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영화 <위기의 예감>, 키노 1997년 4월호 p.141

예술은 정치경제적 구조의 변혁을 반영하고, 때로는 예언한다. 전쟁과 학살의 출발점에는 뿌리 깊은 역사가 가로놓여 있고, 예술은 암울한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 사이를 방황하며 동시에 예감한다. 티토가 사망하기 1년 전인 80년대 초반, 탄광 지역을 기반으로 출현한 인더스트리얼 록 그룹 라이바하(Laibach)는 예술과 정치 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의 한 가운데 서있다.파시스트의 이미지들을 차용하면서 파문을 일으킨 이 그룹의 뒤를 이어 회화 그룹 어윈(Ir-win), 연극 그룹 적색 파일럿(Red Pilot) 등이 전격적인 합류를 선언하면서 가장 야심적이고 파격적인 예술 집단 NSK(Neue Slowenische Kunst, 새로운 슬로베니아 예술)가 결성된다. NSK는 유고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슬로베니아 내에서 또 다른 형태의 독립을 선언한다. NSK는 스스로를, 영토를 보유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국가로 정립하고, 모스크바, 베를린, 플로렌스, 겐트 등에 대사관과 영사관을 설립하고 여권을 발행하기까지 한다.

<위기의 예감>은 이 그룹의 활동과 그 활동이 촉발한 논쟁의 중심으로 진입해서, 분할된 유고 사회를 앞서간 문화적 징후를 새롭게 포착하려 한다. 미국 대사관 소속 외교관의 아들로 모스크바, 베오그 라드등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감독 마이클 벤슨에게 있어서 전체주의적인 공산 정권 하에 성장한 동유럽 세대들이 겪는 외상과 갈등은 애당초 원죄와도 같은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뉴욕 영화학교(NYU)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그에게 영화 매체는 바로 그러한 현상을 예술과 이데올로기의 상호 관계에서 포착해내는 데 가장 적절한 도구였다.

“영화의 역할이 복합적인 이슈를 단순화시키는 역할에 한정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섬세하게 주의를 환기시 키며 심오한 접근을 하는 언어로서 결코 문 학에 뒤처져 있을 필요가 없다.”

그가 동원한 영화적 방법론은 인터뷰, 재연, 자료화면, 애니메이션, 미니어처 등 혼돈의 시대만큼 복합적인 기법의 재조직이 다. 슬로베니아의 근현대사를 복원해냄과 동시에, 모스크바, 뉴욕, 베오그라드, 아테 네 등을 순회하는 NSK의 콘서트, 인터뷰,퍼포먼스, 전시회 등이 조명되고, 지극히 단조로운 드럼, 불타는 십자가, 종교적이고 국수주의적인 표상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라이바하는 그러한 상징들을 아방가르드(전위)와 결합시키고, 스스로를 레트로가드(retro-garde, 후위)로 지칭하며 과거의 공포는 단순히 씻겨질 수 없는 것이며, 그것과 대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의 붕괴는 더 이상 고전적 자본 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비판적인 주장과는 또 다르게, 이 모든 것은 한편으로는 전체주의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의식이 포스트모더니즘과 조우한 의도적인 결과물들로도 평가된다. 그 어떤 경우이든 그들에게는 해답이 없다. 다만 발칸의 상황을 먼 나라의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발상에 대한 마지막 경고가 있을 뿐이다.“파시즘은 언제라도 발화할 수 있다.”(라이바하)

지극히 철학적인 나레이션과 다양한 형식의 시도로 자기 모순적인 활동을 담아낸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날카롭게 대립 된다.

“정치가 모든 예술적 창조에 개입해오는 과정을 포스트 모던하면서, 의사(quasi) 고다르적인 감수성으로 접근한다.... 역사적 사건과 그것의 신화적 의미를 결합시킨 수작”「( 버라이 어티」, 1996.10.8)

“질문이 있기 전에 답변이 앞서 나오고, 이미 던져진 질문은 답변을 얻지 못한다.... 작품의 급진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로서는 단조롭다. 작가는 주인공들의 양면적인 매력을 불신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표현 기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독스」, 1996.1)

논란을 통해서 이미 예측할 수 있듯이, 역사 다큐멘터리와 예술적 에세이의 절충을 통한 결과물인 <위기의 예감>은 광범 위한 맥락을 짚어내는 과정에서 때때로 경로를 이탈한다. 그러나 이것은 작품의 한계라기 보다는 새로운 증후군을 해석해 낼 수 없는 시대정신의 한계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슬로베니아의 백과사전적 지식인이자 포스트 라캉주의자인 슬라보치 지젝의 언급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라이바하의 독창성은 체제가 스스로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시스템을 성찰하기를 제안한 것일 뿐이다.”

라이바하에 대한 마이클 벤슨의 최종적인 결론은 없다. 다만 세기말 의 참극을 낳은 발칸의 사회심리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만큼은 일관되게 혼돈의 이미지 사이를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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