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일 화요일

탈진실적 상황에 대해

지금 누군가가 '오늘날은 탈진실적 상황이 되어 버렸어'라고 한다면 얼마나 이 말에 비판적 효과를 바랄 수 있을까. 거의 없다고 본다. 이유는 저 말이 진실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진실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탈진실이란 것은 진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진실이 상대적이라는 진실이 세계의 작동 원리로 드러나 버린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과학과 정치가 역사적인 시행착오를 거쳐서 알아낸 진리이기도 하다.

심지어 진리가 어디에 있다고 하더라도, 탈진실을 비판하는 사람조차 이미 탈진실적 상황 안에 들어와 있다. 비판은 발화 즉시 탈진실의 상대성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크리틱만 그것을 모른다. 자신은 탈진실의 외부에서 탈진실이라는 말꾸러미를 직시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고 착각한다. 발화의 변형을 무시하는 걸까? 혹은 무서워하는 걸까?

어쨌든 그렇다면, 진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이야기가 어떤 (상대적인) 진실을 발생시키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말은 서로 다른 진실의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진실의 역학 관계를 살핀다는 뜻이다. 만약 이야기하고자 하는 진실이 절실하다면, 이야기의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군을 모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한 진실은 또 다른 진실과 똑같은 방식으로 연합하거나 그것에 반하는 종류의 진실과 대립해야 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런 종류의 매커니즘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해하기로, 다른 말로 그것은, 정태적인 정치가 아니라 정치하기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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