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제로 하나비평상에 지원하면 정말 웃기겠네.
2023년 5월 4일 목요일
미술관, 현재주의, 인클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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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일 화요일
바나나남 at 리움
바나나남 사건은 독창성을 따른다기보다 참조성을 따랐음. 원본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킨다고 보기도 힘듦. 이런 것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 그러기엔 곤란한 점이 있음.
먼저 이 학생은 예술가가 아니다. 다음으로, 이 학생에게 예술계란 맥락이 없다. 두 개는 이어져 있다. 예술가만 퍼포먼스를 할 수 있냐고? 그런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예술가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하느냐 아니냐는 현대미술에서 생각보다 중요하다. 현대미술은 뒤샹 이후 맥락을 뒤트는 것으로부터 파격적으로 변했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인지는 맥락 안에서 그 정체성을 가지고 노는 단초가 됨. 바로 카텔란처럼..
아무튼 이 학생은 아직 학생이고 예술가의 정체성보다 스스로가 더 내세우는 건 '서울대'와 '미학과'다. 내게 이 단어는 예술계에 보내는 시그널처럼 보이지 않는다. 비예술계, 서울대와 미학과가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곳이라는 게 합당해 보인다. (내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서울대와 미학과는 내가 이런 행위에 관심을 두는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 보증수표가 되기는 함..) 어마어마한 미디어 노출을 감당하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의 서울대생'이 아무 생각 없이 관종짓을 즐기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감행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상정하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무언가 얻고자 하는 바가 있다. 그걸 위해서 어떤 예술 비스무레하게 보이는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럼 예술 아니면 이 학생은 뭘 했냐? 내가 보기엔 틱톡에서 볼 수 있는 무슨무슨 챌린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챌린지는 무언가 오리지널한 걸 창조하는 그런 게 아니다. 이미 있는 유행하는 걸 나도 한 번 해본다는 애교섞인 도전이다. 그런 동참 행위를 통해 유행의 커뮤니티에 나도 속하게 된다. 그 기대 효과는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것이다. 포퓰레이션은 소박하겐 즐거움의 소재가 되고, 좀 더 야심차겐 다른 목적을 위한 어떤 종류의 지렛대로 활용된다. 무슨무슨 챌린지는 대중이 유행하는 컨텐츠를 수용하는 하나의 일반화된 방식이다. 그렇다면 바나나남이 한 것은 창작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감상이다. -> 창작의 영역인 예술가나 퍼포먼스로 보기에 적당하지 않음
커뮤니티
애초에 이 작업은 글로벌 예술계란 커뮤니티에서 작동한다. 카텔란은 워홀의 블링블링 실크스크린 바나나를 참조해 썩게 만들었으며, 바나나가 썩기 전에 먹어치운 데이비드 다투나 역시 뒤집기를 한 번 더 뒤집은 것과 같다. 모두 예술계 안의 맥락 뒤집기 씨름 한판이다.
그럼 바나나남은 국제예술사회의 커뮤니티에 참가하기 위해서 이 챌린지를 감행했을까? 그건 모순이다. 만약 국제예술사회의 커뮤니티에 참가하기 위해선 창작이란 통행료가 필요한데, 이 친구가 한 건 챌린지이기 떄문에.
사실 리움 미술관의 카텔란 전시는 글로벌 예술계에서 카텔란 작업이 작동하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다카시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봤듯이, 미술관 방문과 유명 미술 작품 감상은 예술계에서 보는 중요성의 맥락과 거리가 있다. 여기서 미술관은 미술품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핫한 장소, 사진찍기 좋은 장소다. 남들이 다 가는 곳에 나도 가는 것이고 남들이 다 같이 찍는 그 장소에 가서 나도 찍는다.
바나나남이 달랐던 건 글로벌 예술계에서 일반화된 밈이지만 한국에 아직 도입되지 못한 것을 제일 먼저 한 것이다. 말하자면 해외 유행하는 걸 한국에 제일 먼저 도입하는...
2023년 5월 1일 월요일
Hito Steyerl, Mean Images, in NLR 140/141, 2023
2023년 4월 27일 목요일
광주비엔날레 황금비둘기상에 생각 한 스푼
나는 황금비둘기상인지 박서보상인지가 광주비엔날레에 만들어지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박서보 미술상이 만들어지면 대대손손 박서보가 주는 상을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 중 누군가는 받아야할 것이다. 물론 자신도 재단을 가지고 있기에 사실 재단에서 상을 주면 된다. 근데 광주비엔날레란 권위를 입혔다. 그런데 그뿐이다. 그게 대수인가. 광주비엔날레가 뭐라고 대체. 이제 권위가 있는 행사인 게 맞긴 한가. 문제는 광주비엔날레가 광주사태에 대한 전격적인 보상 차원에서 생긴 기금과 제도란 사실이다. 광주비엔날레는 광주민주화항쟁 정신을 기리고 현재화하는 행사여야 한다는 것이 설립 취지다. 이 말에 따르면 광주비엔날레는 추모제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아무튼 박서보 미술상을 폐지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말은 1. 박서보가 박정희정권의 부역자이자 수혜자이다. 2. 박서보의 작품은 모더니즘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미학을 담는다. 1에서 부역자는 민족기록화로, 수혜자는 화단의 권력자로 오랫동안 군림했다는 사실이 증거한다. 2는 머랄까 주관적 미학적 견해일지도 모르지만 미술사학계에서 논의됬던 바는 어느 정도 사실성을 보증하기도 함. 1은 사람에 대한 평가. 2는 작품에 대한 평가. 나는 1보단 2가 맘에 든다. 난 니가 얍삽해서 싫어보단 너의 미술/미학이 구리기 때문에 인정 못하겠다가 뭔가 예술가 답지 않은가!
아무튼 386(?) 586(?) 뭐라고 불러야 할지 헷갈리는 이 집단이 특히 날뛰고 있는 상황을 나는 이해못하겠는데 존경하는 백모 샘한테 최근에 듣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어느정도 이해했던 포인트는 바로 이것: 박서보는 80년대 홍대교수. 당시 급진적인 민중미술 활동은 홍대에서 나왔는데 학교에서 민중미술 냄새만 풍기면 못그리게 하고 혼내고 그랬다고 함. 나도 사실 초딩때 별 이유없이 가혹하게 빠따 때린 선생이 아직도 생각나고 증오스럽다. 뭐 그런 느낌정도로 공감.
존경하는 백샘에게 내가 반론했듯이, 난 별로 공감가지 않는 사안이다. 광주비엔날레가 한 번도 나는 광주정신을 육화하는 행사라고 생각해본적이 없기 때문. 국제 비엔날레 글로벌 미술에 대한 무작정 판타지로 막무가내 돌진하는, 해외작가 큐레이터 데려와서 의미없이 돈쓰고 큐레이터 파워만 키워준.. 내가 봤던 풍경은 그런 거. 광주정신은 항상 5월이 어쩌고 판화가나 한명씩 데려와서 구색맞춰준 것이 전부. 하지만 초창기엔 좀 달랐나본데, 아바나 비엔날레가 모델이었다고. 그렇게 작정하고 대규모예산이 들어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 이제서야 우리가 놀 판이 생기는구나! 아시아쪽에서 그래서 엄청 주목했었다고. 그래서 도와주기도 하고. 이용우 이영철 이런 사람들이 이런 기획을 말아먹었다고. 애휴..할말하안
그니까 박서보 미술상 이전에 광주비엔날레는 이미 뭔가 잘못되어 있다. 박서보 미술상을 비판한다는 건 이야기를 모두 끄집어 올려야한다는 것.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
광주비엔날레 설립 취지와 확장에 관해선 권근영의 논문이 정리하고 있음: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343784
위키피디아 한국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음. "'2년마다 열리는 국제현대미술제’인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1995년, 광복 50주년과‘미술의 해’를 기념하고 한국 미술문화를 새롭게 도약시키는 한편 광주의 문화예술 전통과 5ㆍ18광주민중항쟁 이후 국제사회 속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광주 민주정신을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창설되었다. 창설 취지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의 민주적 시민정신과 예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건강한 민족정신을 존중하며 지구촌시대 세계화의 일원으로 문화생산의 중심축” 으로서 역할을 모색해 왔다."
https://ko.wikipedia.org/wiki/광주_비엔날레
위키피디아 영문판엔 거의 내용이 없음.
https://www.gwangjubiennale.org/en/foundationCH/greeting.do
2023년 4월 25일 화요일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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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이노 거리에서 오물 수거 리어카를 끌고가는 청소부의 모습. 60~70년대엔 히라노가와에 떠다니는 오물을 오사카 시당국이 제대로 수거하지 않아 동포들이 직접 청소부에 의뢰해 오물을 치우는 작업을 맡겨야했다고 전해진다. ⓒ안해룡 작가 제공 출처 : 허프포스트코리아(https://www.huffingtonpost.kr) |
D. Cuong O’Neill, Ecomedia in the Wild: Camera Traps, Geiger Counters, and Radioactive Boars, (2023) in Critical Inquiry
pp. 337-345.
카메라 트랩: 쉽게 설치할 수 있는 카메라. 요즘은 에이아이가 무슨 동물인지, 개체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찍힌 이미지를 다 분석해서 데이터화 해 줌. 이것 때문에 자연 다큐멘터리의 새바람이 불고 있다고.
1. 카메라 트랩으로 봤더니 후쿠시마에 다양한 동물과 식생이 번성하고 있음.
2. 방사능수치는 여전히 인간에게 위험. 하지만 카메라 트랩은 엄청난 이미지수를 낭만화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마치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원시적인 청정한 자연을 보여주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음. 봉사활동을 독려하는 이미지가 될 수 있음.
3. 카메라 트랩은 방사성 수치를 분석하는 미시 단위가 아니라 이미지라는 고레벨의 접근
4. 데이터 분석이 관건. 모든 것이 추상화되고 관리됨.(찍힌 이미지가 너무 많기 떄문에)
5. 카메라 트랩은 인간이 통제하지만 그 상호작용 회로를 비인간에게 열어주면 어떻게 될까?
6. 동물이 카메라를 건드리고 무의식적으로 셀피를 찍을 수도 있음
7. 흔들리고 쓸모없는 이미지(bycatch)는 자동으로 카메라 트랩이 지우는 데, 이게 중요함. 바이캐치는 매끈하게 보여주는 이미지가 아니라 야생동물이 struggle하고 있단 증거. 바이케치에는 미확인된 종이나 그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
"These scenarios of comaking, culled from the imaginary of the bycatch, transform the camera trap into an index of interactions in which life-forms move in slippage with relation to media forms, a blurring of movement and enclosures that exceeds the human intention and algorithmic intelligence of the camera’s design. Rather than regarding sensor data as merely a technological effect, what the bycatch reveals is the intense symbiosis of life-forms and forms of media. These close encounters reframe the camera trap not only as an object with material dimensions but also as an emerging assemblage alighted with possibilities that set into motion new processes that both define and trouble the design of the trap."(346)
-> 광주비엔날레에서 본 야생동물 카메라 작업이 왜 나왔나 했는데 이게 나름 이슈인가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