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일 화요일

조영남부터 조덕배까지

예외적인 예술가가 아니라면, 예술계는 예술가의 업장이다. 대다수의 덜 야심찬 예술가는 업장의 관례를 위반하지 않고, 따른다. 

그런데 예술계라는 업장의 관례는 사회적 룰과 매우 다르며, 때로는 예술계 내에선 이미 안정화되고 식상한 것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사회에서는 여전히 낯설고, 따라서 불화를 일으킬 가능성을 가진 것도 있다. 다만 아직 표면화되지 않아서 문제가 되지 않을 뿐이다. 덜 야심차고 순진한 예술가가 만약 어떠한 계기로 그 지점에, 그러니까 표면에 도달한다면, 바로 오늘날의 사태가 벌어진다. 분명히 하던대로 했는데 몰매를 맞고 매장당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갓 예술가의 탓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예술계가 고립되고 사회와 동떨어진 자기 논리를 수십년간 계발하고 정당화시켜온 결과, 조영남과 조덕배는 필연적이다. 순진하게 룰을 열심히 따랐다는 것을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문제의 근본적이고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거듭 말하자면 이들은 야심차고 예외적인 예술가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룰을 바꾸지 못하고 따른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그렇듯이. 생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학습한 것이다. 왜 사회는 그것을 예술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가? 왜 예술계는 여기에 침묵하거나 동조하는가?

비유하자면 예술계는 썩어 빠진 부실기업이지만 관심망 밖에서 예외적 혜택을 받고 있었다. 정말 비판받아야 할 것은 이런 예술계를 만들고 정당화했던 모든 것이다. 특정 인물일 수도 있고 기관일 수도 있고 제도일 수도 있고 담론일 수도 있고 그 모든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근본적인 비판을 통해 예술계가 사회와 협상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몇 놈 잡아 족치고 봉합하는 제스처에 만족할 것이다. 그건 한 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전방위적인 재조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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