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9일 수요일

대통령 탄핵 결정문 노트

당시 생각했던 걸 기록 차원에서 노트한다. 청주 출장가는 길에 라디오로 탄핵 결정문을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런 남의 일로 눈물이 난 게 10년도 더 됐나? 아무튼 내가 생각해도 신기해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내 마음이 움직였던 건 탄핵되었다는 사실 자체 보다는 문형배 재판관이 읽어 내려가는 결정문 때문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많이 지적했다시피) 가장 큰 이유는 그게 매우 쉬워서 귀에 쏙쏙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감동적일 일인가? 나는 사실 헌재가 기가 막힌 법논리를 구사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여러 말도 안 되는 기각 사유들이 나돌고 있었고, 상식적인 근거는 전혀 힘을 쓸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논리는 뭔가 결함이 있어. 그래서 다른 더욱 정확하고 무결한 논리가 어딘가 있을 거야.

그런데 그냥 우리가 알던 그대로가 탄핵의 이유가 되었다. 여기에서 맥이 빠졌달까. 그래 내가, 우리가 알던 그 이유가 당연히 탄핵 사유가 맞아야 하는데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왜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까? 바이든 날리면을 사는 시대를 너무 오래 살았다.

2025년 3월 13일 목요일

소진된 인간

[#밥친구] 사랑한다는 이유로 과잉보호하는 집착 아빠 #이창훈 |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54 회 - YouTube

이 영상을 보면서 우리나라 문화적 제도, 특히 진보 계열의 입안자를 떠올리게 된다--여기에는 아르코의 포괄적인 예술인 지원을 포함해, 예술인복지재단 등의 여러 사업부터 시작해 사루비아다방이나 신사옥 같은 미대생의 '대안적 지원'을 기획하는 작은 공간도 포함된다. 점점 더 생각이 정리되어가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나라에 정말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건 그런 후보군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재능을 사회가 애초에 너무 빨리 소진해버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대충 요약된 내용만 들어봤지 원문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들뢰즈는 소진을 그렇게까지 최악의 상황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그가 근본적으로 철저한 낙관론자, 가능성에 대한 맹신론자여서 그런 것 같다. 오늘 같은 시대에 낙관론자가 되는 것은 죽었다 다시 태어난다는(생명의 온/오프) 생각보다 하기 힘들다.

2025년 3월 11일 화요일

설 익은 음식 먹기

국내산 써야 하는 '백종원 된장' 알고보니…또 악재 터졌다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걸 보면 다 같은 패턴이다. 미술계에서 신진이 과도한 주목을 받고 그 대가로 온갖 결점까지 증폭되며 자리를 떠난다는 '공식'은 요식업계 스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듯하다. 아무리 맛있는 품종의 과일이라도 설 익으면 쓰다. 처음에는 쓴지도 모르고 맛있다고 베어 먹는다. 그러다 이내 쓰다고 뱉는다. 품종은 폐기된다. 백종원의 사업 확장 욕심은 오로지 개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백종원이 애초에 그렇게까지 주목 받지 않았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좀 더 실력을 키울 시간을 벌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너무나 빨리 뜨고 너무나 빨리 소진된다. 모든 게 백종원 본인의 탓일까? 왜 우리나라는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 같은 정말 위대한 개인이 나오지 않을까?

번역의 쓸모


피에르 조리스라는 시인 겸 번역가가 쓴 번역에 대한 단상이다. 최근으로 올 수록 나는 점점 더 해외 최신 경향을 아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유는 한국에서는 그동안 외부 번역이 내부 원전을 항상 압도적으로 이겨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리스의 글은 멋지지 않은가!

"왜냐하면 우리가 충분히 많은 미국 시민들로 하여금 타자의, 타자의 시의, 모든 타자의 언어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만들지 못한다면 영국계 미국인의 추함, 탐욕, 기본적인 기독교 파시즘이 한데 뭉친 덩어리가 계속해서 백 군데 바그다드의 사람들, 도서관들, 집들, 박물관들을 날려버릴 터이기 때문이다."

2025년 3월 5일 수요일

미키 17

미키 17에서 가장 설명이 안 되는 지점은 사채빚을 피해 익스펜더블을 신청할 정도로 생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미키, 그러니까 미키1이 최초에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였느냐. 우주선이 타기 전에 무언가 훈련을 받는 장면이 짧게 휘리릭 나오고 마지막에 권총자살의 강요를 받는다. 단 한번. 하지만 자살하지 못한다. 중간에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나온다. 설명해주는 여자가 미키1과 이후 미키 시리즈는 모두 같은 거라고. 하지만 미키는 같지 않다고 대답했다. 미키는 정체성을 개체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나타나는 장면. 그러니까 미키는 애초에 미키 시리즈를 통해 생이 이어진다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혹은 못한) 사람 같은데 반대로 극중에서는 죽고 부활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좀 이해가 안 간다는.

2025년 2월 26일 수요일

선동적인 이미지

국민의 힘 SNS에 이재명 눈찢 사진이 올라왔나보다. 이런 선동적인 이미지의 생산과 순환을 오늘날 막을 수 없다--더군다나 이미지는 언제나 정동, 선동적이다. 오늘날 이미지의 생산을 좋든 싫든 금지할 길이 없으며, 금지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 미디어생태계의 다극성 전체를 사전에 포착하고 검열할 수 있는 감시 기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특정한 목적으로 특정한 이미지의 제한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그 자체가 자유에 대한 보수적인 견해에 기반한다. 생각해보면 이미지 자체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그냥 감각적인 무엇, 객체일 뿐이다. 여기서 당연하게도 중요한건 객체와 관계 맺는 주체다. 무언가 이미지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주체의 몫이다. 이미지 리터러시라고 하든 비평이라고 하든 그러한 능력이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긴급히 요구되는 바이다.

아이돌 산업

'SM 떠난' 이수만, 칼 제대로 갈았다..'전쟁 임박'

전쟁.. 연예계 사업이란 게 다 인신매매단 같은데 이게 마치 엄연한 '공식문화'인 것처럼 이해된지 오래다. 매우 비판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