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4일 목요일

고종석 선생 Vs. 노정태씨

고종석 선생과 노정태씨 둘 사이 세계관의 차이가 얼마나 다른지 확인 가능한 두 칼럼이다. 고종석 선생은 에마 왓슨이 기본적으로 백인 중산층 여성-권력자이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으며, 유엔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꽤나 심드렁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노정태씨는 에마 왓슨은 여전히 가부장제에서 피해를 받고 있는 '여성' 일반 중 한 명의 대표자이며 유엔이 지지하는 페미니즘 운동 또한 세상을 바꾸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고종석 선생이 한 마디 하고자 했던 대상은 그래서, 쓰여진 그대로 (그의 생각에) 제3세계와 무관하게 진행될 우려를 가지고 있는 국제(?) 페미니즘 운동의 실상이지만, 노정태씨는 결국 한국 여성/제3세계 페미니스트에 그 비판이 겨누어질 수밖에 없는 바로 그 문맥에서 심한 불편함을 느꼈으며, 나아가 고종석씨의 위치, 즉 실제로 하는 건 없이 훈수만 두는 "이데올로기적 후원자"(벤야민)의 위치를 비판했다. 그리곤 고종석 같은 남성 지식인 모델이 현실 페미니즘 운동의 공적임을 천명한다.

고종석 선생을 지지하자면, 글로벌 사회에서 한국 남성 그것도 늙은 남성의 계급적 위치는 젊은 백인 여성 셀레브리티와 비교했을 때 그리 강자의 위치가 아니다. 노정태씨는 우리가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 있으며, 마치 고종석의 주체를 백인 남성 주체와 거의 동급이라도 된 듯 생각하고 있으나 실상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것이 고종석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는 그 자신의 위치인 것으로 보인다. 제3세계 국가의 남성이 '자신의 목소리(한글)'로 그녀에게 발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가 도달할 가능성이 제로에 육박하지 않는가. 에마 왓슨이 이 편지를 스스로 찾아서 번역해서 읽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고종석이 봤고 우리가 본 왓슨의 연설에 대해 지금도 우리가 이렇게 침이 마르도록 뭔가를 말하려고 애쓰고 있는 동안에도 말이다. 노정태씨는 이 대목에서 이 글의 독자가 왓슨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정말로 고종석 선생이 왓슨에게 편지를 썼다곤 왜 생각하지 않을까. 그 불가능성에 대한 전제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닌게 아니라 고종석 선생의 글은 어떤 강력한 시선에 사로잡혀있다. '당신도 익히 아시듯이...'식의 문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글이 뭐랄까, 좀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 한글로 쓰여진 편지글은 그런 글로벌 사회에서의 허마이어니와 JS의 계급적 위치 같은 걸 어쩔 수 없이 드러내는 거 아닌가 싶다. 이 위치는 어떻게 결정되어 있을까? 고종석 선생 그 자신이 자신의 글에서 가감없이 노출하고 있는 그 자신의 위치는 페미니즘 이슈에서 중요하지 않은 건가? 나아가 내 개인적인 질문을 덧붙이자면 유엔은 그것을 해결할 충분한 용의가 있을까?

한편 노정태씨를 지지하자면, 고종석 선생의 글이 굉장히 형식적이란 점에서 그럴 것 같다. "서한 형식"이 문제가 된다고 말이 나왔을 때 실상 문제는 편지 그 자체라기 보다, 글 자체의 형식성에 기인하는 것 같다. 무슨 말이냐. 현실 페미니즘 운동, 특히 한국 사회에에서 이 편지는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쥐꼬리라도 붙잡고 열심히 해보려는 사람한테, 그리고 그런 움직임에 감동하고 함께 실천하려는 사람한테, 그 사람도 익히 알고 있을 문제점을 지루하게 설명한다. 그러니까 노정태씨는 글의 형식이 공히 에마 왓슨을 표적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밀하게 한국 현실 페미니스트의 사기를 꺾고 가르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점을 못 마땅해하는 것 같다. 노정태씨는 내가 보기에 굉장히 급진적이고 행동주의적이다(하지만 충분하진 않은데 실질적으로 그가 현실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조직한단 소리는 못들어봤기 때문에. 즉 그도 칼럼으로 먹고 산단 소리. 그런 점에서 실용파?). 탁상공론보단 실질적인 '효과'나 '대안'을 중요시 한다. 우리가 유엔의 문제점을 비판하거나 백인 중산층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을 비판하는 것은 쉬우나 그들을 '실질적으로' 바꾸긴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있다. 그들이 좋은 모델이 되어 우리가 그들을 따라한다면, 지금보단 더 나아질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뭐 이런 것 아닐까? 고종석씨가 다소 탁상공론에 일반론을 개진한 반면 말이다.

노정태씨가 이런 행동주의적 입장을 취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백종원 관련 칼럼에서도 백종원을 새로운 남성 페미니스트 행동가 모델로 거의 상정하고 글을 썼다. 내가 읽기엔 그랬다. 나는 노정태씨가 가진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어떤 긍정적이고 패기넘치는 생각이 좋다고 생각한다. 젊으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난 좀 애늙은이 같으니, 동의하지 않는 지점도 있다. '효과'의 주장이 반대로 '효과 없으면 닥쳐라'는 의미로 종종 사용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예컨대 그는 종종 실패하거나 효력을 못 본 운동을 두고 '이미 끝났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현실적으로 전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하고 있는 진보를 얼마나 과거로 묻어버리고 싶었을까.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을 모면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지금 한국이 헬조선이라고 해도, 미국을 모델로 삼거나 자본가를 모델로 삼거나 유엔을 모델로 삼는 것이 그리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그게 바로 지금의 헬 같은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되어 줄 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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