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6일 일요일

캐서린 헤일스, 우리는 언제 포스트휴먼이 되었을까, 서문 중에서

Hodges says, Turing was blind to the distinction between saying and dOing. Turing fundamentally did not understand that "questions involving sex, society, politics or secrets would demonstrate how what it was possible for people to say might be limited not by puzzle-solving intelligence but by the restrictions on what might be done" (pp. 423-24).

국문판 번역: 호지스에 따르면 튜링은 말과 행동의 차이를 놀라울 정도로 잘 몰랐다. 튜링은 근본적으로 "성별, 사회, 정치, 비밀과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대답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를 푸는 지능이 아니라 해도 되는 것들에 대한 제약임이 증명"되리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번역: 호지스는 튜링이 말하기와 행하기 사이의 구별에 장님이었다고 말한다. 튜링은 심각하게 "문제해결지능이 아니라 해질 수 있는 것의 제약에 의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성별과 사회, 정치, 비밀과 관련된 질문이 보여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2016년 11월 3일 목요일

"결혼이란게 실은 조식뷔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39436

2016년 11월 2일 수요일

젠트리피케이션

슈톡하우젠의 <오리기날레>를 기점으로 조지 마키우나스는 플럭서스 동료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는 플럭서스를 종언하고 소호지역 건설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기업체 빌딩을 예술가 스튜디오로 만들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 냈고, 우스터 80번지의 빌딩에 첫 번째로 '플럭서스'라고 이름 붙였다. 공동소유 빌딩으로, 다른 27개의 빌딩도 그런 방식으로 운영하며 전혀 사익을 챙기지 않았다. 그의 계획을 소호지역에 부동산 붐이 일어났다. 결국 그는 입주자와 공동 소유자, 부동산 업자로부터 배반당한 채 세상을 등졌다." 75-6쪽

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무의식

새 여자친구에게 가끔씩 종종 옛사람 이름을 부르려고 할 때가 있다. 발설한 적은 없지만 한 번은 그럴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나 스스로도 놀랍다고 밖에는...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돌의 생활

소위 광물로 분류하는 돌은 고유한 제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돌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돌을 대개 우리는 돌이라고 부른다. 이런 돌은 대부분 순수 광물이 다양하게 혼합한 것이며, 흔하기 때문에 범상하고 쓸모 없다고 여겨진다. 길 가다가 발에 차이는 것이 돌이라고들 말한다. 종종 금과 비교해 가치 없는 사물의 표상처럼 인식되거나, 머리가 우둔한 사람을 부르는 우회적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돌이라는 이름이 이런 처지가 된 이유는, 그들이 실로,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는 것과 더불어,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공간에서 가장 흔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돌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궤를 함께 해왔으며, 그때마다 인간은 그들에게 걸맞는 이름을 부여해 왔다. 거대한 바위에서 돌조각을 떼어 내어 주먹도끼를 만들며 오랜 시간 석기 문화를 발전시켰다. 건축 문화는 돌을 다듬고 겹쳐 놓으면서 시발되었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형상을 한 돌에 매혹되어 그것을 수집해 진열하며 거기에 갖은 이름을 붙여 놓곤 했다. 힘없는 어떤 이에게 돌은 가장 구하기 쉬운 무기, 즉 짱돌이라고 불렸다. 돌이 이렇게 편재하며, 또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을 진데, 인간은 실상 돌에 대해, 언제부터 존재하게 됐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다. 현대미술가 이우환이 언젠가 말했듯이 지구보다 더욱 오래됐으며, 인간의 상상력으로 가늠해볼 수밖에 없는, 불투명한 존재인 것이다.

‹돌의 생활›은 수원의 성곽, 화성으로부터 강하게 영감을 받았다. 동양 성곽의 백미라고 불리는 수원 화성은 정조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조한 성이다. 실학자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를 활용하는 한편, 기존의 화강암 위주의 축성공사를 탈피하고 벽돌을 사용한 근대적 맹아가 싹튼 건축물이라고 한다. 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임금 중 하나였던 정조가 당시 기술의 정수를 집약시켜 지은 건축물이며, 그의 아버지와 얽힌 비극적인 (하지만 매력적인) 이야기도 덧붙어 있는 탓에 오늘날 화성은 수원의 중요한 문화 자산으로, 적극적으로 도시 마케팅과 디자인에 활발히 적/활용되고 있다. 수원 시내를 잠시나마 돌아 볼 때 돌의 이미지에 사로 잡히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썼듯이, 화성은 우리가 돌을 부르는 한 가지 이름에 불과하다. 화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돌맹이는 그 자리에 얼마 동안 있었을까? 그 일부가 되기 전에는 어떤 이름으로 불렸을까?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까? 그리고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런 질문을 전개해 나가다 보면 돌은 끊임 없이 움직이며 우리를 간섭하는 매우 역동적인 존재로 나타나며, 수원에 꼭 화성만이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정조만이 아닌, 가련한 돌맹이의 삶과 꼭 같이, 그와 연관된 수 많은 삶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상상하고, 또 사랑할 수 있다.

<돌과 땅>이란 전시에 붙은 인용에 관해.



흠 <돌과 땅>이란 기획에서...인상 깊었던 인용구가 있었다.

"손에 닿는 가장 작은 돌에서, 그는 약속된 땅의 파편을 알아보는 것이다. -폴 오스터"
http://www.altpool.org/_v3/board/view.asp?b_type=5&board_id=774&time_type=

라는 것인데...

원문을 보면

"He will refuse, the better to hunger for what he has denied himself. For to enter the promised land is to despair of ever coming near it. Therefore, he holds everything away from him, at arm's length, at life's length, and comes closest to arriving when farthest from his destination. And yet he goes on. And from one step to the next he finds nothing but himself. Not even himself, but the shadow of what he will become. For in the least stone touched, he recognizes a fragment of the promised land."

Paul Auster, "Pages for Kafka," Collected Prose, p. 475.

이 글은 카프카에 대한 헌사기 때문에 왜 이 글에서 대문글을 인용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의 천재성을 설명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허세?

2016년 10월 27일 목요일

미친 새끼들.

가증스럽고 혐오스럽다. 그 외 전혀 관계 구분 못하고 리트윗하는 병신 새끼들은 한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