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6일 금요일

요즘의 연애

민하에게 가끔씩 친구 이야길 듣는다. 민하는 또래 사이에서는 일직 결혼한 편이라 친구 연애/결혼 상담을 종종 하게 된다. 그러면 그걸 나한테 종종 말해준다.

듣고 흥미로웠던 건 친구가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났는데 그 남자친구가 페미니즘 지지하냐 그런 질문을 했다는 거다. 나는 바로 일베네 했지만, 사실 그런 질문 외에는 너무 괜찮은 사람이란다. 맞다. 일베도 일상생활에서 다 괜찮은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 나름의 정상성을 추구한다.

보통 이데올로기가 뭐냐라는 질문은 막장까지 치닫을 때 만나게 된다. 근데 요즘은 그게 디폴트란다. 여자는 남자를 일베인지 검증하고 남자는 여자를 메갈인지 검증한다. 그런데 모두에게 그런 부분이 조금씩 있으므로,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결국 해야 하는 건 말의 correction이다. 왜? political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그걸 해소하기 위한 거다. 원래 정치적 교정이란 적극적 조치였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치적인 것을 막는 조정 장치다. 

어찌보면 과거엔 하지 않고 살았던 질문. 그렇기 때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었던 질문 하지만 문제는 늘상 있었던, 하지만 보고 싶지 않았거나 볼 필요가 없었던 거라면, 지금은 correction을 통해 있는 걸 알지만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좀 더 괴로운 장치적 상황이 되었다. 

2021년 7월 29일 목요일

킹덤: 아신전 (2021)

속빈강정. 설명되어야 할 부분이 죄다 느낌적 느낌으로 넘어감. 특히 아신이 성장하는 부분이.. 돼지 우리에서 고생을 하면서 사는 것과 무력이 세지는 건 너무 다른 이야기인데. 고생을 성장으로 등치시키는 매우 한국스러운 전개. 아픈만큼 성장한다..?

2021년 7월 2일 금요일

미술계 젊은 작가와 대화해 보면 내가 봐왔던 미술계와 판이하게 다른 미술계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게 미술계를 몰라서 그렇다라고 하기엔 너무 열심히 돌아다니고 본다. 여기에는 뭔가 편견이 없달까? 내가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어떤 분할선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란 그런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를 소급해 현재적으로 재규정한다. 그런데 이들은 역사가 없다. 그 대신 분할된 시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별로다라고 생각하는 전시 공간을 그들은 방문하고 흥미롭게 본다. 

2021년 6월 24일 목요일

신지승 페북에서

몇번이고 다시 읽었던

——>

몇일 동안 무기력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생전 처음 본  사람이 찾아왔다 

소주를 마시면서  내 영화 한편을 안주로 삼았다 

영화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 마을영화란게  이런 드라마가 있는  영화인지 몰랐어요 

 영화의 중간 정도에서 

- 이건 키에로스타미를 뛰어 넘는다 "라는  혼자소리를 듣고  

키에르스타미를 아는 사람이네  라는 생각을 하며 그의얼굴을  다시 보았다  

하지만 사람 좋은 호의와 예의치례로 여겼다 

-음악 감독이 있어야 하겠다 

그 소리에  빈틈을 잘 보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 

-이제 다시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다 이루었네요 

 -이 작품은  음악이나 편집 이런 건 전혀 문제가 안되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과연 이 사람의 정체는 뭔가 ?

사실 그 사람이 어느정도 영화를 알고 있는가 궁금 했다 

그는 화가이면서 작가였고 대학 시절  학교앞 작은시네마뗴끄에서 안 본  영화가 없는 영화광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내 속에 감동이 몰려 왔다  

-이건 그 모든 걸 뛰어넘는다   

그의 영화에 대한 찬사는 이제 묵직하고 냉정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작가나 감독의 시선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

나는 시나리오를 만들지 않고 끊임없이 즉흥의 구성을 해 나간다 

그리고 이야기의돌탑을 쌓는다 .이 영화는 나의 창작 방식을 올곧이 반영한 

즉흥과 우연의 영화였다 


-평범한 이들은 감당 하지 못하고 봐도 무엇을 봤는지 모를 것이다 

사실 만든 나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등에 엎혀가는 노인의 얼굴을 보고 뭔가를 끄집어낸다 

-이 영화는 랑시에르에게나  부산의 안00에게  보내 평을 맡겨야 하겠다 . 아마 세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두서없음도 엿보인다 


사실 며칠동안 무력함 속에서 지냈다 

감독전을 준비하기로 했지만 금세 포기했다 


누가 올 사람이 없을 것 같아 급히 다른 감독전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예기치 않은 손님을 만난 것이다 

11년전에 만든 이작품을 보고 남긴 그의 단호하고 분명한 작품의 평가는 지난 시절 이 작품에 남긴 다른 이들의 글을 아침에 찾아보았다


생활연기를 구현! (편지의 이정국 감독)

삶의 비의성을 드러낸 작품 ,해석 이전의 세계를 다룬 영화 (이산하 시인)

예술의 정수 ,삶의 교향악 ,발견과 기다림의 미학,신화적 이면서도 생활적인 영화 (국민대 김윤진 교수,댄스서울프로젝트 총감독) 

한국적인 감성을 가장 잘드러낸 내가 본 유일한 한국영화답다 ( 파비안 ,독일 영화평론가 ) 


지금 이 시기 신지승은 가장 중요하다 신지승은 그는 새로운 발견이다. 한국영화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중요한 미덕을 신지승은 제시한다. 

(정재형 중대영화과교수 ) 

애초부터 기록미디어로서 탄생한 카메라를 삶과 가장 자연스럽게 밀착시키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김지하 오프앤프리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마을영화는 에어컨-선풍기-부채- 그늘이라는 생태적 귀환을 영화적 방향으로 설정하고있다 

(경인여대 김태경 교수 )

기존 영화와는 달리 메세지를 의도적으로 주지 않는다는데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김찬연전문번역작가)

백남준이 했던 이동극장의 동네음악을 가능하게 한 예술혼이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하는 마을영화제와 공명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고 본다.(백용성 )

신지승감독전을 준비해 나갈 불씨 하나를 안긴 밤이었다 

그는  과연 누구인가 ?  궁금증이 더 해갔다 .

나에게  이 영화의 또 다른 시선 하나가 보태어졌다  

알고보니 작년  오늘 온라인으로 개봉?한 작품이었다

내 영화를 아무나에게  보여줄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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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7일 목요일

오늘의 일기

분수에 안 맞는 차를 샀다. 고르고 고르다가 어째 어째 샀는데 민하도 마음에 들어하고 나도 맘에 든다. 아직 운전이 미숙하지만 그럭저럭 대충 피하면서 하긴 한다. 나머진 하늘에 맡겨야지 뭐 별 수 있나.

2021년 5월 21일 금요일

수족관의 삶

김기대, 《AQUA UNIVERSE》, 부산 오픈스페이스 배, 2021.4.3.(토) ~ 5.22(토)

주택을 개조해 만든 부산 오픈스페이스 배의 조그만 방 여럿에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핸드메이드 수족관 몇 세트가 설치되어 있다. 그것은 횟집의 영업용 수족관부터 분재나 가구와 결합된 커스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오래된 느낌을 자아내는데, 아마도 사용된 재료를 모두 주워 온 탓일 테다. 또 이 수족관에는 여러 치어가 실제 배양되고 있어, 마치 어린 시절 익숙한 수족관의 기억, 그러니까 조그만 생명을 길러보고자 시도하고, 방치하고, 실수하고, 실패했던 그런 기억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생명이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조그맣고 취약한 것이다.

여러 곳에 붙어 있는 메모를 읽으면서 진행하면, 수족관이 자전적 메타포라는 사실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반영되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자아처럼 보이는데, 그 순간 수족관이란 장소적 메타포에는 의미가 여럿 중첩된다. 준비하는 장소로서 스튜디오, 그리고 전시하는 장소로서 갤러리.

그러니까 예술의 장소적 기억이라고 할까? 그렇게 아름답진 않다. 특히 작가의 작업실 침실로 제시된 3층 통로 옆 조그마한 방이 그런데, 배치된 야전침대와 수술용 트레이와 도구는 전쟁 중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군인이 대강의 조치를 취하고 어서 빨리 쉬어야만 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런데 중요하게도 이 방에는 아무도 없다. 마치 키우던 금붕어가 죽고 나서 한동안 방치된 수족관처럼, 볼 수 있는 것은 온통 긴급성이 지나간 부재의 흔적뿐이다.

한편 문고리 대신 붙어 있는 마네킹 손을 잡고 밀고 들어가야 하는 다른 방에서는 빔프로젝터가 한 벽면에 쏘아져 있고, 벽에는 여러 오브제가 둥둥 떠다니듯이 붙어 있다. 여기서 VIP에게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고 있을 작가의 모습을 떠오르며, 그래서 그런지, 볼 사람과 보여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은 채로 홀로 틀어진 영상과 장식된 오브제는 실로 기괴하게 느껴진다. 어떤 종류의 긴급성과 어긋남, 실패의 감각, 초현실주의자가 보면 낭만주의적 폐허라고 불렀을 감성 같은 것이 이 전시 곳곳에 서려 있다. 무언가 몹시 붕괴하였고, 하고 있거나, 할 것인데, 그건 작가 자신일 수도, 미술계일 수도 있다.

옥상 끝 방에 들어서면 좀 더 구체적인 삶이 보인다. 이 방에는 제주도 출신의 여러 미술 관련 간행물이 일렬로 진열이 되고, 탁자와 의자가 누군가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말하자면 응접실로, 작가 자신을 다른 이에 홍보하고자 하는 공간이라고 해야 할 텐데, 막상 느껴지는 것은 적막과 고독, 손이 한동안 닿지 않았던, 부식되거나 풍화되거나 퇴적된 감각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기어이 사라지고 말았을까?

전시는 소위 말하는 기획된 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작가는 작업과 전시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여한다. 소위 말하는 진정성을 이입하면서 작가와 작업 사이에 끈끈한 연결을 만들어 내며, 어떤 경우에 그것은 기획된 것이 경계 짓는 분할선을 가로질러 보편적 공감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경우 그런 것처럼 보이며,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자전적 회고를 넘어, 어떠한 종류의 작가적 삶의 일반 모델을 고찰할 수 있게 해준다. 작가가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날 작가의 커리어를 생각해본다. 분명히 지배적인 흐름이 분명히 있고, 이를 둘러싼 권력도 작동한다. 그것은 불명확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확실한 어떤 분할 선을 긋는다. 알만한 주요 대학을 졸업해 주요 공간에서 전시하고 주요 큐레이터와 비평가와 얼마나 네트워크를 형성했느냐 등에 따라서 기회와 커리어의 격차가 발생한다. 이런 풍경을 멀찌감치 바라보는 지방 소도시의 작가는 어떤 기분일까? 대체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먹고 살면서? 누구와 어떤 미래의,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대다수 작가에게 아무도 오지 않는 스튜디오와 전시장은 치어가 담긴 방치된 수족관과 비슷하다. 그들 또한 언젠가 스튜디오와 전시장을 비울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떤 종류의 윤리일지도 모른다. 이들을 더욱 잘 알 필요가 있다.

김기대 인터뷰: https://fb.watch/5SuR4vrftn/


김기대 인터뷰: https://fb.watch/5SuR4vrftn/

2021년 4월 26일 월요일

지금 나의 꿈은 빨리 중고차라도 하나 사서 와이프랑 주말에 오붓하게 놀러다니는 거다. 그게 이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