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튼 파편으로 전체를 사고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파편에 고착되는 건 아마 그것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럴 거다. 그러니까 파편이지만 그들에겐 그게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문제가 세상 모든 문제와 일치하게 되는 세카이물에서 작동하는 매커니즘. 이것이야말로 오이디푸스 전단계로의 퇴행 아닌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90년대 감성이다.
이런 말꼬리 잡아서 비난하기는 단문 위주로 돌아가는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의 "의미있는 형식"과 잘 맞아 보인다. 150자 내외의 세계에서 파편은 완전해 보일 수도 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좆문가가 많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형식적 제약이 내용의 불완전함을 완전하게 보이게 만든다.
150자 내외의 사고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이들이 어떻게 말 할까? 내 경험에 따르면 이들은 침묵을 지켰고 반대로 상대방이 말이 많다면 그는 꼰대로 인식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침묵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라면? 예를 들면 인터뷰 같은. 최근의 경험에 따르면, 그냥 자신의 이야기, 대부분은 논리보다는 어떤 느낌을 이야기 한다는 인상인데, 그게 보통의 경험치이거나 그 이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에겐 몹시 특별하다.
150자 내외의 사고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이들이 어떻게 말 할까? 내 경험에 따르면 이들은 침묵을 지켰고 반대로 상대방이 말이 많다면 그는 꼰대로 인식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침묵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라면? 예를 들면 인터뷰 같은. 최근의 경험에 따르면, 그냥 자신의 이야기, 대부분은 논리보다는 어떤 느낌을 이야기 한다는 인상인데, 그게 보통의 경험치이거나 그 이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에겐 몹시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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