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8일 토요일

언어의 정원 (2013) / 중2병



제목: 언어의 정원 (원제: 言の葉の庭)
감독: 신카이 마코토
분량: 46분
줄거리: 천재(?)라고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의 중장편 애니메이션. 작화 완성도는 언제나 높은 편. 중2병+선생 제자 러브스토리+성장드라마. 방황 중인 단아한 차림의 20대 중반 여성과 꿈꾸는 소년이 빗 속의 정원에서 우연히 만났다. 비가 와서 가야할 곳에 땡땡이를 친 그 둘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각자의 일에 몰두한다. 소년은 구두 스케치, 여성은 고전문학 독서. 비가 오는 날이면 둘은 그 장소에서 만나 각자의 일을 하면서 때때로 수다를 떨었다. 소년은 구두장인이 되고 싶다느니 하는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도 털어놓을 만큼 여성에게 친밀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 소년은 우연히 여인의 정체가 자신의 고등학교 교사였다는 걸 알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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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러고보면 고딩 때까지 뭘 하고 싶다, 뭐가 되고 싶다란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특히 동생과 함께 이것저것 하면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감동해서 저런 작품을 만들겠다거나, 감독이 되고 싶다거나..아무튼 그런 식이었다. 현실보다 꿈이 중요했고,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가슴을 무척이나 졸였다. 그땐 가진 것이 없었고, 반대로 앞으로 가질 것이 많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이를 먹었지.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고(?), 꿈 꿀 수있는 범위도 좁아졌고.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라... 현재 나에겐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렇진 않겠지. 그 구속은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니까. 그리고 이미 있는 사회 규범을 따르고 싶기 때문에 스스로를 구속하는 거겠지.

중2병은 보통 성장하지 않은 사람의 설익은 생각을 일컫는다. 뭐, 정의하긴 복잡하겠지만, 헤겔식으론 즉자적 상태라고 해야하나. 이들은 대체로 자기-현실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스스로에게 푹 빠져서,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거나, 혹은 자신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가장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거나... 한달까. 그러니까 한 마디로 주인공의식이랄까. 이런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점점 커가면서 세상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마련인데, 아직도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중2병 환자는.

중2병 환자라는 말 자체는 타인이 어떤 사람을 보고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병이라는 말이 그렇듯, 부정적이고 폄하하는 뉘앙스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먼 옛날 포기한 꿈을 상대방이 여전히 꾸고 있다는 것에 못마땅함을 느끼고, 거기에 병명을 붙였을지도 모른다. 사회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너는 더 성장해야 한다고, 아무 것도 모른다고. 꿈의 의미는 허황됨과 같다고.

그 진단서를 최초로 끊어주는 사람은 가족일 것이다. 그리고 친구일 것이고, 동료일 것이고...궁극적으론 사회가 된다. 가까운 사람부터 먼 사람 순으로 차례차례 판결을 내려 준다. 그리고 점점 그 중2병 환자는 비정상이 되어간다. 그러면 중2병 환자가 된 그/녀는 아마 점점 더 그들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가족을, 친구를, 동료를...

꿈꾸는 자는 항상 지금/여기를 볼 수 없다. 더 나은 무언가를 손에 쥐고 싶은 열망 때문에. 다른 이들 입장에서 중2병 환자의 꿈은 존재 자체가 불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옳다고 믿고 유지하고자 했던 현실을 중2병 환자는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의 현실은 중2병 환자의 비현실이며, 중2병 환자의 현실은 다른 이들의 비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2병 환자의 꿈은 그들에게 병으로 치부된다. 반대로 중2병 환자에게 그들의 현실은 무가치하다. 이들은 서로 다른 level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라고 해보자. 이상주의자는 현실을 변화시키려고 하고, 현실주의자는 현실을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둘 중 뭐가 낫냐고 한다면 답이 안나온다. 애초에 그런 구분이 잘못됐을지도 모르겠고. 이상주의자에게 이상은 극도의 현실이고, 현실주의자의 현실은 극도의 이상이니까. 오히려 그런 구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 사이는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 안물안궁인 두 범주라면 갈등조차 일어나지 않겠지.

결론. 오늘날 꿈을 꾸는 자가 처한 운명은, 사회적 편견과 싸우면서도 그 스스로를 현실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그러니까 현실주의자들과 어울리며 살아가야만 한다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극도로 주관화된, 즉자적인 중2병을 지지해주고 싶진 않다. 내 쪽이라면 객관화된 주관주의랄까. 그러니까 현실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중2병이랄까. 다른 말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실천적으로 노력하기.

어쩌면 꿈이 이뤄지느냐 이뤄지지 않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그 노력과 땀만큼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도 없지 않은가. 그걸 청춘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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