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7일 목요일

Anton Vidokle, Art Without Artists? (2010) published on e-flux

(source: http://www.e-flux.com/journal/art-without-artists/)

이 글은 예술가가 아닌 것들이 예술가 연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다. 조금 원색적인 표현이 많고 근거는 불충분하다고 해도 어떤 시사점은 분명히 있다.

작년 나는 “큐레이토리얼 액티비즘”이란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컨퍼런스의 발제자로 초대받은 적이 있다. 참여자 중 한 사람은 액티비즘적 실천으로서 뉴욕 예술 기관의 봉급쟁이 디렉터쉽에 관해서 발언했다. 내가 데모를 위해 페이를 지급받는 사람들은 액티비스트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고용된 신체라고 지적했을 때, 관객은 보기에도 불편해 보였다. 그러나 내 요점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왜 오늘날 도전적으로 일하고, 그것을 잘 수행하고, 진정한 헌신과 참여 속에서, 그것에 자존감을 가지는 것이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점에 있었다. 액티비즘이나 문화적 프로덕션, 예술의 프로덕션 따위로 그것을 제시함으로써 그것의 지위를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말이다.

이런 상황이다. 비평가의 권위가 실추하면서 큐레이터의 권위가 증가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가 보기엔 큐레이터가 비평가로서의 역할까지 겸하며, 더군다나 예술가의 역할까지 탐내고 있다. 얀스 호프먼 등 유럽권 큐레이터에 의해 실천된 뉴인스티튜셔널리즘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걸 비판하고 싶은데, 이때 전제사항은 이렇다: '큐레이토리얼 프랙티스'라고 하는 건 예술작업의 부수적인 결과물이다. 즉 큐레이토리얼은 예술작업의 필연적인 부산물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의 노동과 저작권을 빼앗거나 최소한 공유하고자 함으로써 예술에서 예술가와 작업을 소외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꼭 그만큼 그 자체가 예술 제도 내에서 권력화된다. 구체적으로 쓰고있진 않지만 그는 이런 현상이 포디즘에서 포스트-포디즘으로의 이행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하는 듯하다.

그는 대안으로써 큐레이터로서의 예술가 상을 제시한다. 예술의 공간을 확장하고 사회적 참여의 공간을 열어 젖힌다는 의미에서...주로 예를 드는 예술가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내가 봤을 때 이 글에서 문제점은 이런 것이다. 그는 일종의 소명의식을 주장하고 있다. 예술가는 예술가 답게, 큐레이터는 큐레이터 답게라는. 그에겐 주어진 예술가상, 큐레이터상이란 것이 분명하게 있는듯 보인다. 그게 언제쩍 시절인가 보면, 대략 20세기 초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적 권력을 막강하게 쥐면서 예술로 혁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믿었던 예술가가 살던 시절 말이다. 그리고 큐레이터가 단순 전시 행정가로서 일했던 시절 말이다.

그냥 이 상태에 머물렀으면 괜찮을 뻔 했는데, 그는 티라바니자를 옹호하면서, 예술의 공간을 일상으로, 대중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반드시 예술/가로부터 나와야만 한다. 큐레이터로부터가 아니라.

나에겐 예술가의 사회적 형식과 실천과 관련된 참여가 평범한 예술의 공간을 열어 젖히고 에이전시의 증가를 보증하는 예술의 언어로 고려되는 반면, 그들 자신의 실천을 예술적으로 재맥락화시키려는 큐레이토리얼과 제도적 시도는 그 반대의 효과를 낸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건 모순적이다. 티라바니자의 퍼포먼스가 반드시 예술로부터 나왔다고 보증하는 것은 티라바니자란 예술가 주체를 인증하는 예술제도 밖에 없다. (그는 그렇다고 믿는 것 같다.) 즉슨, 그는 (아마도 20세기 버전일) 예술의 제도는 인정하면서, 그것의 최신 버전의 (큐레이터의 프로덕션과 일상의 창조적 활동을 포함하는) 확장된 제도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술의 제도를 확장하는(예술의 공간을 열어 젖히는) 작업이 좋은 작업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는 결국 그가 비판했던 큐레이팅의 세계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티라바니자의 퍼포먼스는 그 자체가 큐레이팅의 산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복잡한데, 이 말은 결국 예술가의 특권도 챙기고 싶고 사회적 차원의 급진성도 챙기고 싶은 것이다. 큐레이터 사정은 너네들 문제니까 고려하지 않겠단 태도 또한 그런 혐의를 가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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