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홍성담의 <세월 오월>, 이구영의 <더러운 잠>을 지지하는 것 만큼 홍혜은의 글도 지지할 수 있다. 모두 이미지와 신체의 어떤 특징을 연결시켰다. 이걸 파시즘이라고 우려한다면 차라리 집에 까스랜지 불 꺼졌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권력의 이미지를 조롱하는 건 그리 새롭지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도미에의 가르강튀아를 당장 검색해보라. 어떤 소수자성 때문에 권력의 이미지를 비판하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웃기다. 똥이 무서워서 된장 못 담그랴. 대통령이자 여성인 박근혜는 박근혜다. 통합되어 있는 걸 갈라서 이야기하기보단 다른 것이 왜 통합되어 있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2021년 8월 10일 화요일
분위기
2021년 8월 6일 금요일
신지승
이번 인제 여행에서 신지승을 만났다. 몇 가지 메모.
1. 마을영화 제작법
영화를 만들면서 마을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이건 마을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면서, 그렇게 해서 인심을 잃어버리면 마을영화 자체를 찍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최소한의 개입은 필요충분조건일 수밖에 없다. 마을에 이벤트가 있다면 감독은 쏜살같이 달려가 양해를 구하고 약간의 구성을 가미해 시퀀스를 만든다.
2. 작은 마음
신지승은 참 작은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은 것 큰 것 가리지 않고 분노도 잘 하고 상처도 잘 받는다. 너무 깨알 같은데 그게 영화에서잘 나타난다. 되게 그 깨알 같음이 의미없어 보이는데 그렇다고 홍상수식 ‘아무말 대잔치’가 아니라, 뭐랄까 아이고 모르겠다. 암튼 웃기지도 않고 어떤 의도도 있어 보이지 않는 그냥 무심한 일상이 거기에 있다. 극강의 클리셰? 대충 딱딱한 똥은 그래도 괜찮은데 휴지에 묻어 있는 똥이나 어디 발라져 짓이겨져 있는 똥은 너무 더러워서 못참는..? 아이고 모르겠다. 표현이 안 된다. 그것보단 미술적 표현이 낫겠다. 뒤샹은 레디메이드란 개념에 만족하지 않고 레디메이드 에이드란 개념도 만들고 여러가지 만들었다. 그 후예 중 조지 브레히트는 lamp event란 작업을 위해 레디메이드-액션이란 걸 했다. 레디메이드-액션은 조지 마키우나스가 한 말이다. 아무튼 일상에서 늘상 하는 행동을 레디메이드로 가져와서 그냥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허무한 작업이다. 이렇게 내가 레퍼런스로 뭔갈 가져와서 신지승의 이미지가 있어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진짜 아무 의미없어 보인다. 일상을 너무 무심하게 대충 찍었달까. 그냥 그대로 가져왔달까. 이 지점에서 좀 토할 것 같달까, 왜? 그게 너무나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클리셰 중의 클리셰여서? 아무튼 그런 느낌을 받았다. 신지승이 여기서 감독의 시대는 갔다라고 했다. (때때로 모순적임) 신지승의 로망은 아마도 마을의 삶이 그대로 영화가 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하는 건 영화적 삶이다. 그게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 아무튼 신지승은 왜 그렇게 클리셰를 가지고 오느냐 그건 작은 마음과 통한다고 본다.
3. 극영화
신지승의 자부심은 마을사람들과 극영화를 찍는다는 거다. 그러니까 진지한 영화라는 거다. 자신은 감독이다. 영화감독. 이런 식의 작업에서 이런 프레이밍은 보기 드문 것이다. 보통 감독은 낮은 자세로 감독이란 위치성에 대해 의식하며, 마을사람들을 우쭈쭈 해주는 분위기 속에서 작업을 해나간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그렇다. 소셜프랙티스로 가면 너무 다양해서 이건 전통적 장르적 규정이 와해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신지승은 완고하게 극영화를 추구하는 영화감독이다. 등장인물은 마을사람이지만 연기를 한다. 그게 자신인지 타인인지 모르는 경계에서. 감독은 내 위대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이들을 진지한 배우로 본다. 영화인들이 보기에 신지승은 진지한 영화 감독이 아니다. 당연히 등장 인물도 배우로 보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어떤 종류의 포인트가 있어 보인다. + 발터 벤야민, <모스크바 일기>, 러시아 연극에 관한 대목 참조할 것.
4. 마을의 영화관
대부도 주민의 꿈은 현대미술가가 뭐 패총으로 뭘 하고 비닐봉다리를 하늘에 날려보고 그런 게 아니라 내 자식이 안산에 가서 늦게까지 CGV에서 영화보고 버스 끊겨서 돌아오지 못해 차로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대부도에도 영화관 하나 만들어지는 거다. 신지승이 마을에 영화관을 튼다는 건 약간 이런 맥락이 있다.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다. 신지승은 조그만 마을에서 자신이 하는 방식으로 국제영화제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좆까라 비싼 상어영화 우리는 더 좋은 영화를 싸게 많이 볼 수 있다는 거다. 지금 인제에서 신지승의 삶을 보면 이건 자신의 처지가 반영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지승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과, 대부도 주민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좀 겹치는 지점이 있다.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생각 나면 다시 쓸 것.
요즘의 연애
민하에게 가끔씩 친구 이야길 듣는다. 민하는 또래 사이에서는 일직 결혼한 편이라 친구 연애/결혼 상담을 종종 하게 된다. 그러면 그걸 나한테 종종 말해준다.
듣고 흥미로웠던 건 친구가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났는데 그 남자친구가 페미니즘 지지하냐 그런 질문을 했다는 거다. 나는 바로 일베네 했지만, 사실 그런 질문 외에는 너무 괜찮은 사람이란다. 맞다. 일베도 일상생활에서 다 괜찮은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 나름의 정상성을 추구한다.
보통 이데올로기가 뭐냐라는 질문은 막장까지 치닫을 때 만나게 된다. 근데 요즘은 그게 디폴트란다. 여자는 남자를 일베인지 검증하고 남자는 여자를 메갈인지 검증한다. 그런데 모두에게 그런 부분이 조금씩 있으므로,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결국 해야 하는 건 말의 correction이다. 왜? political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그걸 해소하기 위한 거다. 원래 정치적 교정이란 적극적 조치였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치적인 것을 막는 조정 장치다.
어찌보면 과거엔 하지 않고 살았던 질문. 그렇기 때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었던 질문 하지만 문제는 늘상 있었던, 하지만 보고 싶지 않았거나 볼 필요가 없었던 거라면, 지금은 correction을 통해 있는 걸 알지만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좀 더 괴로운 장치적 상황이 되었다.
2021년 7월 29일 목요일
킹덤: 아신전 (2021)
2021년 7월 2일 금요일
흠
미술계 젊은 작가와 대화해 보면 내가 봐왔던 미술계와 판이하게 다른 미술계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게 미술계를 몰라서 그렇다라고 하기엔 너무 열심히 돌아다니고 본다. 여기에는 뭔가 편견이 없달까? 내가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어떤 분할선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란 그런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를 소급해 현재적으로 재규정한다. 그런데 이들은 역사가 없다. 그 대신 분할된 시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별로다라고 생각하는 전시 공간을 그들은 방문하고 흥미롭게 본다.
2021년 6월 24일 목요일
신지승 페북에서
몇번이고 다시 읽었던
——>
몇일 동안 무기력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생전 처음 본 사람이 찾아왔다
소주를 마시면서 내 영화 한편을 안주로 삼았다
영화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 마을영화란게 이런 드라마가 있는 영화인지 몰랐어요
영화의 중간 정도에서
- 이건 키에로스타미를 뛰어 넘는다 "라는 혼자소리를 듣고
키에르스타미를 아는 사람이네 라는 생각을 하며 그의얼굴을 다시 보았다
하지만 사람 좋은 호의와 예의치례로 여겼다
-음악 감독이 있어야 하겠다
그 소리에 빈틈을 잘 보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
-이제 다시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다 이루었네요
-이 작품은 음악이나 편집 이런 건 전혀 문제가 안되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과연 이 사람의 정체는 뭔가 ?
사실 그 사람이 어느정도 영화를 알고 있는가 궁금 했다
그는 화가이면서 작가였고 대학 시절 학교앞 작은시네마뗴끄에서 안 본 영화가 없는 영화광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내 속에 감동이 몰려 왔다
-이건 그 모든 걸 뛰어넘는다
그의 영화에 대한 찬사는 이제 묵직하고 냉정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작가나 감독의 시선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
나는 시나리오를 만들지 않고 끊임없이 즉흥의 구성을 해 나간다
그리고 이야기의돌탑을 쌓는다 .이 영화는 나의 창작 방식을 올곧이 반영한
즉흥과 우연의 영화였다
-평범한 이들은 감당 하지 못하고 봐도 무엇을 봤는지 모를 것이다
사실 만든 나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등에 엎혀가는 노인의 얼굴을 보고 뭔가를 끄집어낸다
-이 영화는 랑시에르에게나 부산의 안00에게 보내 평을 맡겨야 하겠다 . 아마 세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두서없음도 엿보인다
사실 며칠동안 무력함 속에서 지냈다
감독전을 준비하기로 했지만 금세 포기했다
누가 올 사람이 없을 것 같아 급히 다른 감독전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예기치 않은 손님을 만난 것이다
11년전에 만든 이작품을 보고 남긴 그의 단호하고 분명한 작품의 평가는 지난 시절 이 작품에 남긴 다른 이들의 글을 아침에 찾아보았다
생활연기를 구현! (편지의 이정국 감독)
삶의 비의성을 드러낸 작품 ,해석 이전의 세계를 다룬 영화 (이산하 시인)
예술의 정수 ,삶의 교향악 ,발견과 기다림의 미학,신화적 이면서도 생활적인 영화 (국민대 김윤진 교수,댄스서울프로젝트 총감독)
한국적인 감성을 가장 잘드러낸 내가 본 유일한 한국영화답다 ( 파비안 ,독일 영화평론가 )
지금 이 시기 신지승은 가장 중요하다 신지승은 그는 새로운 발견이다. 한국영화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중요한 미덕을 신지승은 제시한다.
(정재형 중대영화과교수 )
애초부터 기록미디어로서 탄생한 카메라를 삶과 가장 자연스럽게 밀착시키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김지하 오프앤프리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마을영화는 에어컨-선풍기-부채- 그늘이라는 생태적 귀환을 영화적 방향으로 설정하고있다
(경인여대 김태경 교수 )
기존 영화와는 달리 메세지를 의도적으로 주지 않는다는데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김찬연전문번역작가)
백남준이 했던 이동극장의 동네음악을 가능하게 한 예술혼이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하는 마을영화제와 공명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고 본다.(백용성 )
신지승감독전을 준비해 나갈 불씨 하나를 안긴 밤이었다
그는 과연 누구인가 ? 궁금증이 더 해갔다 .
나에게 이 영화의 또 다른 시선 하나가 보태어졌다
알고보니 작년 오늘 온라인으로 개봉?한 작품이었다
내 영화를 아무나에게 보여줄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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