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0일 월요일

비엔날레

지자체에서 비엔날레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세울만한 지역축제가 있어야 한다라는 명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비엔날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미술인만을 위한 축제로 남아 왔는데, 큰 이유는 일반 미술 관객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디서도 현대미술을 독해할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자체는 비엔날레라는 소재를 포기하지 않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행정 관료들이 미술을 심지어 그들이 지원하는 대상임에도 제대로 경험도 해보지 않기 때문에, 그냥 전시장에 가서 쉽게 그림을 본다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 관료들이 미술을 향해 끊임없이 지원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다. 제도를 탄탄하게 만들면 수요가 자동으로 생길 것이라는. 그래서 대중적 지지를 받는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 

광주비엔날레는 이제 20년쯤 됐을 거다. 광주시민은 그래서 심지어 택시 운전기사라도 현대미술이란 말에 친숙하다. 하지만 이게 자랑할 거리인가? 20년간 퍼부은 돈의 성과가 단지 친밀함 수준에 그친다니.

비엔날레는 그래서 미술인을 위한 지원제도 중 하나로 전락했다. 그렇게 비엔날레는 일말의 자율성을 획득한다. 사회와 동떨어진 장소에서 예술 관계자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축제를 세금을 써가며 즐긴다. 그것을 모르는 자는 관료뿐이다. 미술인은 비엔날레라는 파이를 난도질해 사유화한다. 유망한 큐레이터와 디렉터라면 비엔날레는 거쳐가야하는 코스이며. 작가도 마찬가지다. 비엔날레는 인증절차 중 하나다. 더 큰 상징자본으로 향하는 몇개 없는 통행문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특권적인 장소가 문제인 이유는 거기에 아무런 크리티컬한 비판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크리티컬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예술 내부로부터 솟아난 비판이 아니라 예술 바깥으로부터 온 비판을 이야기한다. 사회의 영역에서는 미술에 무지하고 미술은 사회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기껏해야 사회로부터 온 비판은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고 예산타령만 한다. 미술에서는 거창하게 사회와 지구의 운명에 관해 걱정하지만 자기들만 기특하게 생각하는 언어로 그렇게 한다.

비엔날레가 회차마다 추구하는 것은 시의적절성이다. 한국은 고유한 예술이론이 부족하거나 전문가들이 거기에 문외한이다보니, 항상 예술의 담론에 외부 자원을 가져다 썼다. 예술내부의 문제로 시의적절함을 따진적을 나는 절대 보지 못했다. 사회학이나 과학이나 정보학이나... 기타등등. 

물론 나는 그것을 선호하지만, 돌이켜보면 뭔가가 거꾸로 되어 있다. 다른 분야를 예술에 끌어 들이는 것은 예술의 관성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꾸로 다른 분야를 끌어들여 예술과 비엔날레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 심지어 그 분야는 컨텍스트를 잃고 마치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것인 마냥 다뤄졌다. 지금까지. 앞으로도. 

2018년 9월 9일 일요일

3극 진공관과 그리드

"뉴턴의 물리학은 강함이 약함을 누르는 비융합적 이중구조와 권력구조를 갖는다. 하지만 1920년대 독일의 한 천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진공관 안에서 양극과 음극 사이에 그리드를 첨가했다. 비로소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불교적 '제3의 길'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백남준, 사이버네틱스 예술, 1965

유명한 <사이버네틱스 예술>이란 글에서 그리드란 말의 정체가 정말 모호했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백남준이 언급한 독일의 천재가 발명한 진공관이 무엇인진 여전히 모호하다. 3극 진공관을 발명한 사람은 미국인이다. 브라운관(음극선관)을 발명한 사람은 독일인인데 연도가 1920년대가 아니다.  흠..


그리드(Grid) : 3극 이상의 진공관에 들어있다. 플레이트와 캐소드 사이에 가는 전선을 망이나 그물 형태로 감겨놓은 형태의 부품이다. 캐소드와 플레이트 사이에 있으며 진공관에 흐르는 전자의 양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드가 강한 음전하(-)를 띄는 경우 플레이트에 다다르는 전자 양이 적어지고, 그리드의 음전하가 약해지면 플레이트에 다다르는 전자 양이 많아진다. 그리드가 띄고 있는 전하의 세기는 진공관으로 들어가는 전자 신호의 세기와 동일하다. 4극 진공관에는 스크린(screen), 5극 진공관에는 서프레서(suppressor)가 추가로 들어간다.

2018년 8월 20일 월요일

조영남

조영남의 작업은 개념미술이 아니라 회화이니 대작이 허용될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전문가의 입장을 보자니 딱하다. 애초 대부분 미술의 카테고리는 작가 스스로 주창한 것이 아니라, 이후 연구자들이 그러한 경향을 이해하기 쉽게 묶어서 부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걸 작가와 작업에게 역강요하고 있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어쨌거나 애초에 이 사건은 미술계에 이미 형성되어 주어져 있는 관습(례)과 그것과 괴리되어 있는 실정법/사회인식 사이에서 '해석'되고 '합의'되어야 할 문제이지, 원래 미술의 개념이 어쩌구 저쩌구하며 내재적으로 출발할 문제가 아니다.

2018년 8월 3일 금요일

할 수 있는 일 - 후쿠하라 키미에



추억이라도 잊고 싶다면,
자, 내가...
지우개로 지워 줄게요.
안심하고 주무세요.
얼어 붙을 듯 추운 아침도, 흔들리는 대지도
몸에 새겨진 기억이
당신을 강하게 만드는 거겠죠.
머지 않아 흙으로
돌아갈 거란 걸 알고 있지만
이 마음을 어쩌면, 어쩌면 좋을까요.
내 노래는 아무런 힘도 없지만
당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주는 정도라면 할 수 있을지도.
추억이라도 잊고 싶다면,
자, 내가...
지우개로 지워 줄게요.
안심하고 주무세요.

2018년 8월 1일 수요일

공감 역설

http://jipdanochan.com/96

대다수 (한국의) 페미니스트가 포르노/외설 문화를 향해 가지는 감정이 이렇지 않을까 한다. 어쩄거나 이 글의 실패의 이유는, 글쓴이의 (고) 메루메루님을 향한 과도한 투사. 본인이 느낀 불편함(강간을 당했다)을 (고) 메루메루님에게 있었던 일로 강요하고 확실시하는 꼰대 같은 태도. 동시에 (고) 메루메루님이 강간을 당했음에도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가해자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가져버렸다고 암시함으로써 (고) 메루메루님을 정신병 환자로 몰며, 거기에 연민을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의 감성을 과시하려고 한다는 점. 아무튼 그렇게 함으로써 (고) 메루메루님을 부지불식 '무의식 흉자'로 만들어 버리는 묘한 전도의 계기가 글 속에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