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5일 수요일
신유물론의 문제 하나
노버트 위너의 이론에서 하나 계속 신경쓰였던 것 중 하나는 위너의 시스템 이론에서 의미있는 값은 질적이라기보다 양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양이 체계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데 그 양이 쓰이는지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 탄 사람이 철수냐 영희냐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안에 탄 사람과 비행기가 어디로 얼마만큼 이동하는지가 중요하다.
신유물론의 물질에 대한 관심이 약간 그런 식인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하만을 따라 위로의 환원, 아래로의 환원을 피한다는 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고 그 결과에 대해 가치평가를 통해 의미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니 결국 남는 건 그 물질 혹은 객체의 물리학으로 전락하는 거 아닌지.
2021년 9월 10일 금요일
지식과 오리지널
https://m.news.nate.com/view/20210909n06703
원희가 하는 재주도좋아가 바라던바다라는 JTBC 프로그램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재주도좋아측에서 바라던바다에 상표권 등록을 했는데 jtbc가 이걸 침해했단 것이다. 바라던바다는 친환경 축제의 상표라고 한다. 그러면서 “큰 금전적 보상 없이도” 보람이 있으므로 활동을 지속했다고 주장한다. 제주도좋아측의 요구는 원작자의 출처를 밝혀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게 아니라면,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것이다.
나는 제주도좋아의 말이 좀 웃기다. 공공재를 이야기하면서 지식의 원본성은 주장한다? 바라던바다란 문자는 JTBC측의 주장과 같이 매우 평범하게 쓰이는 단어이며, 비치코밍, 플러깅, 버스킹 등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걸 조합하는 행사는 찾아보면 솔직히 수두루빽빽 나올 거 같다. 내가 보기에 재주도좋아의 바라던바다 행사 취지에 어디에 오리지널리티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착하고 평범한 행사에 바라던바다라는 레이블을 붙였다는 것인 것이 가장 특별하다, 그러니까 핵심은 상표권인 것이다.
뉴스에서 지적하다시피 바라던바다에서 쟁점이 되는 상표권은 문자상표권이 아니다. 바라던바다는 고유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대한 표절이 없는 것과 같은 의미다. 모두가 그림을 그린다. 재주도좋아의 바라던바다가 상표로서 등록된 건 도형이다. 바라던바다의 로고란 뜻이다. 이건 JTBC의 경우도 마찬가지어서 그러니까 둘은 로고의 유사성을 놓고 싸워야 한다.
하지만 재주도좋아측이 문제삼고 있는 건 도형이 아니라 문자, 나아가 아이디어, 지식이다. 내가 보기에, 그리고 법이 판단하듯이 바라던 바다라는 명명과 행사는 매우 일반적인 것이어서, 그리고 과거 사례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고유한 것으로 이해되 힘들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APAP에 표절임을 문제 제기하나? ㅎ 따지고 들어가면 그래서 이 문제는 일반적인 행위를 고유하게 브랜드화한 것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제주도좋아가 어떤 종류의 공공재를 사유화했다는 거다. 이율배반 아닌가?
물론 JTBC를 옹호하고 싶진 않지만 바라던바다는 고유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으로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라는 아이디어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JTBC도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JTBC 같은 대자본이 그린워싱을 하는 제스처엔 크게 동의되지 않고 그건 그거대로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재주도좋아가 공공적으로 보이냐, 그렇지도 않다는 것.
2021년 9월 3일 금요일
Jacques Ranciere, Communist without Communism?, In the Idea of Communism
“Its opposite, the egalitarian maxim, can be summed up in two principles: firstly, equality is not a goal; it is a starting point, an opinion or a presupposition which opens the field of a possible verification. Secondly, intelligence is not divided, it is on. It is not the intelligence of the master orthe intelligence of the student, the intelligence of the legislator or the intelligence of the artisn, etc. Instead, it is the intelligence of that deos not fit any specific position in a social order but belongs to anybody as the intelligence of anybody. Emancipation then means: the appropriation of this intelligence which is one, and the verification of the potential of the equality of intelligence.”(168)
“The emancipation of the workers thus means the affirmation that work can wait and the there is no specific ‘aptitude’ of the artisan. It entails the possibility of breaking the links of ‘necessity’ tying an occupation to a form of intelligence, the affirmation of the universal capacity of those who were supposed to have just the intelligence of their job, which means the intelligence or unintelligence befitting their subordinate position.”(168)
Position이 계속 나오고..
“I said: we can add. This means: we can draw a deduction from the thesis of the communism of intelligence to forms of collective implementation of this communism. This is where the difficulty appears. How far can the communist affirmation of the intelligence of anybody coincide with the communist organization of a society? Jacotot entirely denied such a possibility. Emancipation, he said is a form of action that can be transmitted from individuals to individuals. As such it is strictly opposed to the logic of social bodies which is a logic of aggregation governed by laws of social gravitation similar to the laws of physical gravitation. Anybody can be emancipated and emancipate other persons so that the whole of mankind be made of emancipated individuals. But a society can never be emancipated.”(169)
이건 뛰어난 개인을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집단 해방과 개인의 해방을 대립시키는 질문도 아님. 진짜 질문은 어떻게 anybody의 역량(capacity)을 집단화(collectivization)하는 일과 글로벌하게 사회를 조직하는 일과 동시에 일어나게 할 수 있냐는 것. 어떻게 해방의 아나키한 법칙이 일과, 지위와 힘을 사회적으로 분배하는 법칙이 될 수 있게 하냐는 것. …
이러면 꼭 자발적으로(스스로) 조직화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옴.
그런데 해방은 탈질서(disorder)가 분명하지만 이 탈질서는 자발적(spontaneous)인 것과 아무 관련이 없음. 반대로, 조직화(organization)은 쉽게도 기존 사회원칙의 형태를 자발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을 뜻함. 해방의 법칙은 자콕토의 시대에는 카비트(Cabet)나 간단히 마르크스와 앵겔스 공산당 같은 커뮤니스트 콜로니를 건설하는 문제로 나타났음.
카비트는 미국의 이카리안 공동체에서 나온 커뮤니스트 커뮤니티인데 실패했음. 랑시에르가 보기에 실패하지 않은 지점은, 애초애 개인이 공동의 법칙에 아무 것도 제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실패할 것도 없었다는 거. 반대로 실패한 지점은 커뮤니스트의 역량이 개인화(privatized)되지 않았다는 것. 즉 랑시에르는 개인은 아무 잘못이 없고(잘못할 꺼리조차 없었고) 집단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음. 애니바디(anybody)의 역량을 공유하는 것이 개인 커뮤니스트 인간의 미덕이 될 수 없었음. 그런 해방의 템포(temporality), 즉 다시 말해 집단적 힘이 폭발하는 템포는 모두에게 특정한 기능을 사회가 줘서 조직한 시간표로 일어나지 않음.
그런데 이카리안 커뮤니티 언저리에 다른 종류의 커뮤니티가 좀 더 잘한 사례가 있음. 이들이 성공한 이유는 커뮤니스트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 그들은 종교적 원칙을 숭배하는 여성과 남성으로 만들어져 있음. 그러나 이카리안 커뮤니티는 커뮤니스트로 만들어져 있었음. 그래서 이카리안 커뮤니티의 커뮤니즘은 두개로 갈라짐: 하나는 커뮤니티의 아버지(Father)가 지배하여 일상을 커뮤니스트적으로 조직화하는 거. 결국 커뮤니스트 일꾼은…
좀 있다가 더 읽고 메모해야지 메모를 하려고 했더니 다 중요해보여서 번역을 하고 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