 아방가르드 페스티벌(1965)에서, 슈니만은 캐프로의 해프닝 <Pull and Push>의 제 고유한 버전을 감독했다. 작품 지시보에 따르면, 그녀는 저드슨 홀을 퇴장한 다음 혼합매체 환경을 만드는 데 사용하기 위한 부드러운 메터리얼을 찾으면서 57번가를 쏘다니기 위해 초대됐다. 슈니만은 그 이벤트에는 "광란"이 따랐다고 그렸는데, 참여자는 차로부터 허브캡을 찢었고, 금속 포스트로부터 길표시를.... 경찰의 시선을 끌었다.[32] 체포를 피하기 위해 슈니만과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의 참여자 몇몇은 뒷문을 통해 탈출해 텍시에 뛰어 들었다.[33]

몇년이 지난 뒤, <소호 뉴스>를 위해 제랄드 마조라티와 인터뷰를 하는 당시, 무어먼은 그 날의 카오스적인 사건에 관해 회상했는데, 쿠어먼은 "그 폭동"의 책임이 슈니만이 아니라 캐프로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인터뷰를 읽은 다음, 슈니만은 무어먼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 슈니만은 많은 근심 걱정을 표현했다. 슈니만은 그 사건이 일어나던 때 만약 <Push and Pull>의 [자신의] 디렉션으로부터 어떤 특별한 발전이 생겼다면, 그것이 앨런--더 일려지고, 존경받는, 남성--에게 다이렉트로 축적될까봐 두렵다고 덧붙였다. 프로덕션을 캐프로에게 크레딧을 줌으써, 무어먼이 슈니만이 "최근 역사의 많은 왜곡... 오래된 관력, 남성적 전통...."이라고 부른 것에 기여한다고 슈니만은 주장했다. 슈니만은 무어먼이 그 당시 분위기를 분명하게 기억해주길 바랐다: <Push and Pull>은 그녀 자신과 무어먼 사이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그것은 무어먼이 오거나이즈했던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의해 가능하게 된 것이다.[35]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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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먼의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의 퍼포먼스가 왜 예술비평과 예술사에 깔린 우세한 규범에 위협을 만들었는 명확하다고 해도, 나는 왜 무어먼이 페미니즘 예술의 역사 안에서 자신의 장소를 찾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시대의 페미니즘 바디아트가 노스킬이나 비예술성 때문에 조롱받았던 반면, 무어먼은 바로 그 페미니스트에게 비난받았는데, 이유는 그녀의 퍼포먼스에서, 무어먼은 그녀의 신체와 그녀의 기교를 모두 디스플레이했기 때문이다. 무어먼은 자신의 노동과 기교 안의 일종의 에이전시를 주장하는 동안, masquerade의 퀄리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페미니니티의 퍼포먼스에서 일종의 에이전시를 주장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 두 가지 전략 가운데의 긴장이었다. 그 방법 안에서 그 둘은 불협했고 서로를 문질렀다. 그것은 무어먼의 신체--노동하고laboring 파업하는striking 포즈로서의 신체--를 몹시 읽기 난해하게 만들었다. 

클래식 첼로를 플레이하기 위한 무어먼의 농축된 품행과 능력은 종종 전통적 음악의 젠더화된 위계에 복종하는 표시일뿐이라고 묵살당했다. 그녀의 페미니니티의 디스플레이가 헤테로섹슈얼하고 가부장적 규범을 유지시키는 데만 오직 복무하는 가운데 작동하고 있다고 추정되면서 말이다. 탈식민적 페미니스트 사바 마무드는 서구 페미니스트가 어떤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사실이란 특정 불화의 전략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종속이라고 이해하는 것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거장 피아니스트의 예를 제공하는데, 그녀는

훈육적 실천의 고통스러운 체제에 그녀 자신을 내주는 것 만큼 견습기간의 위계적 구조를 향해 자신을 내준다. 능숙한 솜씨로 악기instrument를 연주하기 위한 능력--필요한 에이전시--을 얻기 위해서. 중요하게도, 그녀의 에이전시는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는 그녀의 능력에 입각된다. 그 컨디션은 클래식하게 "순종성"으로 참조된다.[72]
마무드가 참조하는 전통적인 콘서트 관습 안에서, 페미닌한 드레스와 행위는 프로페셔널한 여성 첼로주자의 "레퍼토리"의 완전히 중성적인 요소다. 그녀가 첼로 자체와 가지는 관계성처럼 말이다.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에서 무어먼은 이 관습을 향하는 식별 가능한 레퍼런스를 만든다--재판에서 무어먼은 코트에게 이렇게 강조했는데, 두 아리아를 위한 그녀의 앙상블은 콘서트 의상으로서 참조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검사 갈리나가 의심했듯이, 그리고 피고쪽 증인 카만 무어가 확증했듯이, 무어먼 또한 질문에 그러한 음악적 관습의 중성화를 요청하는 데 있어, "전자 비키니"와 상반신탈의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masquerade와 퍼포머티비티의 명백한 레퍼런스를 만든 마스크와 소품을 통해서도 그렇게 했다. 무어먼은 이렇게 전통적 여성 음악가의 노동을 말소하고 미학화는 것에 대한 주목을 요청한다.

<An Artist in the Courtroom>에서  무어의 증언에 관한 무어먼의 논의에서, 무어먼은 내가 결론내고 싶은 바에 관해 명확한 포인트를 제공한다. 그녀는 자신의 퍼포먼스의 의도가, 무어가 제안한 것처럼, 사회의 풍습을 과시적으로 무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가짜와 위선을 [풍자하기]위해 서였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그를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데로 나아간다: "아이러니의 중첩은 새로운 [퍼포머티브한] 접근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아이러니의 포인트는 예술적 긴장을 ... 창조한다."[74] 그러한 긴장--주체성과 객채성, 명연주자와 장난감, 브람스와 비키니, 예술과 포르노그래피--는 역사가가 종종 정돈하려고 생략하는 지저분함을 창출한다. 되려, 나는 이렇게 제안한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젤리같고 클라우디한, 스테이지 위에서 서성거리는 범핑 바디"의 불결정성에 남아 있다고.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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