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일 화요일

음모 다큐멘터리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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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진이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음모론은 진리를 담지하거나, 최소한 가리켜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편집증적이라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단편들로 편집된 시스템은 내재적으로 총체적이며, 혹은 총체적으로 보이는 세계의 표상을 해체하며, 그런만큼 연속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회를 향한 비판적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편집증은 설명되지 않는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망상의 널뛰기를 한다. 그 망상이야말로 진정한 총체성의 계기이자 가짜 총체성 비판의 계기다. 그러니까 서동진에게 음모론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요는, 음모론이 그런 총체적 시스템을 상상/망상하지 못할 때, 그럼으로써 가짜 총체적 시스템을 비판하지 못할 때, 나쁜 것이 되거나 실패한 것이 된다.

여기서 서동진이 당연히 옳고 상상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총체성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삶의 양식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리얼리티다. 자본주의 리얼리티는 과학적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우연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비과학적이며, 사실은 이데올로기적이다. 반면 음모론은 편집증적 판타지 같지만, 총체적 인과관계를 편집증적으로나마 붙잡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과학, 이를테면 메타-과학이다. 서동진은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과학적 사고방식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 과학적 태도를 요청하고 있다. 음모론 따위를 일부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런 면에서 짓궂은 수사학에 불과하다.

요는, 서동진은 탈진실 상황에서 여전히 그것이 편집증적이더라도 진실-추구-태도를 주문한다. 서동진이 정의한 음모론은 그런 이론적 태도다. <그날 바다>는 음모론을 주창하는 것 같지만 각론에 매달려 그것을 전체인 것처럼 과장한다는 점에서 서동진이 보기에는 우연론에 기반한 실패작이다. 그러니까 서동진이 <그날 바다>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음모론적 출발은 좋았으나, 방법이 너무 자본주의적이어서 실패했다. 통계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는 것. 그러니까 이론의 실패다. <그날 바다>가 어떻게 프로그램 됐다면 서동진의 마음에 들었을까? 세월호 속의 경제 논리를 파고 들어 자본주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폭로했으면 좀 달랐을까? 정치적인 것이 되는 것일까? 그래서 코뮤니스트 사회를 만들자고 우겼으면 좀 속이 풀렸을까?

내가 보기에 서동진은 예술 작업 '안'에서 가짜 총체성의 폭로와 새로운 총체성의 계기를 동시에 상상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견고한 모더니스트다. 예술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탈진실"로 치부하며 그것이 이데올로기, 즉 허위의식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 소모적인 상황을 서동진은 "내전"이라고 부른다. "내전" 안에서 <그날 바다>는 전쟁을 종식시키지 못하면서 오히려 악화시키는 헛된 몸짓이다. 그래서 참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된다. 반면에 예술은 세계로부터의 도피처로 요청된다.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무언가가 된다.

나는 이 문제가 좌파 미술의 전형적인 문제. 내용은 진보적인데 형식은 보수적인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형식의 문제를 작품 자체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다. 이것은 사실 서동진이 음모론을 정의했을 때, 즉 세계를 편집증적 시스템으로 재구성하려는 충동으로 보았을 때 은근 내비쳤지만 거기서 그쳐버린 소견이다. 그 아이디어를 다시 회수해 작품 내부의 문제로 축소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세계 속에 그 시스템을 포개 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탈진실적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할지라도, 그 '악화'를 예술가가 지레 겁먹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작업의 미래는 작업 스스로가 결정할 테니까 말이다.

음모론적인 작품 보다는 세계의 음모론화가 어쩌면 필요하다. 내전을 종식시키거나 예술로부터 피안의 계시를 바라기보다는, 무엇보다 먼저, 지금이, 내전 상황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예술은 거기서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할 수도 있으며, 그것이 비판적이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상상력을 동원하는 데 있어, 적군의 무기를 이용했을 때 더욱 효과적이라면 그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이것이 나에게는 진리의 계기를 예술 안에 찾고 그로부터 관객이 각성하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아 보이는 방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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