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9일 목요일

블로그 공개설정

다시 링크가 있으면 접속할 수 있는 블로그로 설정을 바꿨다.
다음은 내가 미술관에 대해 쓴 글을 보면서 공직자 어쩌고 했던 사람들에게 쓰는 말.

다음의 링크 글 참고하시고요.

보시고 욕을 하시던지 마음대로 하세요.
추한 마음만 더 커질 거에요.

2023년 1월 18일 수요일

지방 예술공간도 사랑을 꿈꾼다

소년 용접공으로 이름났던 천현우가 「지방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라는 글을 써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1) 이 글은 무엇보다 좌파의 빈축을 샀다. 좌파에게 ‘지방’은 구출되어야 하는 중앙의 식민지다. 반면 ‘총각’은 요즘 같아서는 ‘처녀’만큼이나 불러서는 안 되는 혈기 왕성한 구시대적 남성 주체의 형상이다. 지방과 총각은 절대 만나서는 안 되는 두 단어 같다. 마치 피해자와 가해자처럼.

왠지 모르게 나에게 천현우가 묘사한 지방 총각의 가정을 향한 소박한 욕망은 지방 예술공간의 알레고리처럼 보였다. 지방에 여성이 없는 이유는 제조업 위주의 산업 구조 때문에 일자리가 없기 때문인데, 마찬가지로 이런 조건에서, 문화계통의 일자리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또한 인구수 자체가 적거나 감소하다 보니 이성끼리 만날 기회도 적다고 하는데, 미술 관련 학과가 신속하게 통폐합되고 있는 와중에 미술 인구 역시 턱없이 적으며, 야심에 찬 예술가나 큐레이터, 이론가가 언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둘러보면 지방을 떠난 지 오래다. 또한 혼인에 성공해도 아이를 낳기도 힘들며, 맞벌이 부부를 위한 지원책이 미비한 지방에서 아이를 키우기가 난망하다고 하는데, 이는 지방의 문예 지원 상황과 흡사하다. 문예 지원이 지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원 규모도 중앙에 비해 턱없이 적은 데다가 지원 방향성도 효용성 중심으로 미묘하게 다르다.

지방에서 예술공간을 운영한다는 것은 마치 남아 있지 않은 이성을 상상하고, 구애하고, 또 가정을 꾸리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한 것 같다. 기획전 《점이지대》가 펼쳐진 사랑농장은 바로 이런 조건 위에 놓였다. 사랑농장이 위치한 경남 김해시 한림면은 소멸하는 지방 중에서도 ‘초토화된 마을’로 불리곤 한다. 한 보도에 따르면, 2017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서울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 읍면동의 개별입지 공장 수, 오염부하를 토대로 6개 등급을 나눈 결과 한림면은 0등급을 받았다고 한다.2) 청년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이 어쩔 수 없이 남아서 버티던 중 예술가가 들어왔다. 돼지 사육 농장 한가운데, 어디선가 주워온 영문자 LOVE 간판을 걸면서.

사랑농장이 이러저러한 작가를 모아서 표방한 ‘점이지대’는 여기서부터라고 제안한다. 보통의 기획전에서 제목은 아이디어를 총괄하기 마련이다.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고도로 정밀하고 적확하게 세공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점이지대》는 특정한 예술 작업의 흐름을 제시한다든지, 어떠한 미학적 주제로 작품을 묶어내려는 시도에 관심이 없다. 전시는 작가도 예술도 아닌 어떤 장소의 성격, 비결정적인 상태만을 표현한다. 중요하게도, 그 장소란, 예술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사랑농장’ 그 자체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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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한림면은 김해에서도 주변적인 장소로 대중교통으로 방문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차를 운전해서 가면, 지나가면서 볼거리라는 것이 헐겁게, 바람 불면 날아갈 것처럼 만들어진 공장 단지다. 인적은 거의 없고 돼지 사육장이 근처에 많아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차를 운전해 올라가면 예술가스럽게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서성이고 있다. 이것이 설마 예술공간일까 싶은, 방치된 듯한 샌드위치 패널 공장이 바로 사랑농장이다. 전시장은 어두침침한데 비단 조명시설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무언가 쾨쾨하고 무언가 텅 빈, 무언가 예쁜 구석을 말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하고 빈곤한,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안 좋은 공기가 감도는, 하루만 전시해도 장비는 고사하고 작품이 다 망가질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감돈다.

그런 곳에 예술가의 작품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두 개의 불길한 신호가 감지된다. 하나는 젠트리피케이션, 과장해서 앞으로 치고 나가자면, 샤로수길, 망리단길, 송리단길이라는 미래. 젠트리피케이션은 오늘날 낯선 현상이 아니며, 어떤 면에서, 지방소멸 시대에, 모든 지자체는 살아남기 위해 “전국의 관광지화”를 바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 잘 알려진 것처럼, 문화요소, 특히 예술가는 가성비 좋은 젠트리파이어(gentrifier)다. 무언가를 효과적으로 변화시킨다. 스스로를 다른 것과 구별해내고 스스로 특별하게 존재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종국에 원주민을 내쫓을지라도, 예술가는 기어코 그렇게 한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여기의 예술가는, 또 한 무리의 젠트리파이어로서 한림면에 광범위하게 퍼진 폐급 공장만큼이나 암세포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예술공간의 잘 알려진 미래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면, 예술공간의 잘 알려진 과거는 지방소멸과 궤를 함께한다. 2014년 《공장미술제》의 작가 대우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출발한 젊은 ‘을’의 분노는 10년 전 386세대와 X세대가 온 힘을 다해 구축한 대안공간 시스템의 효용성 상실을 논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가 되면 공적영역의 문예지원 시스템이 안정화되면서, 신진작가 소개 자체만으로 특별할 게 없어진 시대에, 그렇다고 작품을 팔아줄 수도 없는 대안공간을 청년 예술가는 하나 둘씩 떠난다.4) 누군가는 쉽게 말하곤 했다. 포기하면 편하다. 능력 없으면 더 이상 민폐 끼치지 말고 문을 닫아야 한다고.

그런 면에서 보면, 돼지 농장과 샌드위치 패널로 둘러싸인, 제대로 된 전시장도, 큐레이터도, 행정 시스템도, 예산도 없는, 사람도 잘 찾지 않는, 알려지지도 않은 지방에서, 사랑농장이 예술공간으로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초강력 무리수 그 자체다. 죽음의 이지선다가 눈앞에서 강요된다. 변하면 죽는다: 젠트리피케이션. 변하지 않아도 죽는다: 지방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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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이 완성되면 예술가는 사라진다. 특별했던 예술실천은 도시 디자인과 소비 시스템에 잡아먹혀, 최악의 경우 거주민과 함께 쫒겨나며, 심지어 최선의 경우에도 예술가 마을 같은 낭만 어린 전형이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되지 않아도 예술가는 사라진다. 예술공간이 별다른 지원책과 매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기피대상이 되어 사라진다면, 역설적으로 예술가는 활동할 근거를 출발 전부터 상실한다.

혹시 문화관광의 소비경험 따위로 외파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종국에 예술가의 지지를 잃어 스스로 내파하는 길을 가지 않는다면? 그렇게 자기의 특별함과 존재를 지켜나가는 만큼, “전국의 관광지화”의 완성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젠트리피케이션과 지방소멸 양극단과 한없이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그것과 멀어지려고 하는, 이중적 과제를 지닌, 그러니까 변화 그 자체를 지속할 방법이 있다면?

그런 생각지도 못한 기똥찬 방법이 어딘가에 있을 리가 만무하다. 사실, 《점이지대》는 어디서나 들려오는 노래를 놀랍도록 성실하게 따라 부른다. 부산과 울산 같은 인근 지역의 작가들이 폐공장 지대에 모였다. 작품을 설치하고 SNS에다가 홍보한다. 나름의 오프닝을 하고 나 같은 큐레이터나 비평가를 초대해 멘토링이란 이름의 세미나도 연다. 사진을 찍고 글을 받고 결과보고집을 출간하고 문서고에 꽂아 놓거나 누군가에게 보낼 것이다: 홍티아트센터나 F1963 같은 많은 기관의 프로그램이 답습하고 있는 프로토콜.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것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2020년대에는 전형을 이룬다. 백종원 거리를 모든 지자체가 만들려는 것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 나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종국에 ‘똑같음’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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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은 음습하고 외진 공간에 사람들을 모으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 영상 전시를 여는 것이 유효하겠다고 생각했다. 반지하 주택의 창문을 사랑농장의 어두운 벽에 투사하기로 결정한 최은희는 사랑농장을 보면서 반지하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전수현은 지방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합리와 비합리를 연결하는, 아직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이단적 믿음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출품하기로 결정했다. 최서연은 마르크 오제가 일찍이 말했던, 전통적 공동체가 불가능해진 비장소적 이미지를 사랑농장이란 장소와 겹쳐보았다. 정수는 언어로부터 시각으로 나아가며, 김은지는 이미지로부터 언어를 향해 가며, 둘은 미학적인 분할과 미끌어짐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이 모든 영상과 설치물이, 허름하고 외진 건물 안에서,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흐트러짐 없이 성의 있게 설치됐다.

이상한 건, 지금, 여기서 그것을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발견적인 경험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이 가성비적 시대정신을 초과하는 경험으로 온다는 사실이다. 최선을 다해 만든 작품을 왜 굳이 여기에 출품하려고 결정한 것인지, 모두들 왜 이 멀고 지저분한 곳까지 와서 무알콜 맥주 캔을 손에 들고 흐느적거리고 있는 것인지, 누군가에게 말을 걸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인지, 왜 그렇게 작업대를 반듯하게 세워서 그 위에 빔프로젝터를 정중앙에 삐뚤어지지도 않고 올려놓은 것인지, 십시일반 돈을 모아 평론가를 잡아 놓고 추운데 밤새도록 집에 가지 않고 작업 이야기를 즐겁게 나눴던 것인지, 감기에 걸려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여기에 오고 싶었던 것인지, 그러니까 무엇이 그렇게 절박해서 왜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 이 모든 것이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다. 《점이지대》는 그런 장소였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과잉된 무엇이 여기에 투자되었다.

이런 각자의 충실성을, 이런 과잉을, 경남일보의 이정민 기자를 따라서 ‘예술혼’ 말고는 딱히 설명할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5) 이런 예술혼은 시작부터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의 예술공간이란 점을 떠올려 봤을 때 차고 넘치는 무엇이 아닐 수가 없다. 또한 문화적 키치를 만드는 젠트리파이어란 용기에도 채 모두 담길 수 없는 무엇일 테다. 예술혼이 구차다고 조롱받는 시대에, 예술공간이 작가 커리어의 지렛대로서 기능하지 않는다면 무가치해지는 시대에, 이름 없는 공간에서 행사를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여기에 충실히 화답하는 일련의 과정은, 심지어 그것이 이미 잘 알려진 배관을 따라 흐른다 하더라도, 압이 차서 팽팽 부풀어 오르고 찢어진 틈으로부터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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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서, 어쩌면 지방총각은 영원히 가정을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을 못한다고 사랑을 못하는 건 아니다. 가난한 사람도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고 서로 사랑할 수 있다. 《점이지대》는 예술가의 사랑농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도 여기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관심 가져주지 않아도, 알 수 없어도, 가까운 미래에 이곳이 설령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지금 여기에 우리가 모여 작업을 보고 이야기하고 웃고 떠드는 그런 꿈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그런 장소, 그리고 그런 일을 앞으로도 계속 꿈꾸고 싶다는 희망. 《점이지대》는 사랑농장이 취한 그러한 종류의 태세로 보였다.


1) 천현우, 「[2030 플라자] ‘지방 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 《조선일보》, 2022. 9. 15.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2/09/15/IADOUZTNAVDMHHLXCYX6GOL6V4/ (접근: 2023. 1. 16.)

2) 윤지로, 「암세포 번지 듯…느슨한 규제에 공장은 마을을 집어삼켰다 [우리의 환경은 평등합니까]」, 《세계일보》, 2019. 3. 7. https://www.segye.com/newsView/20190306004667 (접근: 2023. 1. 16.)

3) 앞으로 지칭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백종원과 예산군의 관계처럼 공공영역과 영합하는 지방재활성화 정책에 가깝다. OSEN, 「시장으로 간 백종원, ‘전국의 관광지화’ 새로운 바람 만들다」, 《조선일보》, 2022. 10. 04. https://www.chosun.com/entertainments/broadcast/2022/10/04/46WSM632H67IP2WDLR3KSWHS4Y/ (접근: 2023. 1. 17.)

4) 여기에 관해선 나의 「신세대 담론의 작은 역사: 2013-2016」를 볼 것. 《아트신》, 2019. 2. 12. https://www.artscene.co.kr/1680#footnote_link_1680_3 (접근: 2023. 1. 17.)

5) 이정민, 「경계 넘나든 시선, 김해의 점이지대 작가 5人 예술혼」, 《경남일보》, 2022. 9. 29.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504777 (접근: 2023. 1. 17.)


2023. 1. 18.


사랑농장 <점이지대> 카탈로그 글로 쓰였음

2022년 8월 16일 화요일

새 직장

오랫만에 쓴다. 부산시립미술관에 온지 이제 일주일 지났다. 현대에서 겪었던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일적으로도 생활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거다.

나를 괴롭혔던 몇 사람은 내가 그만두기 전까지도 자기 피해볼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피해본 것과 내가 피해본 것을 단순 비교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그들은 마음이 불편하고 찝찝할 뿐이다. 나는 언제건 그만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꼭 시립으로 옮기지 않아도, 언제라도 그만둬야 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 시립으로 갔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내 직장을 잃게 만든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개의치  않을 것이다. 별 생각도 없겠지. 안하려고 하겠지.

어쨌거나 얄궂게도 나는 같은 지자체 내 다른 사업소에 오게 되었다. 밖에서 봤을 땐 마치 인사이동 같아 보인다. 나에 대한 소문도 이미 퍼져 있을 것이다. 그것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두배 노력해야 하는 것도 맞다. 

곧 이사한다. 이사 이사 이사.. 민하도 참 고생이다. 그래도 조금은 밝은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를.

2022년 7월 21일 목요일

82년 김지영과 96년 우영우

두 캐릭 모두 비현실적인 조합이다. 하나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조합. 다른 하나는 최고의 조합. 14년 차이. 하..

2022년 4월 6일 수요일

오랫만에 쓴다

블로그가 회사 내에 유출되는 바람에 들어오기조차 싫은 곳이 되었다. 이 블로그는 링크가 없으면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고 10년 넘게 사용하면서도 한 번도 외부에서 찾아서 누군가 들어온 적이 없었다. 누군가 교육실 노트북에 로그인 된 걸 발견하고 돌려 봤겠지. 그걸 완전 비공개로 하지 않은 내탓으로 모는 곳이 여기 학예실이다. 블로그를 보고 악성 루머를 퍼트린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사과를 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관장과 학예실장의 직무유기부터 학예실 왕따를 경험하니 부산은 정나미가 떨어진다. 견적이 안 나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다 알면서 모른척하는 건지 정말 몰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빨리 이 조직을 떠나야 내가 산다.

2022년 3월 12일 토요일

프리-포스트인터넷에 관한 노트

더덕어몽어스라는 반직관적인 팀 이름과 함께 인터넷 친화적 프로젝트를 알리는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1>의 스카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면 벽을 향하면 유사 제단이 쉬이 보인다. 이 제단은 QR 코드를 신줏단지로 모시고 있으며, 4기사인지 사천왕인지 멋들어지게 수트를 빼입은 새 4마리가 제단화 형식으로 양옆에 붙어서 호위 중이다. 공간 중앙 바닥에는 ‘오늘은 너를 먹고싶어’라는 문구가 써진 웹소설의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 박약한 직사각형은 마치 마스터피스인양 통행을 방해하는 3면 가드라인으로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는데 그 자체가 좀 알쏭달쏭하다. 오른쪽 벽에는 홀로그램 스타일로 프린트된 얇은 띠가 세로로 천정과 바닥 사이를 꽉 채워 붙어 있는데, 벽이 열리는 듯, 틈으로부터 무언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이 계시적이다—바넷 뉴먼의 유명한 지ㅍ(zip) 페인팅처럼. 왼쪽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현란하게 돌아가는 무빙이미지는 마치 사천왕 캐릭터가 등장하는 미연시 게임의 오프닝 화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광경을 누군가 봤다면 이렇게 불렀음 직하다.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바로크 예배당.

온오프라인 격차

곤경에서 시작해보자. 어떤 누구도 전시장에서 QR 코드를 찍고 들어간 웹소설 플랫폼에서 한 자 한 자 읽으면서 웹소설 「오늘은 너를 먹고 싶어」의 내용—어떤 캐릭터가 어떤 행동을 했고 누구를 사랑했고 배신했는지 등등—을 파악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럴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는 상당 부분 유저 인터페이스의 레벨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곤경이다. (달리는 기차를 타고 저 멀리 보이는 조그만 전광판의 광고가 무슨 광고이고 어떤 배우가 출연했는지 파악하려는 시도.) 웹소설과의 이런 단절은 전시실에서 많은 트러블을 일으킨다. 옆의 모니터에서 돌아가는 무빙이미지는 미연시 스타일의 웹소설 광고를 의도했겠지만, 웹소설의 맥락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생각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모니터를 터치해야하나 고민하다가 깨닫게 되는 것은 오히려 게임은 존재하지 않고 내용도 불명이라는 것이다. 이 무빙이미지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역할은 전시실의 분위기 메이커다—이는 90년대 노래방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노래와 상관없이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던 정체불명의 뮤직비디오를 떠올리게 한다. 반대편 벽, 얇고 반짝거리고 길게 붙어 있는 홀로그램 띠지가 계시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이유 역시, 사실은 여기에 프린트 된 웹소설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네트워크의 사정은 어떨까? 「오늘은 너를 먹고 싶어」는 웹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심지어 웹소설의 주류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에서, ‘이건 정말로 웹소설이야!’라는 느낌으로 전시 기간 내 연재되었다. 여기의 곤경은 이 웹소설이 너무나 웹소설이고 플랫폼으로 사용한 카카오페이지가 너무나 카카오페이지라는 것에 있다—물론 미술작품이 너무 미술작품스럽고 전시실은 너무 전시실이라는 사실도 동일하게 지적되어야 한다. 웹소설 플랫폼은 당연히 미술 프로젝트 한 개를 위해 자신들이 구축한 몰입적 인터페이스를 변형시킬 의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텍스트는 카카오페이지가 요구하는 대로 포메팅(formatting)되어, 적합하고 효율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는 관계로 그 자체로 충분하다. 그래서 실로 소설과 전시를 연결해 볼 수 있는 단서는 페이지 내에서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8전시실에 PROJECT HASHTAG 전시 작품으로써 전시됩니다”라는 페이지에 고정된 베스트 댓글은 궁색해 보인다.[1] 그 아래에 댓글을 단 어느 사람도 이 소설과 미술을 연결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지방에 사는 사람을 고려했을 때, 댓글을 단 사람 중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네트워크와 현실의 양 극단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상 다가서려고 하면 할수록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어느 쪽을 입구로 삼든 출구는 없다.

현실, 오프라인은 인터넷의 4D인가?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인터넷은 죽었는가?」라는 글에서 네트워크 밖으로 풀려난 객체(object)의 자율적 에이전시(agency)를 지지하면서도 더욱 앞으로 나아간다. 인터넷이 이미 오프라인이 되었다면 카피레프트 같은 네트워크의 순환주의적 혁명을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해야 할 것이 아닌가?[2]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되돌아오는 슈타이얼의 사고는 매우 포스트인터넷스럽다.

하지만 여기 전시실에는 조금 다른 종류의 곤란이 있다. 1960년대 네트워크의 탄생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아마도 루브르를 평민이 점유한 이후로, 전시/박람회는 진귀하고 뛰어난 물건을 대중이 구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 움짤도, 하이퍼링크도, 댓글도 없던 시대에 전시의 관람성은 전시할 물건을 구하고 장소를 구해서 홍보하면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그 장소를 찾아서 보고 가는 식으로 이뤄졌다. 이런 전시의 테크놀로지는 동시대미술관에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공간 이동이 차단되었을 때 미술관이 겪었던 곤란을 생각해보라.) 물리적 공간에 물리적 사물—그것이 조각이든 회화든 스크린이든 잡다한 이퍼메라든—과 물리적 신체를 채워 넣어야 한다. 이것은 차라리 인터넷 이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관례라고 봐야 마땅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실에서 마주하는 곤란은 이런 종류의 저항이다. 실로 네트워크와 분리된 오프라인 전시실에 남아 있는 것은 관례적인 관람성 형식 그 자체다. 다른 한편에서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는다면 포스트인터넷 아트를 보기 위함이 아니다—어떠한 스크린의 추방자를 데려다 놓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진지한 예술 작품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논리의 편재화라고 부르기엔 오히려 현실은, 특히 미술관 전시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은 네트워크적 논리와 관람성이 얼마나 연결되기 어려운지를 보여준다고 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 인터넷과 포스트인터넷이 표상하는 네트워크 사회 이전의 구체제와 그것에 이미 적응한 신체적 한계를 포착하기 위해, 허락한다면, 여기서는 프리-포스트인터넷(pre-postinternet)이라는 용어를 쓰고 싶다. 프리-포스트인터넷 조건은 마땅히 인간의 굴레라고 불러야 할, 여러 역사적 제도적 신체적 조건의 구체제적—비네트워크적 혹은 반네트워크적—반동이며, 그것은 여전히 관성적이며, 제도적이며, 강력하며,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장소에서 특히 그렇다.

프리-포스트인터넷 조건

이야기를 조금 우회해보자. 2015년 5월 27일 저녁 8시경, 오픈베타공간 반지하의 텀블러에 강정석이 쓴 「서울의 인스턴스 던젼들」이라는 글이 게시되었다.[3] 이는 2010년 초반부터 하나둘씩 생겨나던, ‘신생공간’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활동을 당사자 시각으로 정리한 글로, 이후 다양한 지면에서 다시 소개 되며 새로운 세대의 미술 지형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여기서 강정석은 과포화 경쟁상태의 미술계를 MMORPG 생태계에 비유하며, 신생공간은 말하자면 인스턴스 던전, 메인 맵의 경쟁 강밀도를 해소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예외공간이라고 주장했는데, 골자는, 내장카메라와 지도앱이 내장된 아이폰3GS 발매 이후 오프라인은 온라인 네트워크적 작동방식과 겹쳐지게 되었고, 어떤 종류의 세계관이 변했고, 여기에 따라 신생공간의 활동은 온라인 게임의 프로시저로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적어도 신생공간을 주도하던 씬에서는 그렇다.

신생공간 담론을 잠깐 검토해 보는 것은, 관련 작가가 많은 부분에서 세대적으로 구별되고 여기서 주목받은 작업이 향후 포스트인터넷 아트와도 상당수 겹쳐진다는 의미에서 유의미하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위의 강정석의 글은 한국에서 포스트인터넷적 인지의 기원서사로서 부족함이 없다.[4]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새시대를 축하할 것만이 아니라, 신생공간이 그러한 활동을 펼치게 됐는지도 똑같이 주목해야 한다. 같은 글에서 강정석과 반지하의 운영자이자 작가인 돈선필의 인터뷰를 보면, 신생공간이 태동한 이유에 관해 “과도한 경쟁상태”와 “성취의 지연상태”를 지적하고 있다.[5] 이것은 기존의 좁은 미술계에 비해 과도하게 많이 배출되는 미대 졸업생 가운데 제도가 만들어 놓은 계급 사다리에 올라타기 위해 벌어지는 과도한 경쟁을 말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프리-포스트인터넷 조건이라 할만하다.

몇몇 비평가에 따르면, 신생공간의 흐름은 몇 년 안에 정리되었다.[6] 하지만 포스트인터넷 담론만큼은 그 이후 꾸준히 득세하기 시작하는데, 공간 사일삼 같이 잔존한 신생공간에서 새로운 세대의 작가와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배출했으며, 꼭 공간을 통하지 않더라도 요즘으로 치면 MZ 세대라고 불렀을 새로운 얼굴은 주류 미술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의 작업을 개진해갔다. 2017년부터는 아카데미에서도 본격적으로 포스트인터넷 아트에 대한 관심이 불붙기 시작했고, 2019년부터는 아르코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공립 미술관도 가세한다. 2020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프로젝트 해시태그 사업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프리-포스트인터넷 조건은 포스트인터넷 실천과 함께 해소된 것일까?

포스트인터넷 묘지

포스트인터넷 담론 득세기에 유행했던 트리비아 두 개를 잠깐 짚고 넘어가겠다. 2016년 포스트인터넷 아트의 챔피언이라고 알려진 슈타이얼의 『스크린의 추방자들』이 그의 제자라고 알려진 김실비의 번역으로 초판되었다. 한국의 미술 독자는 이 책을 많이들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곧 이어 몇몇 사람이 번역에 문제를 제기하더니 논란이 일기 시작한다—poor image를 뭘로 번역할 것이냐 같은. 그러더니 트위터리안과 학계인사를 가리지 않고 몇 마디씩 더하는 꼴이 되었다—번역자가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결국 출판사인 워크룸 프레스는 빠르게 사과하고 책을 절판시킨 후 재출간된 것은 2018년이 되어서다.[7] 번역의 권위자가 지식의 권위자가 되는 기현상은 한국에서 넘쳐난다.[8] 이것이 과연 포스트인터넷 실천과 무슨 상관일까?

또 하나 보자. 2018년에 열린 <<미러의 미러의 미러>>는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지저분한 하위문화의 위반적 이미지, 그러니까 ‘빈곤한 이미지’에 관심이 있는 작업을 모은, 비교적 이른 시기의 포스트인터넷 아트 전시다. 문제는, 기획자가 일베와 메갈리아 사이에서 벌어진 인터넷 문화전쟁을 구별 없이 똑같이 “스팸에 가까운 이미지”로 보거나 오히려 페미니스트의 정치적 요구를 조롱하는 일베적 백래시를 용인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9] 이는 ‘미러의 미러의 미러’라는 전시 제목이 난반사라는, 목표를 잃고 마구잡이로 상대를 공격하는 데 몰두하는 미러링의 실패를 우의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술을 하나도 모르는 영페미 사이에서도 이 전시는 유명해졌다.) 슈타이얼이 빈곤한 이미지라는 개념을 제안하면서 상상했던 것이 그런 백래시였을까?

그래서, 한국의 미술계는 포스트인터넷 조건으로 전환되었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2010년대 중반을 흐르며 한국 미술계에 나타난 슈타이얼에 대한 현장과 학계의 집중된 관심, 국립현대미술관 <프로젝트해시태그 2021>에서 슈타이얼이 심사위원으로 선임되는 과정은 포스트인터넷보다는 오히려 ‘모방과 필연’—한국의 앵포르멜은 서방 사조의 단순한 모방이냐 한국의 맥락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냐라는 미술평론가 이일의 곤경—의 전통적인 모순이 반복된 것처럼 보인다.[10] 또한 <<미러의 미러의 미러>>전이 채택한 이미지 가속주의의 형식화된 혁명처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포스트인터넷 이미지 해방 놀이는, 슈타이얼의 원래 의도를 참고하더라도, 어디에 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거기다 이 사업은 그 자체로 공모와 심사를 통한 참가자 선정 방식을 채택하면서 신생공간이 포스트인터넷 임시 공간을 창출하면서 탈출하고자고 했던 “과도한 경쟁상태”와 “성취의 지연상태”, 다시 말해 프리-포스트인터넷 조건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11] 마지막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포스트인터넷 아트가 설령 아무리 진일보한 미술이라고 하더라도, 미술관 같이 역사에 강력하게 이끌리는 장소에서, 거기다 국립기관에서 주도적으로 지원의 대상을 채택한다는 것은 <<선전>>과 <<국전>>이 생겨난 이래로 계속해서 한국의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는 아카데미즘의 지속처럼 보인다는 것이다.[12] 그렇다면 질문해보자. <프로젝트해시태그>는 최상의 포스트인터넷 아트로 채워진 그 순간에도 역사적으로, 또 구조적으로 프리-포스트인터넷 조건을 겹쳐놓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포스트인터넷 아트와 슈타이얼의 현란하고 이지적인 이론은, 그렇다면 애초에 무엇을 위해 개진되었던 것일까?

전시실의 제단으로 다시 돌아오자. 물화된 이미지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향연, 포스트인터넷 바로크 예배당에서는 과연 누구를 위한 장례가 준비되고 있는 것일까? 비시각적 네트워크의 지표적 형상, 그러니까 이미지는 실로 여기에 박제되어 있다. 네트워크는 죽었다. 이 상황은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위해 <MMA 백주년 증서(Centennial Certificate MMA)>(1969)를 제작할 때 작성했다는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대로 인용하자면,

인간의 양심의 보물

평범하게 수집되고 보존되며 찬미되는 명작들

역사와 사랑을 활기 넘치게 유지하면서

현재의 삶의 변화와 요구, 복잡성을 인식하고 대답하는

인류의 꿈과 이상을 비정치적으로 지키기 위해 봉사하면서

자부심의 순간을 연주하기 위해 미술관이 수집하는 영원한 개념[13]

더글라스 크림프(Douglas Crimp)에 따르면, 라우셴버그는 사진 복사로만 이루어진 이 작품을 수집하는 미술관을 향해 이렇게 쓴 농담을 던졌다.[14] 포스트인터넷 아트를 주창하는 어느 국립 미술관에서, 더덕어몽어스 역시 QR 코드를 박제하며 똑같이 그렇게 했다. (202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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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의 댓글은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가영, 「오늘은 너를 먹고싶어」, <<카카오페이지>>(웹사이트), (접근: 2022. 3. 5., https://page.kakao.com/home/%EC%98%A4%EB%8A%98%EC%9D%80-%EB%84%88%EB%A5%BC-%EB%A8%B9%EA%B3%A0-%EC%8B%B6%EC%96%B4/58070706).

2) 히토 슈타이얼, 「인터넷은 죽었는가?」, 『면세미술』, 문혜진, 김홍기 역, (워크룸, 2021), pp. 177-178.

3) 강정석, 「서울의 인스턴스 던젼들」, <<오픈베타공간 반지하>>(텀블러), (접근: 2022. 3. 5, https://vanziha.tumblr.com/post/120061798362/%EC%84%9C%EC%9A%B8%EC%9D%98-%EC%9D%B8%EC%8A%A4%ED%84%B4%EC%8A%A4-%EB%8D%98%EC%A0%84%EB%93%A4-instance-dungeons-of-seoul-%EA%B0%95%EC%A0%95%EC%84%9D)

4) 포스트인터넷 담론과 신생공간 사이의 관계에 관한 나아간 정보는 Yeon Shim Chung, “Synthetic Experience as Social Commentary and Alternative Media Practitioners in Contemporary Korean Art,” 『현대미술사연구』, 42, 2017를 참고할 것.

5) 강정석, 위의 글.

6) 대표적으로 신생공간과 활동을 함께 한 소장 비평가 권시우는 <<굿-즈>>를 신생공간의 시대의 종착지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2016년 <<서울바벨>>로 보지만 명확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권시우의 입장은 「유닛 이후의 세계 - 1화.'비평적 관객'에 대한 포트폴리오」, <<라라앤>>(웹사이트), 2021. 10. 26., (접근: 2022. 3. 8., https://lalan.art/journal/?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8647157&t=board); 나의 견해는 「신세대 담론의 작은 역사: 2013-2016」, <<아트신>>, 2019. 2. 12. (접근: 2022. 3. 15., https://www.artscene.co.kr/1680)를 볼 것.

7)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 글을 참고할 것. 정강산, 「히토 슈타이얼에 관한 메모」, <<FMTL(블로그)>>, 2018. 5. 26. (접근: 2022. 3. 5., https://fmtl.tistory.com/79).

8)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번역하면서 원문을 자신의 해제의 주석으로 만들어버린 백종현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9) 이런 종류의 위반성에 대한 불편한 감정에 대해서는 김정현, 「<<미러의 미러의 미러>> 이진실 기획, 합정지」, <<RE_RECODINGS>>(블로그), 2018. 11. 5. (접근: 2022. 3. 8.,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lelemjh&logNo=221391686370).

10) 여기에 관한 논의는 신정훈, 「모방과 필연: 1950-60년대 한국 미술비평의 쟁점」, 『미술사와 시각문화』, 19, 2017에 나와 있다.

11) 신세대의 경쟁적 조건에 관한 나아간 논의는 나의 글 「신세대 담론의 작은 역사: 2013-2016」를 참고할 것.

12) 테어도어 아도르노는 미술관의 관심이 현재의 필요보다 과거로만 향한다는 의미에서 심지어 묘지라고 부른바 있다. Theodor W. Adorno, “Valery Proust Museum,” Prisms, trans. Samuel and Shierry Weber (London: Neville Spearman, 1967), p. 175; 일제시대의 <<조선미술전람회>>와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은 결과적으로 뛰어난 하나의 기준을 국가가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로 아카데믹하다. <<국전>>의 아카데미즘에 관해서는 권영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상 아카데미즘」, 『한국근현대미술사학』, 35, 2018, 특히 pp. 170-171를 볼 것.

13) 더글라스 크림프, 「미술관의 폐허 위에서」,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윤난지 편역, (눈빛, 1988), 286쪽.

14) 위의 책, 같은 쪽.

프로젝트해시태그2021 더덕어몽어스 카탈로그를 위해 씀 

2022. 3. 5.