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2일 토요일

프리-포스트인터넷에 관한 노트

더덕어몽어스라는 반직관적인 팀 이름과 함께 인터넷 친화적 프로젝트를 알리는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1>의 스카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면 벽을 향하면 유사 제단이 쉬이 보인다. 이 제단은 QR 코드를 신줏단지로 모시고 있으며, 4기사인지 사천왕인지 멋들어지게 수트를 빼입은 새 4마리가 제단화 형식으로 양옆에 붙어서 호위 중이다. 공간 중앙 바닥에는 ‘오늘은 너를 먹고싶어’라는 문구가 써진 웹소설의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 박약한 직사각형은 마치 마스터피스인양 통행을 방해하는 3면 가드라인으로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는데 그 자체가 좀 알쏭달쏭하다. 오른쪽 벽에는 홀로그램 스타일로 프린트된 얇은 띠가 세로로 천정과 바닥 사이를 꽉 채워 붙어 있는데, 벽이 열리는 듯, 틈으로부터 무언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이 계시적이다—바넷 뉴먼의 유명한 지ㅍ(zip) 페인팅처럼. 왼쪽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현란하게 돌아가는 무빙이미지는 마치 사천왕 캐릭터가 등장하는 미연시 게임의 오프닝 화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광경을 누군가 봤다면 이렇게 불렀음 직하다.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바로크 예배당.

온오프라인 격차

곤경에서 시작해보자. 어떤 누구도 전시장에서 QR 코드를 찍고 들어간 웹소설 플랫폼에서 한 자 한 자 읽으면서 웹소설 「오늘은 너를 먹고 싶어」의 내용—어떤 캐릭터가 어떤 행동을 했고 누구를 사랑했고 배신했는지 등등—을 파악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럴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는 상당 부분 유저 인터페이스의 레벨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곤경이다. (달리는 기차를 타고 저 멀리 보이는 조그만 전광판의 광고가 무슨 광고이고 어떤 배우가 출연했는지 파악하려는 시도.) 웹소설과의 이런 단절은 전시실에서 많은 트러블을 일으킨다. 옆의 모니터에서 돌아가는 무빙이미지는 미연시 스타일의 웹소설 광고를 의도했겠지만, 웹소설의 맥락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생각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모니터를 터치해야하나 고민하다가 깨닫게 되는 것은 오히려 게임은 존재하지 않고 내용도 불명이라는 것이다. 이 무빙이미지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역할은 전시실의 분위기 메이커다—이는 90년대 노래방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노래와 상관없이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던 정체불명의 뮤직비디오를 떠올리게 한다. 반대편 벽, 얇고 반짝거리고 길게 붙어 있는 홀로그램 띠지가 계시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이유 역시, 사실은 여기에 프린트 된 웹소설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네트워크의 사정은 어떨까? 「오늘은 너를 먹고 싶어」는 웹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심지어 웹소설의 주류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에서, ‘이건 정말로 웹소설이야!’라는 느낌으로 전시 기간 내 연재되었다. 여기의 곤경은 이 웹소설이 너무나 웹소설이고 플랫폼으로 사용한 카카오페이지가 너무나 카카오페이지라는 것에 있다—물론 미술작품이 너무 미술작품스럽고 전시실은 너무 전시실이라는 사실도 동일하게 지적되어야 한다. 웹소설 플랫폼은 당연히 미술 프로젝트 한 개를 위해 자신들이 구축한 몰입적 인터페이스를 변형시킬 의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텍스트는 카카오페이지가 요구하는 대로 포메팅(formatting)되어, 적합하고 효율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는 관계로 그 자체로 충분하다. 그래서 실로 소설과 전시를 연결해 볼 수 있는 단서는 페이지 내에서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8전시실에 PROJECT HASHTAG 전시 작품으로써 전시됩니다”라는 페이지에 고정된 베스트 댓글은 궁색해 보인다.[1] 그 아래에 댓글을 단 어느 사람도 이 소설과 미술을 연결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지방에 사는 사람을 고려했을 때, 댓글을 단 사람 중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네트워크와 현실의 양 극단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상 다가서려고 하면 할수록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어느 쪽을 입구로 삼든 출구는 없다.

현실, 오프라인은 인터넷의 4D인가?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인터넷은 죽었는가?」라는 글에서 네트워크 밖으로 풀려난 객체(object)의 자율적 에이전시(agency)를 지지하면서도 더욱 앞으로 나아간다. 인터넷이 이미 오프라인이 되었다면 카피레프트 같은 네트워크의 순환주의적 혁명을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해야 할 것이 아닌가?[2]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되돌아오는 슈타이얼의 사고는 매우 포스트인터넷스럽다.

하지만 여기 전시실에는 조금 다른 종류의 곤란이 있다. 1960년대 네트워크의 탄생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아마도 루브르를 평민이 점유한 이후로, 전시/박람회는 진귀하고 뛰어난 물건을 대중이 구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 움짤도, 하이퍼링크도, 댓글도 없던 시대에 전시의 관람성은 전시할 물건을 구하고 장소를 구해서 홍보하면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그 장소를 찾아서 보고 가는 식으로 이뤄졌다. 이런 전시의 테크놀로지는 동시대미술관에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공간 이동이 차단되었을 때 미술관이 겪었던 곤란을 생각해보라.) 물리적 공간에 물리적 사물—그것이 조각이든 회화든 스크린이든 잡다한 이퍼메라든—과 물리적 신체를 채워 넣어야 한다. 이것은 차라리 인터넷 이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관례라고 봐야 마땅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실에서 마주하는 곤란은 이런 종류의 저항이다. 실로 네트워크와 분리된 오프라인 전시실에 남아 있는 것은 관례적인 관람성 형식 그 자체다. 다른 한편에서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는다면 포스트인터넷 아트를 보기 위함이 아니다—어떠한 스크린의 추방자를 데려다 놓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진지한 예술 작품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논리의 편재화라고 부르기엔 오히려 현실은, 특히 미술관 전시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은 네트워크적 논리와 관람성이 얼마나 연결되기 어려운지를 보여준다고 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 인터넷과 포스트인터넷이 표상하는 네트워크 사회 이전의 구체제와 그것에 이미 적응한 신체적 한계를 포착하기 위해, 허락한다면, 여기서는 프리-포스트인터넷(pre-postinternet)이라는 용어를 쓰고 싶다. 프리-포스트인터넷 조건은 마땅히 인간의 굴레라고 불러야 할, 여러 역사적 제도적 신체적 조건의 구체제적—비네트워크적 혹은 반네트워크적—반동이며, 그것은 여전히 관성적이며, 제도적이며, 강력하며,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장소에서 특히 그렇다.

프리-포스트인터넷 조건

이야기를 조금 우회해보자. 2015년 5월 27일 저녁 8시경, 오픈베타공간 반지하의 텀블러에 강정석이 쓴 「서울의 인스턴스 던젼들」이라는 글이 게시되었다.[3] 이는 2010년 초반부터 하나둘씩 생겨나던, ‘신생공간’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활동을 당사자 시각으로 정리한 글로, 이후 다양한 지면에서 다시 소개 되며 새로운 세대의 미술 지형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여기서 강정석은 과포화 경쟁상태의 미술계를 MMORPG 생태계에 비유하며, 신생공간은 말하자면 인스턴스 던전, 메인 맵의 경쟁 강밀도를 해소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예외공간이라고 주장했는데, 골자는, 내장카메라와 지도앱이 내장된 아이폰3GS 발매 이후 오프라인은 온라인 네트워크적 작동방식과 겹쳐지게 되었고, 어떤 종류의 세계관이 변했고, 여기에 따라 신생공간의 활동은 온라인 게임의 프로시저로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적어도 신생공간을 주도하던 씬에서는 그렇다.

신생공간 담론을 잠깐 검토해 보는 것은, 관련 작가가 많은 부분에서 세대적으로 구별되고 여기서 주목받은 작업이 향후 포스트인터넷 아트와도 상당수 겹쳐진다는 의미에서 유의미하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위의 강정석의 글은 한국에서 포스트인터넷적 인지의 기원서사로서 부족함이 없다.[4]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새시대를 축하할 것만이 아니라, 신생공간이 그러한 활동을 펼치게 됐는지도 똑같이 주목해야 한다. 같은 글에서 강정석과 반지하의 운영자이자 작가인 돈선필의 인터뷰를 보면, 신생공간이 태동한 이유에 관해 “과도한 경쟁상태”와 “성취의 지연상태”를 지적하고 있다.[5] 이것은 기존의 좁은 미술계에 비해 과도하게 많이 배출되는 미대 졸업생 가운데 제도가 만들어 놓은 계급 사다리에 올라타기 위해 벌어지는 과도한 경쟁을 말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프리-포스트인터넷 조건이라 할만하다.

몇몇 비평가에 따르면, 신생공간의 흐름은 몇 년 안에 정리되었다.[6] 하지만 포스트인터넷 담론만큼은 그 이후 꾸준히 득세하기 시작하는데, 공간 사일삼 같이 잔존한 신생공간에서 새로운 세대의 작가와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배출했으며, 꼭 공간을 통하지 않더라도 요즘으로 치면 MZ 세대라고 불렀을 새로운 얼굴은 주류 미술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의 작업을 개진해갔다. 2017년부터는 아카데미에서도 본격적으로 포스트인터넷 아트에 대한 관심이 불붙기 시작했고, 2019년부터는 아르코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공립 미술관도 가세한다. 2020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프로젝트 해시태그 사업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프리-포스트인터넷 조건은 포스트인터넷 실천과 함께 해소된 것일까?

포스트인터넷 묘지

포스트인터넷 담론 득세기에 유행했던 트리비아 두 개를 잠깐 짚고 넘어가겠다. 2016년 포스트인터넷 아트의 챔피언이라고 알려진 슈타이얼의 『스크린의 추방자들』이 그의 제자라고 알려진 김실비의 번역으로 초판되었다. 한국의 미술 독자는 이 책을 많이들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곧 이어 몇몇 사람이 번역에 문제를 제기하더니 논란이 일기 시작한다—poor image를 뭘로 번역할 것이냐 같은. 그러더니 트위터리안과 학계인사를 가리지 않고 몇 마디씩 더하는 꼴이 되었다—번역자가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결국 출판사인 워크룸 프레스는 빠르게 사과하고 책을 절판시킨 후 재출간된 것은 2018년이 되어서다.[7] 번역의 권위자가 지식의 권위자가 되는 기현상은 한국에서 넘쳐난다.[8] 이것이 과연 포스트인터넷 실천과 무슨 상관일까?

또 하나 보자. 2018년에 열린 <<미러의 미러의 미러>>는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지저분한 하위문화의 위반적 이미지, 그러니까 ‘빈곤한 이미지’에 관심이 있는 작업을 모은, 비교적 이른 시기의 포스트인터넷 아트 전시다. 문제는, 기획자가 일베와 메갈리아 사이에서 벌어진 인터넷 문화전쟁을 구별 없이 똑같이 “스팸에 가까운 이미지”로 보거나 오히려 페미니스트의 정치적 요구를 조롱하는 일베적 백래시를 용인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9] 이는 ‘미러의 미러의 미러’라는 전시 제목이 난반사라는, 목표를 잃고 마구잡이로 상대를 공격하는 데 몰두하는 미러링의 실패를 우의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술을 하나도 모르는 영페미 사이에서도 이 전시는 유명해졌다.) 슈타이얼이 빈곤한 이미지라는 개념을 제안하면서 상상했던 것이 그런 백래시였을까?

그래서, 한국의 미술계는 포스트인터넷 조건으로 전환되었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2010년대 중반을 흐르며 한국 미술계에 나타난 슈타이얼에 대한 현장과 학계의 집중된 관심, 국립현대미술관 <프로젝트해시태그 2021>에서 슈타이얼이 심사위원으로 선임되는 과정은 포스트인터넷보다는 오히려 ‘모방과 필연’—한국의 앵포르멜은 서방 사조의 단순한 모방이냐 한국의 맥락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냐라는 미술평론가 이일의 곤경—의 전통적인 모순이 반복된 것처럼 보인다.[10] 또한 <<미러의 미러의 미러>>전이 채택한 이미지 가속주의의 형식화된 혁명처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포스트인터넷 이미지 해방 놀이는, 슈타이얼의 원래 의도를 참고하더라도, 어디에 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거기다 이 사업은 그 자체로 공모와 심사를 통한 참가자 선정 방식을 채택하면서 신생공간이 포스트인터넷 임시 공간을 창출하면서 탈출하고자고 했던 “과도한 경쟁상태”와 “성취의 지연상태”, 다시 말해 프리-포스트인터넷 조건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11] 마지막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포스트인터넷 아트가 설령 아무리 진일보한 미술이라고 하더라도, 미술관 같이 역사에 강력하게 이끌리는 장소에서, 거기다 국립기관에서 주도적으로 지원의 대상을 채택한다는 것은 <<선전>>과 <<국전>>이 생겨난 이래로 계속해서 한국의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는 아카데미즘의 지속처럼 보인다는 것이다.[12] 그렇다면 질문해보자. <프로젝트해시태그>는 최상의 포스트인터넷 아트로 채워진 그 순간에도 역사적으로, 또 구조적으로 프리-포스트인터넷 조건을 겹쳐놓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포스트인터넷 아트와 슈타이얼의 현란하고 이지적인 이론은, 그렇다면 애초에 무엇을 위해 개진되었던 것일까?

전시실의 제단으로 다시 돌아오자. 물화된 이미지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향연, 포스트인터넷 바로크 예배당에서는 과연 누구를 위한 장례가 준비되고 있는 것일까? 비시각적 네트워크의 지표적 형상, 그러니까 이미지는 실로 여기에 박제되어 있다. 네트워크는 죽었다. 이 상황은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위해 <MMA 백주년 증서(Centennial Certificate MMA)>(1969)를 제작할 때 작성했다는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대로 인용하자면,

인간의 양심의 보물

평범하게 수집되고 보존되며 찬미되는 명작들

역사와 사랑을 활기 넘치게 유지하면서

현재의 삶의 변화와 요구, 복잡성을 인식하고 대답하는

인류의 꿈과 이상을 비정치적으로 지키기 위해 봉사하면서

자부심의 순간을 연주하기 위해 미술관이 수집하는 영원한 개념[13]

더글라스 크림프(Douglas Crimp)에 따르면, 라우셴버그는 사진 복사로만 이루어진 이 작품을 수집하는 미술관을 향해 이렇게 쓴 농담을 던졌다.[14] 포스트인터넷 아트를 주창하는 어느 국립 미술관에서, 더덕어몽어스 역시 QR 코드를 박제하며 똑같이 그렇게 했다. (202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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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의 댓글은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가영, 「오늘은 너를 먹고싶어」, <<카카오페이지>>(웹사이트), (접근: 2022. 3. 5., https://page.kakao.com/home/%EC%98%A4%EB%8A%98%EC%9D%80-%EB%84%88%EB%A5%BC-%EB%A8%B9%EA%B3%A0-%EC%8B%B6%EC%96%B4/58070706).

2) 히토 슈타이얼, 「인터넷은 죽었는가?」, 『면세미술』, 문혜진, 김홍기 역, (워크룸, 2021), pp. 177-178.

3) 강정석, 「서울의 인스턴스 던젼들」, <<오픈베타공간 반지하>>(텀블러), (접근: 2022. 3. 5, https://vanziha.tumblr.com/post/120061798362/%EC%84%9C%EC%9A%B8%EC%9D%98-%EC%9D%B8%EC%8A%A4%ED%84%B4%EC%8A%A4-%EB%8D%98%EC%A0%84%EB%93%A4-instance-dungeons-of-seoul-%EA%B0%95%EC%A0%95%EC%84%9D)

4) 포스트인터넷 담론과 신생공간 사이의 관계에 관한 나아간 정보는 Yeon Shim Chung, “Synthetic Experience as Social Commentary and Alternative Media Practitioners in Contemporary Korean Art,” 『현대미술사연구』, 42, 2017를 참고할 것.

5) 강정석, 위의 글.

6) 대표적으로 신생공간과 활동을 함께 한 소장 비평가 권시우는 <<굿-즈>>를 신생공간의 시대의 종착지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2016년 <<서울바벨>>로 보지만 명확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권시우의 입장은 「유닛 이후의 세계 - 1화.'비평적 관객'에 대한 포트폴리오」, <<라라앤>>(웹사이트), 2021. 10. 26., (접근: 2022. 3. 8., https://lalan.art/journal/?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8647157&t=board); 나의 견해는 「신세대 담론의 작은 역사: 2013-2016」, <<아트신>>, 2019. 2. 12. (접근: 2022. 3. 15., https://www.artscene.co.kr/1680)를 볼 것.

7)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 글을 참고할 것. 정강산, 「히토 슈타이얼에 관한 메모」, <<FMTL(블로그)>>, 2018. 5. 26. (접근: 2022. 3. 5., https://fmtl.tistory.com/79).

8)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번역하면서 원문을 자신의 해제의 주석으로 만들어버린 백종현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9) 이런 종류의 위반성에 대한 불편한 감정에 대해서는 김정현, 「<<미러의 미러의 미러>> 이진실 기획, 합정지」, <<RE_RECODINGS>>(블로그), 2018. 11. 5. (접근: 2022. 3. 8.,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lelemjh&logNo=221391686370).

10) 여기에 관한 논의는 신정훈, 「모방과 필연: 1950-60년대 한국 미술비평의 쟁점」, 『미술사와 시각문화』, 19, 2017에 나와 있다.

11) 신세대의 경쟁적 조건에 관한 나아간 논의는 나의 글 「신세대 담론의 작은 역사: 2013-2016」를 참고할 것.

12) 테어도어 아도르노는 미술관의 관심이 현재의 필요보다 과거로만 향한다는 의미에서 심지어 묘지라고 부른바 있다. Theodor W. Adorno, “Valery Proust Museum,” Prisms, trans. Samuel and Shierry Weber (London: Neville Spearman, 1967), p. 175; 일제시대의 <<조선미술전람회>>와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은 결과적으로 뛰어난 하나의 기준을 국가가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로 아카데믹하다. <<국전>>의 아카데미즘에 관해서는 권영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상 아카데미즘」, 『한국근현대미술사학』, 35, 2018, 특히 pp. 170-171를 볼 것.

13) 더글라스 크림프, 「미술관의 폐허 위에서」,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윤난지 편역, (눈빛, 1988), 286쪽.

14) 위의 책, 같은 쪽.

프로젝트해시태그2021 더덕어몽어스 카탈로그를 위해 씀 

2022.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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