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9일 목요일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리뷰

 http://homopop.org/log/?p=1923

첨엔 격하게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으나, 서동진은 자신이 말하는 리얼리즘을 좀 더 정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아마 서동진은 동시대 리얼리티를 재현하는/객관화하는 작업을 리얼리즘이라고 부르고 싶은 듯하다. 그러면 동시대 리얼리티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정의가 빠지는 대신 주관적 태세를 취하는 구상회화를 탓하고 있다.

하나 의문인 것은, 그림은 화가가 주관적으로 파악한 세계가 객관화된 '대상'이 아닌가, 하는 것.

또 하나, 객관화된 대상이 서동진의 말처럼 '아직' 아무 것도 재현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무언가가 재현된 결과라면, 그것이 재현하고 있는 무엇을 두고 이것이 리얼리티다 아니다 하는 걸 어떻게 판단 할 것이냐, 하는 것.

두 번째를 조금 더 부연하자면, 민중을 그리면 리얼하고 부르주아를 그리면 안 리얼하냐, 부르주아를 비판하면 리얼이고 부르주아 문화에 매혹되면 안 리얼린가, 텅 빈 공간을 재현하면 안 리얼이고 구체적인 형상을 재현하면 리얼이냐..? 추상은 안 리얼하고 구상은 그 자체로 리얼한가? 회화는 어떤 점에 리얼한가...?

애휴..모르겠다.. 할 포스터는 실재의 귀환에서 맥락으로만 워홀을 설명하는 크로우와 무맥락으로 워홀을 설명하는 바르트 둘 다를 안 취하거나 취하는 방법으로 트라우마적 리얼리즘을 들고 나왔다. 다시 풀자면 크로우는 워홀의 그림이 죽음을 지시하고 있다고 보았고, 바르트는 무의미가 부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같은 그림을 보는 관점도 이렇게 바르트, 크로우, 포스터마다 다를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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