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계성이란 말은 항상 호의적으로만 해석되는데, 물체를 넘어 관계를 우선시하는 것은 해방적이지 않다. 왜냐면 화용론적 충격을 깎아내리기 때문.
2. 가장 보편적인 주제를 object라고 부르자.
3. object는 환원 불가능한 통합된 리얼리티. 완전히 상승도 하강도 되지 않음. 아래로의 환원: sub-components로. 하지만 서브컴포넌트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대상은 유지되거나 최소한 저항함. 우리 몸은 세포로 만들어져 있지만 몸은 몸.
4. 위로의 환원: 사회과학에서 많이 하는 효과에 대한 집착. 여기서 object는 effect로 패러프레이징. 하지만 object에는 표출되지 않은 surplus가 항상 있음. 그렇지 않다면 “멜론이나 도시나 나 자신이 다른 각각과 자금 관계 맺고 있는 것 이상”의 변화는 불가능.
5. 두 가지 환원은 모두 object를 파괴하자고 제안. 이 환원이 지식의 두 가지 종류. “우리는 어떤 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설명하거나 우리는 그것의 효과를 묘사한다.” 하지만 하만이 보기에 철학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에 대한 사랑임. 기본적으로 철학은 무지에서 출발함.
6. 철학이 지식의 형태가 아닌 것처럼 예술에선 마찬가지 더욱 명확함.
7. object에 관한 이론은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이 만듦. 후설의 현상학은 ‘달’이라는 물체는 없으며 어떤 질적인 면이 모인 것을 우리가 ‘달’이라고 부름. 그런데 ‘달’은 어떤 질에도 선행해서 우리 마음 속에 먼저 떠오름. 즉, 달과 질의 모둠은 다른 것임. 하지만 하이데거가 보기에 달은 마음 속에서 현전하면서 소진됨. 하이데거가 보기에 달은 침묵으로 내빠짐.
8. 하이데거에 따르면 현전으로부터 이 내빠진 영역이 존재의 영역. 예술작품은 그것을 지시함. (땅의 비유). 모든 하이데거적 예술 작품은 하나의 땅을 암시.
9. 그린버그는 기만적인 내용으로 형식을 감추고 우리를 현혹시키는 아카데미즘을 비판. 하이데거와 비슷. 하이데거도 내용은 얼마든지 바뀌지만 바탕은 같은 것이라고 봄. 바탕은 한없이 깊어지고 내용은 표층으로 얇게 봄.
10. 대상과 깊이 관계된 예술=예술작업의 자율성, 모더니스트 미학으로 돌아가는 것? 프리드 리터럴리즘 비판? 한 번 검토해 보면. 프리드에게 리터럴리즘은 특정한 미적 감각이 아니라 리터럴한 대상. 연극성. 연극성이 나오는 이유는? 리터럴한 작업은 수용자가 작업과 마주하는 분위기를 고민하니까. 수용자가 작업에서 미리 예상됨.
11. 리터럴한 물리적 캔버스와 미학적 바탕은 구별되어야 함. 그린버그는 알고 있었음. 하지만 프리드는 그린버그를 잘 못 읽고 그걸 오해했음.
12. 프리드는 리터럴과 연극성을 잘못 융합함.
13. 리터럴리스트 관찰자로서의 관객: 대상을 패러프레이즈하는 데 실패함. / 하지만 예술의 연극적 원료로서의 관객: 리터럴리스트나 페러프레이저가 아니라 뭔가를 생산하는 ‘부품’이기도 함.
14. 리터럴한 것: 관계적인 것. 물체 밖으로의 효과를 참조하기 때문. / 연극적인 것: 비관계적인 것. 연기자가 becoming을 시전하는 장소. “이 에세이는 두 가지 기본 주장을 한다. 첫째, 하이데거와 그린버그가 예술의 표면 내용 아래에 있는 깊이를 요청한 것은 옳지만, 이 깊이를 통합된 전체적 바탕으로 정의한 것은 틀렸다. 모더니스트 이론의 문제는 예술을 탈문맥화하고 그것을 너무 자율적으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매체의 모양새에 있는 자율성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것 내부 자체에 있는 내용에 관한 매혹이 아니라 말이다. 여기서 그린버그가 초현실주의와 칸딘스키를 뻔뻔스럽게 거절했을 때. 둘은 매한가지로 억울한 패배자다.”
15 “두 번째, 프리드가 리터럴리즘이 없는 예술을 요청한 것은 옳지만, 틀린 것은 인간을 단 하나의 리터럴화하는 에이전트로 본 것이다. 예술작업이 구경꾼에게 어떻게 조우되는지를 너머서 깊이를 가져야만 하는 반면, 인간은 구경꾼이라기보다 예술작업 그 자체의 공동-제정자(co-contstitent)인데, 왜냐하면 매혹적이지 않은 예술은 쉽게도 매혹적이지 않은 과학이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실패한다. 여기서 억울한 패배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퍼포먼스 예술만이 아니라 프리드가 칭했던 모든 열렬한 애착이나 '감상성(sentimentality)'의 형태다.”
==> 그렇다면 인간 행위자는 예술 작품을 앞에 두고 무엇을 하는가? 김웅기 선생이 하는 인상비평이 떠오르고...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