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6일 목요일

비평이란

한국사람들은 비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과유불급. 돼지목에 금목걸이.

단 고정 게시물

저는 실은 지금 우리가 정상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낙관하고 있습니다.
평론이란 것을 폄훼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유독 정치평론은 그것이 지니고 있거나 생산하는 가치에 비해 과잉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령 아무리 절륜한 문학평론이라도 그것이 클래식 반열에 오른 작품 자체를 뛰어넘을 순 없다는 것이 저의 고정관념입니다.
그 어떤 훌륭한 음악평론이라도 위대한 뮤지션의 음악을 흔들 순 없다는 것이 저의 편견입니다.
그 어떤 빛나는 통찰력을 가진 경제평론이라도 경제 그 자체에 영향을 주진 못 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구라도 그 평론가 혹은 우리 경제 자체를 위험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평론은 몸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대상에 대한 해석의 틀을 제공할 뿐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평론은 무엇에 대해 대신 판단해주거나 방향을 찍어줄 수 있는 영향력으로 작동하여서는 곤란하고,
그것을 소비하는 이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데 참고가 되게 하는 정도의 기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독 정치평론만 그 정도를 아득히 초월하여, 정치 그 자체를 흔들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정치 보다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정치평론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도 있습니다.
제도와 규범으로 통제할 수 있는 (혹자는 재래식이라고 말하는) 언론 보다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는 평론이나 유튜버가 더 큰 영향력과 권위를 갖는 현상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저는 이를 미디어환경의 변화로 파생된 현상이라고 봅니다.
대중이 듣고 싶은 것을 잘 만져 들려주는 기술만 있으면, 그 자체로 생산하는 가치에 비해 과잉된 영향력을 행사하고 부를 가져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유시민 작가님 말씀에 피식했던 대목이 있습니다.
‘같은 사람들이 일주일에 수십개씩 방송 돌아다니며 했던 말 또 하는 그런 비평에 뭘 들을 게 있겠어.‘
그런데 사실 (정치) 평론하는 스피커란 건 딱 그 정도 좆밥이면 되는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가져도 그저 논평하는 일을 하는 것일 뿐, 여러분들이 과하게 이입할만큼 대단한 투사나 사상가 같은 게 아닙니다.
A방송을 보지만 B방송은 보지 않는 이를 고려해, 혹은 B 방송은 보지만 A 방송은 보지 않는 이도 힘께 고려하여, 그저 한 명의 ‘직업’으로서 이 프로, 저 프로 다 나가서 정보와 해석을 늘어놓으면 되는.
그것을 시민들이 출근 준비하며 백색소음처럼 틀어둔 뉴스에서 누군지도 모를 비평가의 논쟁을 심드렁하게 듣다가 꺼버리는.
그 중에서도 ’직업윤리‘를 잘 지키면 더 많이 신뢰받아 쓰이는 다른 여느 직종처럼, 비평도 사실관계를 꼼꼼히 체크하고, 논리적 정합성을 잘 별러서 하는 이라고 평가받으면, 그가 현장에서 좀 더 많이 호출 되기도 하는.
딱 그런 정도면 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채널 몇 개가 자기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사회적 여파와 여론의 왜곡을 만들어 휘청대는 게,
그리고 그런 채널들에 유명한 비평가가 한 두 번 나가 떠들면, 설사 그것이 아무 정보값도 없는 선동적 소음인데도,
온 사회가 마치 대단히 중요한 의제라도 논하는 양 뒤덮여버리 과잉이 발생하는 게, 건강하지 못한 거죠.
30만이 구독하든 300만이 구독하든 그 콘텐츠를 마음에 들어하는 소비자들이 그 안에서 소비하고 치우면 그만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거지,
딱히 저널리즘 윤리도 지키지 않으며, 기성 언론이 하는 게이트키핑을 하지도 않고, 그들이 받는 제도적 통제의 반의 반도 받지 않으며,
어느 날 내키면 정치예능을 하고, 또 어느 날 내키면 거짓말로 진영논리에만 복무하는 선동이나 하는 종자들이 무슨 사회적으로 대단히 의미있는 토론을 주도하거나 화두를 만들어 던지는 대안 언론이라도 되는 양 지랄떠는 시대가 얼른 지나가야 한다, 이 이야깁니다. (전한길 뉴스 말한 겁니다ㅋ)
그러려면 휘청이는 정치와 비틀대는 언론이 이 현기증 나는 뉴미디어 시대에 어떤 새로운 중심을 찾아 잡으며 공동체의 신뢰자원을 회복하는 패러다임을 만들고,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겠지요.
그것이 어느 한 개인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한 명의 비평가가 중구난방 흩뿌린 자의식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며 사회적 에너지 낭비하는 것 보다 우리 공동체에 훨씬 중요한 토론일 겁니다.
동종 업계 동료 여러분, 그리고 언론인 여러분, 포기하지 말고 힘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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