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4일 금요일

최장집, 한국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법에 관한 하나의 논평 (2010)

"한국사회의 진보적 지식인 일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주체로서 "깨어 있는 시민"을 상정하는 것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 여기서 말하는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말은, 앞장에서로버트 달이 말했던 바의 시민들이 이슈에 대한 계몽적 이해를 가져야한다는 기준과는 다르다. 로버트 달은 올바른 판단을 위해 시민이 관련 이슈에 대해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확득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의 중요성을 말했다면, 깨어 있는 시민론은 민주주의를 도덕화 하는 어떤 정형화된 이해방식 위에서 현실을 독해하는 누군가가 설정한 코드에 일단의 시민들을 부응하는 상황을 지칭하는 말이다."(103)

"이러한 민주주의관은 시민에게 크든 작든 과도한 도덕적 의무를 부과하게 된다. 그런 논리에 따르자면, 보통 시민들은 투사가 되기 전까지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 민주주의의 본질은 누군가가 민주주의는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이어야 한다라고 정의해주고 가르쳐주기 이전에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 속에서 발견되고, 진화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그의 간결한 표현을 빌리면 '인민을 위해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것이지, 인민이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슈나이더)"(104)

"한국에서의 정당은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지 못하고 권력에 의해 위로부터 창출되었다는 특징을 갖는다. 정당은 국가권력의 파생물로서(의) 만들어졌고, 현재에도 그런 식으로 나타나고 재편되고 있다. 오늘날 정치세력화의 토대는 점점 더 특정의 정부에 참여하고 지지했던 경력 내지 그로부터 만들어진 공통의 경험이 되어가고 있다. 특정 정부나 국가 권력의 수혜 범위에 포함되었던 경험이 엘리트 집단의 정치적 정체성을 규정하느 ㄴ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 이런 환경 하에서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제도권 밖의 사회 규모가 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106) - 낮은 투표율, 계급에 따라서 지지정당이 확연히 갈리고, 보수쪽이 훨씬 투표율이 높은 것에 대한 설명

"앞서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를 참여정부라고 명명하면서까지 참여의 가치를 강조했다. ... 그러나 실제로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로 강조되는 시민 개개인들이 평등한 참여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기보다, 정책결정 과정에 지식인과 전문가의 참여가 비약적으로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정책 엘리트의 광범한 출현이야말로 한국 민주화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의 하나이다."(107)

"... 정당이 아닌 '운동'이 민주주의 발전의 대안이자 희망이고 나아가서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아닌 직접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관점이 아닐 수 없다. ... 운동은 열망-실망의 사이클을 쉽게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운동은 일상적인 정치에 합당한 행동양식이 되지 못한다. 민주화 운동 시기에 볼 수 있었듯이 운동의 중심 세력은 사회경제적 삶의 책임과 무게로부터 일정하게 벗어나 있었던 대학생을 필두로 한 교육받은 도시중산층이었다. 운동이 엘리트주의적, 중산층적 급진주의나 내용을 갖게 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거의 필연적이다. ... 운동은 갈등의 강도가 비상하게 높은 조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혁명적 열정이나 급진적 정서를 동반하게 된다. ... 사적 이익을 부정시하는 경향을 만들어낸다. ... 정당의 활성화ㅎ와 그것을 매개로 한 선거참여가 중요한 이유는, 그 방법이 제대로 될 때만이 서민대중들,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쉽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108-109)

"여기에 비해 한국은 정치의 파라미터가 다층적이다. 무엇보다도 민족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권위주의적 압축성장이 가져온 모든 복합적인 갈등구조는 민주화 이후에도 저발전된 상태를 유지했던 정당체제의 협애함으로 인해 제도 내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그 필연적 결과는 강력한 운동의 간헐적인 폭발로 나타났다. 민족문제는 분단의 조건 위에서 여전히 상존하고 노동문제는 재벌기업에 개별적으로 통합되거나 국가의 억압적 정책을 통해 강압적으로 제어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가-재벌 연합이 주도하는 경제성장과 관치경제는 부의 분배구조를 압도적으로 상층편향적으로 만들면서 중산층 이하의 사회계층에 성장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양극화를 확대시키고 있다. 재벌중심 성장의 아킬레스건은 고용을 확대하지 못하는 것, 특히 대졸자-청년 실업률을 위험 수준으로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조건에서 강력한 국가 권력을 관장하면서도 허약한 견제와 균형으로 인해 대통령은 잠재적으로나 현재적으로 권위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강력한 운동의 전통이 결합되어 있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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