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1일 목요일

그레고리 베이트슨, <마음의 생태학>에서 "원시 예술의 스타일, 우아함, 그리고 정보"

물론 텔레비전의 경우 화면에 영상이 잘 나오면 기계의 많은 부품들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면서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사실이며, 의식의 '화면'에도 같은 생각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제공되는 것은 단지 모든 부품이 작동하고 있다는 매우 간접적인 보고일 뿐이다. 만약 테레비전의 진공간이 터져 고장이 나거나, 중풍으로 사람이 고장난다면 이 병으로 인한 결과는 충분히 화면이나 의식에 드러나겠지만, 진단은 역시 전문가가 해야한다.

이는 예술의 본질을 떠받치는 문제다. 찌그러지거나 불완전한 그림을 제공하는 텔레비전은 어떤 의미에서 무의식적인 병링 대한 커뮤니케이션, 즉 증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어떤 예술가들이 그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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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이 세상을 왜곡되게 보도록 만들고, 우리가 그 왜곡을 우리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이 왜곡은 흥미로울 수 있다. 취중진담. 이 또한 이;ㄴ간 자신의 일부나 진리의 일부란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낮아지거나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중독은 기술을 증가시키지 않으며, 기껏해야 이전에 습득된 기술을 발휘하게 해줄 뿐이다.
기술 없이는 예술도 없다.(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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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행위나 작품(역시 예술이라 불리는)은 거의 예외 없이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기술을 필요로 하거나 나타내며, 중복이나 패턴을 내포한다.
그러나 두 가지 특징은 분리될 수 없다. 기술이 먼저 확보되고 그 다음 기술이 중목을 조정하는 것이다.(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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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요약하면, 내가 볼 때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고요와 소란의 대비가 섞여 짜인 것이다. 이와 유사한 대비나 결합이 우리가 보았던 잎사귀 그림에도 표현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또한 넘쳐흐르는 자유가 명확하게 뒤덮여 있었다.
이러한 결론을 통해서, 이제 나는 앞에서 제기된 '체계적인 지혜라는 방향에서, 이러한 예술 작품의 창작이나 감상으로 어떤 종류의 교정이 얻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최종적인 분석에서, 그 그림은 인간의 목적으로 소요나 고요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저속한 잘못이 될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감상하는 것은 이러한 잘못이 드러나는 경험을 제공할 것이 틀림없다. 그림의 통일성과 조화는 그 대비되는 극들이 서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극들 중에서 어느 하나를 배제한 선택을 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심오하고 일반적인 진리는 또한 성, 사회 조직, 죽음의 영역에서도 주장된다.(268-9)



노트:
인간성의 핵심문제는 우아함의 추구(올더스 헉슬리). 동물의 커뮤니케이션과 행동은 인간이 잃어버린 순진함과 단순성을 가지고 있다(월트 휘트먼). 인간의 기만 때문에 동물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우아함을 잃어버렸다.(235-6) 베이트슨은 동물과 신을 등치에 놓고 인간이 우아함을 결여하고 있다고 본다. 예술은 인간이 우아함을 추구하는 분야다.(236)

"어떤 문화는 이 어려운 통합에 전적인 의식이나 무의식 중 하나를 어리석게 선호함으로써 복잡성을 회피하는 부정적 접근을 조장하는 일이 있다. 그들의 예술이 '위대할' 것 같지는 않다."(236)
베이트슨은 어느 하나를 "어리석게 선호"하는 예술을 실패한 예술이라고 본다.

"나는 우아함이란 근본적으로 통합의 문제이며, 통합되어야 하는 것은 특히 한쪽 극단은 '의식'으로 부르고 다른 쪽 극단은 '무의식'으로 부르는 다양한 수준의 마음이라고 주장할 것이다."(236-7)
베이트슨은 우아함을 '통합'의 문제로 보고 있으며, 양극을 각각 의식과 무의식으로 설정한다. 그는 다양한 수준의 마음이라고 명한다.

"나는 예술 작품의 '표현'은 완전이 제쳐두고 그 속에 어떤 중요한 심리적 정보가 있는가를 ㅜ문제 삼고 있다. "스타일은 그 사람을 나타낸다"(뷔퐁). 스타일, 재료, 구성, 리듬, 기술 등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 ...
... 인지된 물체나 인간(또는 신)을 나무나 페인트로 변형시키는 코드는 예술가나 문화에 관한 정보의 근원이 된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변형의 규칙은 바로--메시지가 아닌 코드다.
...
따라서 나는 코드화된 메시지가 아니라 선택된 코드의 의미에 대해서 묻고 있다. 하지만 '의미'라는 여전히 모호한 개념부터 규정되어야 한다."(289)
베이트슨은 코드 개념을 마공식의 감각으로 쓰고 있다.


"'의미'란 다음과 같은 패러다임 내에서 패턴, 중복, 정보, '제한'과 거의 동의어로 간주될 수 있다.
...
어떠한 사건들이나 사물의 집합체(예: 음소들의 연속, 그림, 개구리, 문화)는 만약 그 집합체가 어떤 식으로든 '빗금 표시'에 의해 나누어질 수 있고, 그리서 관찰자가 단지 빗금 표시의 한쪽에 있는 것만 보아도 다른 쪽에 있는 것에 대해 무작위한 결과보다 더 잘 추측할 수 있다면 '중복'이나 '패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빗금 표시의 한쪽에 있는 것이 다른 쪽에 관한 정보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공학도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그 집합체는 '중복'을 가지고 있다. 혹은 다시 말하자면, 사이버네틱스적 관찰자의 관점에서 빗금 표시의 한쪽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릇된 추측을 제한할(즉 확률을 줄일) 것이다."(239)

"커뮤니케이션의 핵심과 존재 이유는 중복, 의미, 패턴, 예측 가능성, 정보, 그리고/혹은 '제한'에 의한 무작위성의 축소를 창조하는 것이다.
'메시지' (즉 예술 작품) 자체가 내부적으로 패턴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를 더 큰 세계의 일부--문화나 문화의 일부--로 보게끔 만드는 개념 체계를 획득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중요하다고 믿는다."(240)
세계가 패턴으로 직조되어 있다는 뜻.

마음의 지식
"(1) "새뮤얼 버틀러는 유기체가 어떤 것에 대해 더 잘 안다는 것은 자신의 지식이 되는 것에 대해 더 적게 의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지식(또는 습관--행동, 지극 혹은 사고의 습관)이 마음의 점점 더 깊은 수준으로 가라앉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선의 핵심 수련법인 이 현상은 또한 모든 예술과 기술에 관련된다.
(2) 에임스는 우리가 보고 있는 삼차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의식은 우리가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면서 사용하는 지각의 수학적 전제들과 관련된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입증했다. ...
(3) 일차적 과정으로 코드화된 은유인 꿈에 대한 프로이트 학파의 이론. 나는 스타일--짜임새, 선명한 대조 등--을 은유적 현상으로 간주할 것이며, 따라서 스타일을 일차적 과정이 지배력을 갖는 정신의 수준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4) 무의식을 억압의 과정에 의해 두렵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맡겨지는 지하실이나 찬장으로 여기는 프로이트의 관점.
전통 프로이트 학파의 이론은 꿈을 '꿈 작업'으로 생긴 이차적 산물로 가정했다.  의식적 사고에 수용될 수 없는 자료는 짐작건대 꿈꾸는 사람을 깨우지 않기 위해 일차적 과정의 은유적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래서 은유적 언어는 억압의 과정에 의해 무의식에 잡혀있는 정보의 학목들에 딱 들어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포유동물의 상호작용에 대한 대부분의 전제들을 포함해서 다른 많은 종류의 정보들이 의식의 검열에 도달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이 항목들은 원래 일차적 과정의 언어로 존재하며, 단지 '이성적' 용어로 옮기기 어렵다는 게 맞는 것 같다. ...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의식을 신비롭고, 무의식, 예를 들면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필수적이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일차적 과정의 계산 수단으로 생각한다."(244-6)

"솜씨skill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기술의 실행에 많은 무의식적 요소들이 존재함이 드러난다.
따라서 '이 메시지 자료의 어떤 구성 요소들이 예술가에 대한 어떤 상태의 무의식(또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어떤 예술 작품을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리고 이 질문은 비록 의식적이지는 않더라도, 날카로운 비평가가 언제나 묻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은 일종의 무의식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의 훈련이다. 또는,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예술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하고 좀더 완전하게 만드는 기능을 가진 일종의 놀이 행위다."(248)
-> 베이트슨에 따르면, 나는 백남준의 작업을 백남준의 (의식과) 무의식을 담은 일종의 메시지로 봐야 한다.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접촉면에 관한 메시지다."(249) 베이트슨은 기술, 솜씨에도 무의식적 요소가 있다고 본다.

"만약 예술가의 시도가 자기 작업의 무의식적인 요소들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이라면, 그것은 일종의 움직이는 계단(또는 에스컬레이터)에 타고서 자신의 위치에 관해 커뮤니케이션하려고 하지만 자신의 움직임 그 자체가 커뮤니케이션하려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함수라는 결론이 된다."(250)
-> 내용뿐 아니라 형식 자체가 메시지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매클루언의 잠언. (미디어의 이해 참고할 것.)


예술가=(프로이트적 의미에서) 꿈꾸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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